김수환 추기경 690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많은 부부들이 혼인 당시 서약한 대로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하지 못하고 헤어집니다. 사랑의 감정이 식었다는 이유를 댑니다. 그러나 사랑은 감정이나 느낌이 아닙니다. 의지에 속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결심에서 출발해 그 결심을 지키는 의지로써 지속됩니다. 나치에 저항하다 순교한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본 회퍼는 "혼인에 있어서 사랑이 서약을 지켜주기보다는 서약이 사랑을 지켜준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부부에게 위기가 찾아오더라도 '사랑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면 식어가던 사랑이 자연스레 되살아난다는 뜻입니다. 부부는 자유의사로써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맺어진 사람들입니다.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병들 때나 죽을 때까지 사랑한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김수환 추기경 2022.06.18

돌같이 굳은 마음 살같이 부드럽게

돌같이 굳은 마음 살같이 부드럽게 사랑은 가장 부드러우나 가장 강합니다. 사랑은 가장 겸손하고 친절하나 가장 귀하고 높습니다. 사랑은 한편으로 무기력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총도, 칼도, 대포도 못하는 일을 이것은 할 수 있습니다. 죄악에 빠진 인간을 회개시키고, 돌같이 굳은 마음을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물리적 힘이나 기적이 아닙니다. 오직 사랑뿐입니다. 사랑만이 인간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 김수환 추기경 말씀 모음집에서 =

김수환 추기경 2022.06.18

조금도 무겁지 않아요

조금도 무겁지 않아요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 소년의 마을(Boys Town)이란 곳이 있습니다. 고아와 불우 청소년들이 모여 사는 큰 규모의 생활 공동체입니다. 오래 전에 영화로도 소개돼 유명해진 이 마을에는 창립자이자 고아들의 아버지인 플래나간 신부님의 아름다운 인간애가 깃들어 있습니다. 이 마을에 한 꼬마가 자기보다 덩치가 두 배나 되는 소년을 등에 업고 있는 조각상이 있습니다. 그 조각에 꼬마의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사람은 나의 형제예요. 그래서 조금도 무겁지 않아요." 참으로 뜻 깊은 말입니다. 누구든지 형제로 대하고 사랑하면 그를 위해 어떤 일도 힘들지 않고 어렵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한 짐은 아무리 크더라도 무겁지 않습니다. 마음의 풍요를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을 생각하기에..

김수환 추기경 2022.06.18

사랑은 용서에서 부터

사랑은 용서에서 부터 당신은 진정 사랑할 줄 아는 사람입니까? 선뜻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인데, 누군가 이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알려 줬습니다. 성경에서 사도 바오로의 '사랑의 찬가'(1고린 13,1-13)가 나옵니다. 여기서 앞에 나오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나'로 바꿔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성해보면 자신이 사랑을 지닌 사람인지 아닌지 식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랑은(나는)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

김수환 추기경 2022.06.11

밥이 되어 주세요

밥이 되어 주세요 한때 크리스마스 카드에 '밥이 됩시다,' '제가 밥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라는 문구를 즐겨 써서 부쳤습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영혼과 육신이 허기진 이들을 위해 '밥'이 될 만큼 자기 자신을 내놓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어수룩한 사람을 얕잡아보고 "저 사람은 내 밥이야!"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한없이 낮추고 비워 우리 모두에게 '밥'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 죽음으로 당신의 모든 것을 내놓으셨습니다. 현대인들은 오늘도 "나는 결코 밥이 될 수 없다"며 치열한 경쟁을 벌입니다. 그뿐 아니라 타인을 '내 밥'으로 삼기 위해 혈안이 돼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인간다운 사회가 되려면 타인에게 밥이 되어주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

김수환 추기경 2022.06.11

부활, 새 사람이 된다는 믿음

부활, 새 사람이 된다는 믿음 부활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대단히 합리적인 믿음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부활이 있다는 것을 믿을 때, 다시 말해서 '하느님은 반드시 우리를 다시 살리신다. 하느님은 우리를 반드시 구원하신다. 뿐더러 우리가 여기서 힘쓰는 여러 가지 아름다운 노력, 선을 위한 노력, 진리를 위한 노력, 정의를 위한 노력 등 모든 것은 결코 헛되지 않다. 그리스도가 부활한 것같이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생명에 부활하고, 또한 그렇게 진리와 정의와 참된 사랑이 부활한다'는 믿음을 가질 때, 우리 삶의 모든 것은 의미있고 밝아집니다. 또 우리가 왜 어려움을 딛고서 진실을 추구하고 정의를 실천하고, 때로는 목숨까지 바치면서 사랑해야 되는지 그 이..

김수환 추기경 2022.06.11

소금과 빛

소금과 빛 소금은 뿌려야 맛이 난다 세상 속에 뿌려져야 한다 세상 속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세상을 바꾸어 간다 내가 소금 맛을 잃으면 이 사명을 다할 수 없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만이 참소금이다 그리스도를 떠나면 소금 맛을 잃는다 소금은 자체를 위해 있지 않고 남을 위해있다. 빛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만이 빛이다 어두운 세상을 가장 밝히신 것은 마지막 십자가상에서이다 어두움과 싸워서 이겼으니 부활의 빛이 되었다 자신을 촛불처럼 불태워야 빛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자신을 온전히 태워서 소진시켜야 한다 '다 태워서 꺼질 때까지…, '이것도 글로 쓰기는 아름답다, 말로는 쉽다' 하지만 나는 정말 그렇게까지 나를 태울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자아에서 해방되고 자유를 얻지 못..

김수환 추기경 2022.06.11

평온하고 화목함

평온하고 화목함 평화의 문제는 우리가 참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위하고 사랑하느냐 하는 사랑과 정의의 문제입니다. 그러려면 사랑의 마음에서 평화를 깨뜨리는 모든 것을 이기고 없애야 합니다. 불화의 뿌리를 뽑아야 하고, 남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 믿지 않으려는 불신, 용서할 줄 모르는 미움, 나만을 위하는 소유욕과 지배욕, 질투와 경쟁심을 버려야 합니다. =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 =

김수환 추기경 2022.06.04

진정한 자유

진정한 자유 자유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자유를 '일체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봅니다.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유는 야생동물의 자유는 될지언정 인간의 자유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자유를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인간은 자유를 얻기는커녕 스스로 욕정의 노예로 떨어집니다. 비록 내일 교수대에 설 사형수라고 하더라도 원하면 얼마든지 자유의 인간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유는 나의 육체에 달린 것이 아니라 정신에 내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의식을 잃은 경우 외에는 어떤 물리적 힘도 정신의 자유를 속박할 수 없습니다. 오직 나만이 스스로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습니다. =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 =

김수환 추기경 2022.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