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60.jpg 신문왕릉(神文王陵)의 동남쪽에 있으며 얕은 구릉의 경사면에 조성되어 있다.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서 지름 15m, 높이 3.4m이다. 일반 민묘보다 규모가 클 뿐 다른 특징이 없다. 봉분만 남아 있을 뿐 호석(護石)의 일단도 보이지 않고 아무런 장식물도 없다.

신라 제45대 신무왕(神武王)(재위(在位) 839)은 본명이 김우징(金祐徵)이고, 상대등 균정(上大等 均貞)의 아들이며, 희강왕(僖康王)의 사촌동생이다. 신라 말기에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왕위쟁탈전이 심해져서 부친인 균정(均貞)을 받들어 왕으로 추대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839년 정월에 청해진대사 장보고(淸海鎭大使 張保皐)의 도움으로 민애왕(閔哀王)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으나 즉위한지 7개월만에 죽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왕(王)이 죽자 시호(諡號)를 신무(神武)라 하고, 제형산(弟兄山) 서북쪽에 장사지냈다고 전하는데, 이 고분을 가리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