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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 청년' 12만 명... '그들의 좌절' 끊을 방법 있다

문성식 2022. 7. 3. 10:59

'은둔 청년' 12만 명... '그들의 좌절' 끊을 방법 있다

 
 

은둔형 외톨이, 사람 피해서 사회적 노출 최소화
매일 사진찍기 등 사소한 노력부터 시작을
사회 복귀 프로그램, 온라인부터 도전

 

혼자 쭈그리고 앉은 사람 사진
은둔생활을 끝내려면 하루 한 번 창문 열기 같은 사소한 행동부터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청년 은둔’이 새로운 사회 현상으로 떠올랐다. 서울시 보도자료에 따르면 작년 서울시에서 실시한 ‘은둔청년 지원사업’에 모집인원의 3배가 넘는 717명이 신청했다. 고립된 청년은 늘어나지만 이들의 현황을 전국적으로 조사한 통계는 없다. 은둔형 외톨이로 짐작되는 인원을 추산해볼 수 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에 등록된 ‘2020 광주광역시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6월부터 12월까지 광주 지역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10만 세대에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은둔형 외톨이 당사자 237명과 그들의 가족 112명이 탐지됐다. 이 비율(0.237)을 전국 인구에 대입해보면 적어도 12만 명이 은둔형 외톨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은둔을 벗어나 사회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은둔 청년 본인도, 그들을 지켜보는 부모도 모른다. 은둔의 원인은 무엇이고, 사회로 복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모든 은둔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어
일산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민경 교수는 은둔을 ‘사회적인 철퇴 또는 위축’이라 표현한다. 말 그대로 사회적 활동이 모두 끊어진단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는 자신의 생활 공간에 틀어박혀 있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 경제 활동이나 PC방 방문 등을 목적으로 외출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마저도 장소와 시간대가 제한적이다. 김민경 교수는 “은둔형 외톨이는 외출하더라도 늦은 시간대에 사람들을 피해 사회적 노출을 최소화하는 경우가 많다”며 “외출을 한다고 해서 은둔형 외톨이가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다”고 말했다.
 
이들이 은둔하게 된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가정불화 ▲경제적 어려움 ▲양육자의 편애 등으로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라지 못한 탓이거나, 타인을 만날 때 창피한 일을 겪을까 두려워하는 ▲대인공포증 ▲사회공포증 등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일상 속에서 이런저런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무언가 해야겠다는 의지 자체가 꺾이면 은둔이 시작된다. 경쟁이 점점 격화되는 현재, 은둔하는 청년이 점점 늘어나는 이유다. 극도의 경쟁 사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만큼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좌절의 경험이 계속 반복되기 쉽다는 것이다.
 
은둔 청년의 사회 복귀를 지원하는 파이나다운청년들의 김혜원 이사장은 ‘본인이 본인을 공격하는 것’이 은둔이라 말한다. 실패 경험에서 얻은 좌절, 부당한 대우에서 받은 분노와 상처는 마음속에 응어리지기 쉽다. 바깥으로 표출해 해소하거나, 누군가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비워낼 수 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화를 드러내기 어려워하거나, 가까이에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홀로 고립되기 쉽다. 대부분의 은둔이 그렇게 시작된다.
 
