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화,풍물,생활

한옥의 미학 5

문성식 2010. 8. 29. 03:02

유불도 삼대사상

 

집단 무의식 형태의 사상과 철학이 스며든 건축


건축 사조에는 한 시대와 문명의 사상과 철학이 스며든다. 건물은 물리적 제한이 강한 장르이기 때문에 자칫 이것에 가려 사상과 철학이 약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건축가나 설계자가 작품성, 조형성, 미학 등의 기치 아래 의도적으로 집어넣을 수 있다. 이것이 아니더라도 여러 다양한 경로를 통해 건물에는 사상과 철학이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반영된다. 거꾸로 건물을 통해 그 건물을 지은 시대의 사상과 철학을 파악할 수 있다. 건물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속에 숨은 사상과 철학을 캐내는 일이 필수적이다.

 

한옥에는 물론 서양식 예술가 개념의 건축가는 없었다. 한옥은 장인과 집주인의 합작품이었다. 장인은 집을 짓기만 하는 것은 아니어서 건축가의 역할을 상당부분 겸했다. 그러나 집주인과 계급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집주인의 의견이 강하면 그에 따르는 수가 많았다. 이 과정에서 집주인의 생각과 철학이 많이 반영되었다. 이언적 선생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장인이 지을 경우에는 미학 용어로 집단 무의식 형태로 동시대의 사상과 철학이 집에 영향을 끼쳤다. 사상과 철학은 잘 정리된 학문이나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 사회, 시대 단위로 다수의 구성원들 사이에 집단적 무의식 형태로도 존재한다. 건축은 정치, 경제, 사회, 산업기술 등 예술 외적인 요인에서 받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다른 예술 장르보다 이런 집단 무의식 형태의 사상과 철학이 많이 스며든다. 한옥은 기능유형에 따른 주거형식의 이름이지 양식이나 사조 명칭은 아니다. 한국 전통건축이 서양건축과 다른 차이점 가운데 하나가 양식과 사조 중심으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한옥은 양식이나 사조를 대신할 수 있을 정도의 집단성과 대표성을 갖는다.


창녕궁위재사 집이 지어지는 축조성만으로 문양효과를 내서 장식을 대신하는 한옥의 특징은 유교의 절제미와 도교의 승물 개념이 한 곳에서 만나는 장이다.

 

이 정도의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사상과 철학 없이는 불가능하다. 옛날 한옥이 있었기에 지금은 한옥 짓는 일이 쉬워 보인다. 한옥 짓기가 어렵다지만 그것은 대부분 시공, 공사비, 재료 등 물리적이고 기술적인 문제들이다. 집의 구성을 짜고 디자인하는 것은 모방 모델이 있기 때문에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처음으로 한옥을 지으라고 한다면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한옥처럼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집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도 아니려니와 배경이 된 사상과 철학도 여러 겹이다.

 

 

이승업가옥 공간의 안팎과 구획을 최소화하며 늘 변하는 상태에 있는 한옥 공간은 불교의 공간개념에서 중요한 영향을 받았다.

 

 

지금 남아 있는 옛날 한옥은 거의 조선시대 것들이라 그 이전의 형성과정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추측은 가능하다. 고려시대 때 상류 지배층의 주거에서 기초적인 형식은 갖춰졌을 것으로 보이나 조선시대 한옥에 비하면 조금은 단순했었을 것이다. 고려시대까지 한 번 완성된 구성 형식을 조선시대에 와서 좀 더 세밀하게 분화시키고 다듬어서 최종적으로 완성시켰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상과 철학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반도 사상 체계의 종합체인 한옥

이런 사회적 역사적 고찰과 달리 순수 디자인의 관점에서 보면 한옥은 ‘초가삼간’을 씨앗으로 삼아 증식, 분화, 발전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역시 사상과 철학이 중요한 안내자 역할을 했다. 씨앗이 자라나고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기준이 되는 이유가 있어야 된다. 대가족제도, 가부장제도, 상류층의 지배 이데올로기 등 사회적, 기능적 이유가 있을 테고 이와 똑같이 중요한 것이 사상적, 철학적 배경이다.

 

 

운조루 사랑채 처마를 뽑아 흰 회벽 바탕에 그림자를 실어 문양으로 활용하는 한옥의 특징은 유불도 삼대사상이 한 곳에서 만나는 장이다.

