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사적 제18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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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북 경주시 교동 14 |
소재지 | 월성동 |
지정일 | 1969.08.27 |
수량/면적 | 사적 161호에 포함 |
시대 | 신라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경주시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
경주 반월성(半月城) 북서쪽 계림(鷄林)에 인접하여 있다.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 지름 22m, 높이 5.3m이다.
봉분의 밑부분에 자연석이 드문드문 보이고 있는데, 이는 경주시내 평지의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과는 달리 호석(護石)에 자연석 받침돌을 받쳐 놓은 것으로 신라 횡혈식 석실분(新羅 橫穴式 石室墳)의 호석(護石) 형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이 고분의 봉분 규모도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보다는 횡혈식 석실분(橫穴式 石室墳)에 알맞은 것으로 평지고분이지만 매장주체는 횡혈식 석실(橫穴式 石室)일 가능성이 많다. 봉분 앞에는 혼유석(魂遊石)이 놓여 있는데 후대에 설치된 것이다. 한편 이 고분 주위로는 평면 장방형(長方形)으로 이 고분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터 흔적이 보이고 있는데, 이는 이 고분이 일찍부터 특별히 보호되고 있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신라 제17대 내물마립간(奈勿麻立干)(재위(在位) 356-402)은 성이 김(金)씨이고, 아버지는 말구각간(末仇角干)이며, 왕비는 휴례부인(休禮夫人)이다. 신라(新羅)에서 김씨(金氏)로서는 미추이사금(味鄒尼師金)에 이은 두 번째로 왕위에 올랐지만 이후의 신라왕(新羅王)들이 모두 내물(奈勿)의 후손으로 신라 김씨왕조(新羅 金氏王朝)의 실질적인 창시자이다. 신라는 이 왕 때에 이르러 국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낙동강(洛東江) 동쪽을 아우르는 왕국(王國)으로 성장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왕의 장지에 대한 기록이 없으나,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능(陵)이 점성대 서남(占星臺 西南)에 있다고 하여 현위치를 가리킨다. 그러나 내물왕(奈勿王)은 후세의 큰 추앙을 받은 실질적인 김씨왕조(金氏王朝)의 창시자로서 그 능(陵) 규모 또한 컸을 것이고, 재위시기로 보아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이어야 할 것인데, 현재의 능(陵)은 규모가 작은 석실분(石室墳) 형식이어서 어울리지 않는다. 이에 내물왕릉(奈勿王陵)을 신라 최대의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인 대능원(大陵園)의 황남대총(皇南大塚)으로 비정하는 학계의 견해도 있으나,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을 존중하면서 내물왕계(奈勿王系) 계승의식을 표방한 신라 하대(新羅 下代) 왕실(王室)의 수축(修築) 가능성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봉분의 밑부분에 자연석이 드문드문 보이고 있는데, 이는 경주시내 평지의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과는 달리 호석(護石)에 자연석 받침돌을 받쳐 놓은 것으로 신라 횡혈식 석실분(新羅 橫穴式 石室墳)의 호석(護石) 형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이 고분의 봉분 규모도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보다는 횡혈식 석실분(橫穴式 石室墳)에 알맞은 것으로 평지고분이지만 매장주체는 횡혈식 석실(橫穴式 石室)일 가능성이 많다. 봉분 앞에는 혼유석(魂遊石)이 놓여 있는데 후대에 설치된 것이다. 한편 이 고분 주위로는 평면 장방형(長方形)으로 이 고분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터 흔적이 보이고 있는데, 이는 이 고분이 일찍부터 특별히 보호되고 있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신라 제17대 내물마립간(奈勿麻立干)(재위(在位) 356-402)은 성이 김(金)씨이고, 아버지는 말구각간(末仇角干)이며, 왕비는 휴례부인(休禮夫人)이다. 신라(新羅)에서 김씨(金氏)로서는 미추이사금(味鄒尼師金)에 이은 두 번째로 왕위에 올랐지만 이후의 신라왕(新羅王)들이 모두 내물(奈勿)의 후손으로 신라 김씨왕조(新羅 金氏王朝)의 실질적인 창시자이다. 신라는 이 왕 때에 이르러 국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낙동강(洛東江) 동쪽을 아우르는 왕국(王國)으로 성장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왕의 장지에 대한 기록이 없으나,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능(陵)이 점성대 서남(占星臺 西南)에 있다고 하여 현위치를 가리킨다. 그러나 내물왕(奈勿王)은 후세의 큰 추앙을 받은 실질적인 김씨왕조(金氏王朝)의 창시자로서 그 능(陵) 규모 또한 컸을 것이고, 재위시기로 보아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이어야 할 것인데, 현재의 능(陵)은 규모가 작은 석실분(石室墳) 형식이어서 어울리지 않는다. 이에 내물왕릉(奈勿王陵)을 신라 최대의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인 대능원(大陵園)의 황남대총(皇南大塚)으로 비정하는 학계의 견해도 있으나,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을 존중하면서 내물왕계(奈勿王系) 계승의식을 표방한 신라 하대(新羅 下代) 왕실(王室)의 수축(修築) 가능성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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