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화,풍물,생활

한옥의 미학 3

문성식 2010. 8. 29. 02:59

불교사상

비움과 불이사상

한옥과 불교는 연관성이 가장 적어 보인다. 유교시대 반가인 한옥은 국시를 충실히 좇았다면 불교를 배척하는 집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한옥에는 불교 사상의 영향을 추적할만한 내용들이 발견된다. 제일 대표적인 것이 안팎 사이에 구별이 약한 한옥 공간의 특징으로 이는 불교의 불이(不二) 사상을 바탕에 갖는다. 비움의 미학과도 일맥상통하는데 이는 도교와 불교 사이의 연관성의 하나로 보면 된다. 불이사상은 비교적 직접적으로 한옥 공간과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남평문씨 본리세거지 한옥의 누각구조는 유마경의 불이사상과 직접적 관계를 갖는다.

 

 

불이사상은 유마경 제9 입불이법문품에서 여러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데 이 가운데에는 공간의 분별을 경계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부분적으로 발췌하면 “비움과 모습 없음과 지음 없음이 둘이라 하나 비움이 곧 모습 없음이요 모습 없음이 곧 지음 없음이라”라거나, “몸(=다함)과 몸 사그라짐(다함없음)이 둘이라 하나 몸이 곧 몸 사그라짐인지라 몸이 실다운 모습을 보는 자는 몸을 보는 것과 사그라지는 몸 보는 것을 일으키지 않으니 몸은 사그라진 몸으로 더불어서 둘이 없고 판가름이 없음일 새”라고 했으며 “것의 성질이 본래 비움이라”라고도 했다.

 

물질적 벽이 있는 상태와 이것이 없는 상태가 서로 다른 것이라 하나 실은 모두 비움이라는 한 가지 같은 상태라는 가르침이다. 열림과 닫힘, 투명과 불투명 사이의 이분법적 구별이 무의미하다는 가르침이다. 이런 구별은 모두 벽이라는 껍질 및 여기에서 파생되는 에워쌈과 육면체의 고형적 물성을 공간형성의 기본 매개로 본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허깨비, 가짜, 거짓으로 실은 없는 것에 불과하다.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일 뿐이며 진실한 것은 비어있는 상태이다.

 

비움에 대해 해석해보면, 비움은 벽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본래부터 빈 상태이다. 비움을 벽이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은 벽에 대한 부정의 상태로만 정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벽이 있고 난 다음에 있는 상태, 항상 벽에 기대서만 정의되는 상태, 벽에 의해서만 한정되는 상태이며 벽을 1차 출발점으로 삼아 형성되는 2차 상태이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비움은 이것 자체가 처음부터 비움으로, 하나의 독립적 완결된 상태로 존재한다. 1차 존재 상태이다. 벽이 오히려 비움에서 파생되는 2차 상태이다. 비워있는 상태에 칸막이를 친 것이 벽이기 때문이다. 비움이 정의되어야 그 속에서 물질이 존재를 확보할 수 있다.

 

 

대방광(大方廣)

이 문제는 결국 공간의 본질에 관한 질문이 되며 진공상태와 칸막이 중 누가 우선이냐는 문제가 된다. 불교에서는 공간의 본질을 우주 전체로 본다. 시작과 끝이 없고 따라서 경계도 없는 무한대의 진공 상태로 본다. 대방광(大方廣)이라는 개념이다. 건물은 이 속에 임시로 칸막이를 친 것에 불과하다. 안팎을 구별하는 것은 부질없는 분별일 뿐이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공간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우리는 공간을 벽과 벽이 한정하는 면적과 에워쌈의 상태로 본다. 비바람을 막아주어야 하며 넓을수록 좋고 그래서 그 속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대산동교리댁 문은 불교의 대방광에 최소한의 구획만을
가한 칸막이일 뿐이다.

귀촌종택 빈 공간에 엉성하게 짠 칸막이만으로도 집은 훌륭
하게 기능하는데 이는 불교의 불이사상과 대방광 개념을 합
한 예이다.

