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부를 둘러싼 왕실의 복잡한 혈연관계는 이로써 끝이 아니다. 이사부와 지소태후 사이에 낳은 딸이 숙명공주이다. 숙명은 태후 못지않은 문제적 인물이다.
“(4세 풍월주) 이화랑은 위공의 아들이다. (중략) 그때 황화, 숙명, 송화 공주가 모두 공을 따라 배웠다. 공은 이에 숙명궁주와 정을 통할 수 있었다. 그 때 태후는 왕의 총애를 홀로 받게 하고자 모든 일을 공주에게 받들게 했는데, 왕은 어머니가 같은 누이라고 하여 매우 사랑하지는 않았다. 공주 또한 그러하였다. 공주의 아버지는 곧 태종공인데, 그때 상상(上相)으로서 나라를 위한 가장 중요한 신하였다. 그래서 왕은 공주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공주는 총애를 믿고 스스로 방탕하였다. 태자를 낳고 황후로 봉해지자 더욱 꺼림이 없었다. 왕은 평소에 사도(思道)황후를 사랑하여 그 아들 동륜을 태자로 삼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화랑세기]에서)
여기서 왕은 진흥왕이다. 그래서 숙명을 일러 ‘어머니가 같은 누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태후가 숙명을 총애하는 것은 숙명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남편인 이사부에 대한 애정의 깊이와 연관되는 듯싶다. 이로써 태후 덕분에 숙명의 콧대는 한참 올라가 있다. 드디어 진흥왕과의 사이에서 아들까지 낳은 것 같은데, 이는 [삼국사기]에서 볼 수 없는 자료이다. 숙명의 권세는 동복이부(同腹異父) 간인 진흥왕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결국 태자가 된 사도황후의 아들 동륜이 아버지의 총애를 받으면서도 자리에 오르기가 더뎠던 것은 바로 숙명 때문이었다. 상상(上相)은 상대등으로 보이는데, 이사부의 위치가 만만치 않고, 지소태후의 입김까지 워낙 거세게 작용하고 있었다.
나중에 숙명은 이화랑과 결혼하여 원광(圓光)과 보리를 낳았다. 원광은 신라 불교를 반석에 올린 사람이요, 보리는 12세 풍월주가 되었다. 그렇다면 원광에게 이사부는 외할아버지이다. 그런 숙명이 자기 아버지 이사부를 얼마나 끔찍이 존경했는지,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이 이를 증명한다.
“(숙명공주가) 한번은 (보리공에게) 말하기를, ‘나의 아버지 태종 각간은 곧 너의 할아버지이다. 하늘도 높다 않고 땅도 넓다 않는 대영웅이다. 너는 마땅히 신으로 받들어야 한다.” ([화랑세기]에서)
이사부는 영웅을 넘어 신으로까지 올라갔다. 물론 숙명이 딸인 마당에 딸은 아버지를 그 이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부인과 딸에게서 이런 대우를 받는 이사부는 정말 멋진 사내였던가 보다. 대체로 밖에서 멋져 보이는 남자란 실상 안에서는 구실 못하는 형편없는 경우가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