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690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가장 보잘것없는 형제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다" "가장 보잘것없는 형제에게 해주지 않는 것이 곧 나에게 해주지 않는 것이다."라는 성서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있어서 보잘것없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피상적으로 생각하면, 막연하게 가난하고 굶주리는 불쌍한 사람, 고통 받는 사람, 소외된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그 뜻도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이 누구인지를 모릅니다. 이름도 얼굴도 모릅니다.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해 사랑할 의무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면, 보잘것없는 형제는 이름도 성도 모르는 어느 가난한 사람, 굶주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잘 아는 사람입니다. 이름도 얼굴도 알고, 일상..

김수환 추기경 2022.06.04

꿈과 현실

꿈과 현실 "한사람의 꿈은 꿈으로 남을 수 있지만, 3백만의 꿈은 현실 안에 있습니다." - 헬더 카마라 대주교 - 3백만의 꿈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30만, 3만이어도 좋습니다. 누군가 먼저 꿈을 가지고 있고, 그 꿈이 전파되고 점차 확대되어 모든 사람의 꿈이 될 때에는 분명히 현실화 된다고 생각합니다. 꿈이란 것은 설명이 필요없고, 이론적인 체계를 세울 것도 없습니다. 마치 어두운 방안에 촛불 하나라도 밝히면 어둠을 헤쳐 주고 그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밝혀 주는 역할을 하듯이, 어둠을 탓할 게 아니라 누군가가 먼저 촛불을 밝히게 되면 '나도 촛불을 밝혀야겠다'고 하여 너도 나도 촛불을 밝힐 때, 그 촛불의 꿈은 분명히 현실화 된다고 봅니다. 너무 감상적인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그러나 '꿈..

김수환 추기경 2022.06.04

남은 세월이 얼마나 된다고

남은 세월이 얼마나 된다고 가슴 아파하지 말고 나누며 살다 가자. 버리고 비우면 또 채워지는 것이 있으려니 나누며 살다 가자. 누구를 미워도, 누구를 원망도 하지 말자. 많이 가진다고 행복한 것도 ?적게 가졌다고 불행한 것도 아닌 세상살이. 재물 부자이면 걱정이 한 짐이요, 마음이 부자이면 행복이 한 짐인 것을... 죽을 때 가지고 가는 것은 마음 닦은 것과 복 지은 것 뿐이라오.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갈 날도 많지 않은데, 남은 세월이 얼마나 된다고 가슴 아파하며 살지 말자. 버리고 비우면 또 채워지는 것이 있으니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다가자. 웃는 연습을 생활화 하시라. 웃음은 만병의 예방약이며 치료약. 노인을 즐겁게 하고 동자(童子)로 만든다오. 화를 내지 마시라. 화 내는 사람은 ..

김수환 추기경 2022.06.04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깁니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깁니다 동양사회에서 전설처럼 전해 오는 이상적인 시대가 있습니다. 바로 요순(堯舜) 시절입니다. 그 시대에는 사람들이 법 없이도 잘 살았고, 법은 고사하고 백성들이 나라의 통치자를 의식하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살았습니다. 어느 날, 요 임금이 홀로 시골 마을에 가 보았습니다. 밭에서 노래를 부르며 일하고 있는 한 농부에게 넌지시 "당신은 우리나라 임금이 누구인지 아시오?"하고 물었습니다. 농부는 무심히 대답하기를 "우리야, 해 뜨면 집에서 나오고 해지면 집으로 들어가고,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 갈아 밥 먹고 사는데, 임금이고 뭐고 상관할 게 뭐 있소?" 하는 것입니다. 요 임금은 비로소 자신의 정치가 어느 정도 잘 되어가고 있음을 확인한 셈이 되어 흐뭇해 했습니다. 너무 엄격하..

