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하(李命夏) 선생(1878.1.23~1921.2.2) 남아가 이미 신하된 몸으로 나라의 원수를 아직 갚지 못하고, 백성의 원한을 갚지 못하였으니,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며 죽어도 한이 남는지라 풀려나기를 바라지도 않으니 속히 죽여 달라.-선생의 공술 중에서(《대한매일신보》 1908년 6월 11일자)- 충북 제천에서 자라면서 동학농민군과 .. 인물과 역사 2015.08.23
채응언(蔡應彦, 1883~1915.11.4) 선생은 일제의 총칼에 의해 국권이 이미 침탈된 국내에서 사방에 주둔하고 있는 적들의 총구를 순간순간 감지하며 8년 동안 의병활동을 하였다. 의롭고 청렴하였으며, 담대하고 기민한 그 활동으로 민중은 감동을 받고, 적들은 당혹한 얼굴로 몸서리를 쳤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 인물과 역사 2015.08.23
신숙[申肅, 1885.12.29(음력)~1967.11.22] 한국의 민족적 독립운동은 모름지기 통일된 혁명적 전선을 조직하지 않으면 안되며, 또 유력한 혁명적 중추로 유일한 민족적 혁명당의 형체를 조성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국민위원회는 ‘한국독립당’이라는 명명하에 당규 및 당의 현시 착수할 사업방침을 정했다. (중략) 한국의 .. 인물과 역사 2015.08.23
엄항섭(嚴恒燮, 1898.10.15(음력 9.1)~1962.7.30) 일제가 김구 주석에게 내건 현상금은 천문학적인 액수로, 일제뿐만 아니라 중국인과 한국인들도 자칫 현상금에 눈이 어두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엄항섭 선생을 비롯한 최측근뿐이었다. 엄항섭 선생은 한국독립당의 중앙집행위원, 임시의정원 의원, 그리고 주석 판공.. 인물과 역사 2015.08.23
차리석(車利錫, 1881. 7. 27~1945. 9. 9) 차리석 선생은 해외 혁명운동자 가운데 특히 강력한 정신력을 소유하시기로 유명하시었다. 탁월한 사무처리의 기능이나 병중에서도 최후의 일각까지 맡으신 사명을 완수하신 강한 책임감은 한국독립운동에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1948년 사회장 당시 이시영․.. 인물과 역사 2015.08.10
나창헌(羅昌憲, 1896. 1. 29~1936. 6. 26) 우리 독립은 우리의 사활문제임은 췌언(贅言)을 기다릴 것이 없을 것이며, 우리들의 독립은 총과 검과 혈이 아니면 성공할 수 없다. 고로 우리들은 금후 한 사람이 될 때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철과 혈로써 저 간악하고도 악독한 왜구(倭仇)를 배제할 것이다.- 나창헌 선생이 조직한 <철.. 인물과 역사 2015.08.10
한훈(韓焄, 1890.2.27~1950) 임시정부와 협의하고 조선군사령부(광복단결사대) 조직에 착수하여 먼저 군사령부의 장교는 상해임시정부로 보내 양성하고 병졸은 간도로 보내 양성하기로 했으며, 또 결사대를 조직하여 그중 처단단을 선출 조선총독․정무총감․이완용․송병준 및 조선인 형사를 암살할 것.. 인물과 역사 2015.08.10
나석주(羅錫疇, 1892.2.4~1926.12.28)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2천만 민중아, 분투하여 쉬지 말라!”- 나석주 열사, 1926년 12월 28일 경성 시내에서 일본 경찰들의 포위망 속에 홀로 격전을 치르며 외친 유언 “저희들은 조국 독립을 꾀하기 위해 군자금을 마련하러 온 젊은이들입니다.” 나석주(羅錫疇, 1892.2.4~192.. 인물과 역사 2015.08.10
정인승(鄭寅承, 1897. 5. 19~1986. 7. 7)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에 대항하여 우리 고유 문화를 보호하는 방법으로 한글 연구를 택하고 이에 관심을 가지게 된 선생은 이후 연희전문학교에서 위당 정인보선생에게 영향을 받으며 본격적인 한글 연구에 힘을 쏟았다. 졸업 후 조선어학회에서 활동하며 <한글>지의 발행을 주관하.. 인물과 역사 2015.08.10
윤병구 대한인애국회 총회장 종교 활동을 위해 하와이로 이주했던 윤병구 선생은 하와이 내 항일운동단체 ‘에와친목회’를 거쳐 도미, 능통한 영어실력으로 미국 내 한인독립운동단체 활동과 외교선전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유럽순방외교를 펼쳤으며 대한인애국회 총회장으로 두 번이나 .. 인물과 역사 2015.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