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을 뜻하는 글자로 사(師)를 쓴 것은 이미 중국에서 시작한 전통이다. 좀 더 높여서 대사(大師)라는 말이 생기거니와, 이밖에 승계를 정할 때 왕사(王師)니 국사(國師)가 나오고, 선종의 승려에게는 선사(禪師)를 따로 쓰기도 하였다. 그밖에 법사(法師), 율사(律師), 성사(聖師) 등도 결국 ‘사’를 바탕으로 만든 말이다.
‘사’란 곧 스승이다. 스승이 여러 종류이지만, 스님에게 스승이란 뜻의 이 글자를 쓴 것은 스님의 역할 가운데 무엇보다 교육적인 그것을 중요시 여긴 까닭이라 하겠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같은 전통은 불교가 수입된 이후 바로 시작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이가 원광이다. 그는 단지 불교만이 아니라 뭇 사람의 사표(師表)가 될 만한 일을 했기 때문이다. 바로 세속오계(世俗五戒)를 두고 하는 말이다.
원광이 세속오계를 만든 경위는 [삼국사기] 열전에 나온다. 김부식은 열전 가운데 귀산(貴山)에 대해 썼는데, [삼국유사]도 이를 인용하며 좀 더 자세한 소식을 전해 준다. 귀산은 사량부(沙梁部) 사람인데, 같은 마을의 추항(箒項)과 함께 ‘사군자(士君子)와 더불어 지내기로 하면서, 먼저 마음을 바로 하고 몸을 닦지 않는다면 욕되게 되지 않을까 두려우니, 현명한 이의 곁에서 도(道)를 묻자’고 다짐한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현명한 이’에게서 ‘도를 묻자’는 의도였다. 여기서 ‘현명한 이’로 ‘원광법사’가 선택된다. 원광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불교에는 보살계가 있고 따로 열 가지가 있다. 자네들은 남의 신하가 된 몸으로 감당할 수 없을 듯싶다. 그래서 세속오계를 주노라. 첫째, 임금을 섬기되 충성으로 할 것이요, 둘째, 부모를 섬기되 효성스럽게 할 것이요, 셋째, 친구와 사귀되 믿음으로 할 것이요, 넷째, 싸움에 나가서는 물러서는 일이 없을 것이요, 다섯째, 산 것을 죽이되 가려 해야 할 것이다. 자네들은 이를 행하고 소홀히 하지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