김수환 추기경 2022.05.28

고름 짜기

고름 짜기 어릴 적 고름이 든 종기를 나는 아파서 끙끙대며 만지기만 하고 짜지를 못했다. 고름은 피가 썩은 것이고 고름은 결코 살이 안 된다고 어머니는 감히 선언하셨다. 손만 살짝 닿아도 엄살을 떠는 나에게 어머니는 약창까지 나와야 낫는다고 발끈 눌러 버렸다. 전신의 충격, 눈알이 아리면서 마침내 종기는 터지고 피고름과 함께 백리가 뽑혔다. 썩은 고름이 빠진 자리에 새 살이 차고 다시 피가 돌고 마침내 상처는 깨끗이 나았다. 종기가 무서워 슬슬 만지며 고름이 아까워 버리지 못하는 겁쟁이 살이 썩고 피가 썩고 마침내 온몸이 썩을 때까지 우리는 아프다고 바라만 볼 것인가. 슬슬 어루만지거나 하며 거죽에 옥도정기나 바르며 진정으로 걱정하는 어머니의 손길을 거부할 것인가 언제까지나 고름을 지니고 이 악취, 이 ..

김수환 추기경 2022.05.28

창조와 순리 그리고 사랑의 표현

창조와 순리 그리고 사랑의 표현 민주주의는 만들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의 활력 속에서 화합이 이루어질 때 창조되어 집니다. 정의 또한 규격품으로 배급되어 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강물처럼 순리로 흐르고 넘치게 해야 합니다. 복지는 소외된 이웃형제들에 대한 모두의 사랑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 =

김수환 추기경 2022.05.28

인생을 돌아보며

인생을 돌아보며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자연히 과거를 되돌아보게 된다. 66년 전인 1941년, 일본 상지대학에 갔을 때 학생 기숙사 사감이셨던 피스터 신부님은 나를 보고 기린아(麒麟兒)라고 하셨다. 행운아라는 말씀이었다. 처음에는 그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말씀 그대로 나는 정말 많은 시련과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에 비해 여러 가지 의미로 행복한 인생을 살아왔다. 예수님이 나를 따르기 위해 부모와 집 모든 것을 떠난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백배의 축복을 받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하셨다(마르 10, 28-30). 이 말씀 그대로, 본래는 다른 길을 가려다 주님께서 어머니를 비롯해 이런 저런 분들을 통해 일러주신 사제의 길을 살아온 나는 현세적으로도 ..

김수환 추기경 2022.05.28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 아침이면 태양을 볼 수 있고 저녁이면 별을 볼 수 있는 나는 행복합니다. 잠이 들면 다음날 아침 깨어날 수 있는 나는 행복합니다. 꽃이랑,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는 눈. 아기의 옹알거림과 자연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입. 기쁨과 슬픔과 사랑을 느낄 수 있고 남의 아픔을 같이 아파해줄 수 있는 가슴을 가진 나는 행복합니다. = 김수환 추기경 에서 =

김수환 추기경 2022.05.28

하느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인간

하느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인간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다." ㅡ 현대 세계의 교회에 과한 사목헌장 ㅡ 여기에서 보듯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인간의 모든 문제, 특히 가난과 고통에 신음하는 이들의 문제와 무관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하느님 모습대로 창조된 존재입니다. 따라서 우주 만물 가운데 가장 존귀하며 세상 모든 것, 정치. 경제. 학문. 과학발전 등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교회는 믿습니다.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간입니다. 하느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존재 무엇일까요? 역시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객체나 도구로 전락할 수 없습..

김수환 추기경 2022.05.22

고통의 문제

고통의 문제 고통은 좋지 않습니다. 고통은 참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惡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되도록 고통을 면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고통이 없었을 때, 고통을 모르는 인간, 고통이 없는 인생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하느님을 더 찾고 모두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오히려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나 역시 고통이 없었다면 아마도 하느님을 전혀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통이 없는 인생은 술에 물 탄 것처럼 싱겁고 아무런 깊이도 없을 것입니다. 이에 비해, 고통을 많이 겪은 인생은, 어떤 때는 너무나 큰 고통을 겪어서 그 모습을 보기조차 애처롭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를 수도 있지만 대개는 인간으로서 깊이가 있고 이해심과 동정심이 많습니다. =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 =

김수환 추기경 2022.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