◇하늘 사진 찍기 등 작은 노력이 시작
사회생활을 오래 안 하다 보면 학업 및 직업생활에도 공백이 생긴다. 내가 방 안에서 제자리걸음 하는 동안 남들은 앞서 갔다는 생각에, 은둔을 끝내고 싶어도 사회에 발들이기가 두렵다. 용기를 내 현실을 직면한 사람이라도 조바심을 느낀다. 은둔하지 않은 또래와의 격차를 줄여야 한단 생각에서다. 자격증 취득이든 입학·취업 준비든 서두르느라 본인이 조직생활에 대비됐는지는 들여다보지 못한다. 힘들게 들어간 학교나 회사에서 버티지 못하고 나오는 이유다. 김혜원 이사장은 “은둔 청년들은 오랫동안 타인과 소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직에 적응하는 능력이 떨어져 있다”며 “입학·취업 같은 큰 성취를 빨리 거머쥐려 하기보단, 작은 성공을 여러 번 해서 마음부터 단단히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은 바깥에 나갈 엄두가 안 나는 은둔 청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성공 경험을 쌓아나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하루 두 번 씻기 ▲끼니 제때 챙겨먹기 ▲하루 한 번 하늘 사진 찍기 ▲이불 개기 ▲하루 한 번 창문 열기 등 스스로 정한 규칙을 직접 지키다 보면 본인에게 믿음이 생긴다.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이란 생각은 사회에서 발돋움할 때도 디딤돌이 된다. 규칙을 세워 놓고도 가끔은 지키지 못할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난 이것밖에 안 된다’며 자책하지 말고 다시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김혜원 이사장은 “은둔 청년은 완벽주의 성향이 강해서, 규칙 지키기를 하루라도 빼 먹으면 굉장히 자책한다”며 “매일 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계획을 느슨하게 세우고, 실패해도 본인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민경 교수는 “쉬운 경험에서 시작해 점점 더 어려운 경험으로 나아가며 자신을 외부에 단계적으로 노출해보는 게 좋다”며 “자신도 사회 속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일원이라는 것을 은둔 청년이 스스로 체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랜 은둔 생활을 하다 보면 우울증 등 정신 질환이 생기기 쉽다. 거꾸로 우울증·사회적응장애 조현병·정신 질환으로 인해 은둔하게 된 예도 있다. 정신 질환은 본인과 가족의 노력만으로 이겨내기 쉽지 않다. 바깥에 나갈 용기가 생겼다면, 가족에 도움을 요청해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는 것도 좋다. 김민경 교수는 “병원에 내원하면 약물치료를 통해 우울이나 불안 같은 감정을 회복하게 돕고 심리 상담을 진행하기도 한다”며 “규칙적으로 병원에 내원하기만 하더라도 외부 상황에 주기적으로 노출되는 것이기 때문에 은둔을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은둔형 외톨이 위한 프로그램 다양
김혜원 이사장은 은둔 청년들에게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라’고 조언한다. 은둔형 외톨이 대부분은 사회로 돌아가길 꿈꾼다. 그러나 겉으로는 나가기 싫은 척을 할 때가 있다. 김혜원 이사장은 “다른 사람 시선은 신경 쓰지 말고, 본인이 정말 나가고 싶다면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면 좋겠다”며 “은둔 생활을 혼자 끝내는 건 당연히 어려운 일이니 주변에 꼭 나가고 싶단 의사를 전달하고 도움을 요청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은둔형 외톨이의 사회 복귀를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충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을 돕고자 하는 여러 사람의 노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당장은 바깥에 나오기가 두렵다면, 온라인을 통해 할 수 있는 것부터 도전해보는 게 좋다. 파이나다운청년들에서 진행하는 ‘파이꿈터’ ‘은둔청년모여라!’ 등의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은둔청년모여라!’는 은둔 생활을 하는 청년들이 상담 선생님과 비대면 화상 회의 어플을 통해 만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다. ‘파이꿈터’는 ‘K-POP 보컬 연습’ ‘심리학 공부’ ‘1대1 상담’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은둔 청년들이 마음을 열고 사회에 한 발을 내디딜 수 있게 돕고 있다. 파이꿈터 4기는 현재도 모집 중으로, 오는 5월 27일 금요일까지 접수할 수 있다.
 
또 다른 은둔 청년 지원 단체로는 ‘안 무서운 회사’가 있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은둔고수’ 프로그램은 은둔형 외톨이들이 약 5개월의 교육을 거쳐 또 다른 은둔형 외톨이를 돕는 ‘피어 서포터즈(peer supporters)’로 거듭나게 한다. 자신의 은둔 경험을 살려 다른 은둔 청년의 사회 복귀를 도울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일본의 은둔형 외톨이 지원 단체 K2가 한때 한국 지사를 운영했지만, 경영상 이유로 지난 12월 폐업한 상태다. 다만 ‘안 무서운 회사’를 통해 K2에서 제공하는 지원 안내 및 본사 연결은 여전히 가능하다.
= 이해나 헬스조선 기자, 이해림 헬스조선 인턴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