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을 열고
"누구든지 나의 딱한 사정을 알면 분명히 나를 이해하고 동정할 것이다.
또 도와도 줄 것이다."
이런 생각은 오늘날과 같이 각박한 세상일수록 누구나 더욱 가지게 됩니다.
오늘날은 점차 점차 도시화되어 갑니다.
사람이 사람들 물결 속에 살면서 모두가 점점 더 고독해 집니다.
그래서 모두가 자기를 더 알아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내 옆에 있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고,
가정에서, 길에서, 버스 안에서,
직장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이런 외로움에 지쳐 있습니다.
모두가 이 고독병에 걸려 있습니다.
소외감에 앓고 속으로 흐느끼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같은 병에 걸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같은 병에 걸렸으니 서로 더욱 측은한 마음씨를 가져야지요.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두가 자기만이 고독하고, 자기만이 소외되고,
자기만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오해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을 믿지 않고, 남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남의 입장이 되어 보려고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문을 꼭꼭 닫고 스스로를 자아 속에 유폐시킵니다.
그래서 인간은 점차 자아라는 냉장고 속에서 얼어 붙어 갑니다.
마음도, 정신도, 인간성 자체, 생명까지 얼어 붙습니다.
구제책은 마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나뿐 아니라 남도 고독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남도 나와 같이 이해와 동정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아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 부모 자식간에, 형제 사이에,
같은 직장의 동료 사이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음의 문이 열리면
사회 안에 해빙기가 움틀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따뜻한 봄기운이 움트기 시작할 것입니다.
서로 알고 보면
서로가 얼마나 서로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인지 알 것입니다.
그리고 남을 알고 남을 돕는다는 것은
곧 나를 알고 나를 돕는 것이나 다를 바 없음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너'라는 남 없이 존재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고, 행복을 위해 절대로 필요합니다.
이 '너'를 사람에 따라서는 한 사람만으로 국한시킬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나와 너'의 사랑은 반드시 '우리'가 돼야 하고,
이 '우리'는 또 우리만으로 배타적일 수 없습니다.
'우리'에서 사랑의 결실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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