 

 

한옥의 배경 사상은 크게 한반도 고유의 것과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요즘 새롭게 밝혀지기 시작하는 고고학적 사실들을 대입시켜 보면, 동북아의 고대문명은 크게 ‘요하-요동-한반도’로 이어지는 요하문명과 중국 중원을 중심으로 한 황하문명으로 나눌 수 있다. 삼국시대까지 한반도는 전자가 주도했고 후자가 부분적으로 수용되어 혼합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이것을 이끈 요하문명과 한반도 고유의 토종사상이 분명 있었을 것이고 이것이 한옥의 씨앗이 될 한반도 고대문명의 초창기 주거형식에 어떤 식으로든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연구를 시작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관련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못하다.

 

이후 삼국이 통일되고 요하문명권 대부분의 땅을 상실하면서 한반도에서 황하문명의 영향은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한다. 통일신라와 고려의 전환기를 거쳐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종속 정도가 최고조에 이른다. 전통건축, 좁게는 한옥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지금 추적이 가능한 배경 사상과 철학은 이런 과정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와 정착한 황하문명권의 것들이다. 물론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모르게 우리의 전통 사상과 철학으로 자리 잡게 되긴 했지만 말이다. 그 대표적인 내용들은 대부분 선진(先秦) 시대 때 것들로 유불도의 삼대사상이 주축을 이룬다. 이후 황하문명 내부에서도 유불도는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를 거쳤으며 한반도에 들어온 이후에는 지역까지 옮겨왔기 때문에 더 그랬다.

 

 

한옥과 유불도 삼대사상

요약하면, 한옥에는 한반도 고유의 토종 사상과 중국에서 들어온 선진 사상이 섞여서 철학적 배경을 이루었을 텐데 전자에 대해서는 추적이 불가능한 상태이고 후자는 가능한 상태에 있다. 유불도는 현재 동북아를 대표하는 전통사상이 되어 있고 한옥도 그 영향 아래 크게 묶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가운데 고려시대까지 건축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도교와 불교였을 것이고 유교가 국시가 된 조선시대에 유교의 영향이 더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한옥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고려시대까지 완성되어 있던 것을 이어받아 한 번 더 정밀하게 다듬은 것이었기 때문에 비록 국시가 유교로 바뀌었다고 해도 한옥에 남아있던 도교와 불교의 영향은 그대로 유지되었을 것이다.

 

 

창덕궁 연경당 사방으로 통하는 한옥공간은 불교의 공간개념인 원융무애를 유교의 반가에 적용한 것이다.

 

 

유불도 사이에는 의외로 공통점도 많이 존재. 혹은 서로 상반되는 사상이라 하더라도 이 셋은 한반도에서 천 년 이상 공존하여 이어져왔다. 이론과 종교와 철학으로서 나타나는 대별과 차이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오면 섞이고 어울릴 수 있게 되는데 한반도의 조선시대가 대표적인 예이다. 생활이 이렇다면 건축도 비슷하게 되어 있다. 건축은 생활을 담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세 사상의 미세한 공통점을 찾아내 반영하고 차이점에 대해서는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갈등으로 놔두지 않고 하나로 합해내는 균형감이 사상적 관점에서 한옥을 읽는 중요한 길잡이이다.

 

유불도 사이의 관계는 굳이 형식화하자면 불교와 도교가 상대적으로 더 가깝고 유교는 두 사상과 차이가 많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조선시대의 숭유억불 정책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 머릿속에 알게 모르게 이런 공식이 굳어져 있다. 그러나 적어도 한옥을 기준으로 보면 유교와 두 사상 사이의 대비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세 사상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내 잘 합해낸 통합과 균형감이 돋보인다. 조선이 개국하면서 유교를 대표 체제로 내걸었지만 천 년 가까이 이어져 오던 불교와 도교의 뿌리를 하루아침에 잘라내지는 못했다. 이미 조선 초기 왕 중에서도 태조, 세종, 세조 등 대표적인 왕들이 개인적으로 불교에 심취해 있었으며 경복궁 안에 궁사를 별도로 둘 정도였다.

 

왕실이 이럴진대 신료 계층과 평민으로 내려가면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집을 짓는 장인 같은 중인이나 평민 계층으로 내려가면 민족정서나 국민성 같은 다소 막연한 집단적 특질의 형태로 도교와 불교가 기저에 계속 남아 있었다. 유교로 무장한 문반인 집주인이 유교 사상을 강하게 강요하지 않고 장인에게 집 공사를 맡길 경우 이것이 한국인 특유의 조형의식으로 치환되어 한옥에 흘러 들어가 영향을 끼쳤다. 집주인이라고 모두 유교사상만 고집한 것도 아니었다. 아무튼 이런 여러 과정을 거쳐 한옥에는 유불도 삼대사상이 사상적 배경을 이루게 되었다.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동서양을 막론한 건축역사와 이론을 주 전공으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명비평도 함께 한다. 현재까지 37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공부로 익힌 건축이론을 설계에 응용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jyimi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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