 

 

불교의 대방광 개념에 의하면 이런 공간 개념은 헛것이거나 잘해야 부질없는 욕심이 된다. 이 문제는 벽의 본질에 대한 문제로 볼 수도 있다. 인간에게 공간은 물론 최소한의 공리성을 가져야 한다. 육체와 생활을 담아내서 최소한의 물리적 존재 조건을 확보해주어야 한다. 물질적 벽은 당연히 필요하다. 문제는 정도인데, 불교적 세계관에 의하면 공간은 대방광의 상태를 닮아야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아무리 사람 사는 공간이라고 해도 사람이 왔고 사람을 낳은 근원적 공간 상태인 대방광을 닮아야 한다. 비움에서 불이로 이어지는 한옥의 공간은 대방광을 닮은 좋은 예이다.

 

대방광은 반드시 큰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최고의 대방광은 물론 우주 전체이지만 모든 완결된 존재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확장할 수 있다. 이때 완결된 존재 상태를 구성하는 개체와 개체, 그리고 개체들이 모여서 이루는 전체 사이에 불이의 관계가 성립되어야 대방광의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지극히 큰 것(=전체)과 지극히 작은 것(=개체) 사이에 분별과 차별이 없이 하나로 통하는 상태 역시 대방광의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이다. 큰 것과 작은 것은 상즉상입(相卽相入)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우주로서의 대방광은 이 둘이 아예 하나로 같아져 있는 상태이다.

 

한옥의 방은 좋은 예이다. 벽을 고정시키기보다 가변형으로 해서 방과 방 사이를 가능한 한 많이 열고 소통하려 한다. 창문도 면적은 전면 유리보다 작지만 방의 앞뒷면에 나는 경우가 많아서 외부와 통하는 경로가 여럿이다. 벽과 창의 재료도 흙과 창호지를 써서 외부와의 단절성을 최소화했다. 개체와 개체는 원활히 통하며 이것들이 모여 집의 전체 구성을 이룬다. 도형적 윤곽과 그것이 한정하는 면적의 합으로 집의 전체를 구성하는 현대식 개념과 다른 한옥만의 공간 개념이다.

 

한옥의 전체 구성은 면적의 합보다는 경로의 합에 더 가깝다. 개체의 합보다는 개체 사이의 관계와 연결의 합에 가깝다. 전통 한옥에 대해서 얘기할 때 집의 평수는 보통 거론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식 개념으로 정확한 평수를 찾아내는 일부터 쉽지 않다. 30평이면 한옥으로는 작지 않은 편에 속하는데, 한옥에서는 공간 이용이 벽이 한정하는 면적 속에서만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과 소통하며 주변까지 사용 영역으로 확장되기 때문에 콘크리트 벽으로 막힌 현대식 30평집보다 훨씬 넓게 사용할 수 있다.

 

 

원융무애

대방광의 개념이 적용된 한옥 공간은 원융무애(圓融無礙)한 상태로 발전된다. 원융무애란 막힘과 분별과 대립이 없이 두루두루 통하는 상태로 흔히 불교에서 가장 이상적인 존재 상태로 여긴다. 한옥 공간은 건축에서 원융무애가 구현된 예로 볼 수 있다. 직접적 연관성을 증명할 문헌 자료 같은 것은 물론 없지만 불이 공간과 대방광을 매개로 유추 해석하면 큰 무리 없이 적용할 수 있어 보인다. 특히 불교의 원융무애 사상이 노장의 무위 사상과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에 이것까지 연결 고리로 삼으면 연관성은 더 커진다.

 

관건은 역시 벽과 공간 사이의 관계이며 공간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 모아진다. 이쪽 벽도 저쪽 벽도 공간이 생겨나기 위한 방편일 뿐, 벽이 공간을 만드는 것은 아니며 벽 자체가 공간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공간은 이것들을 관통하고 싸고돌며 순환하고 원통하는 흐름의 상태이다. 벽과 벽 사이를 융통하며 이쪽 비움과 저쪽 비움을 서로 포함하는 흐름의 상태가 공간인데 이것이 곧 원융무애의 상태이다.

 

 

부마도위 박영효가옥 사방으로 통하는 한옥의 순환 공간은 불교의 원융무애에 유추할 수 있다.

 

 

모든 것은 형상이나 언어를 넘어선 한 가지의 지혜로 모이니 회삼귀일(會三歸一)이라 했다. 불이와 대방광과 원통의 공간도 그 중 하나이다. 눈에 보이는 것,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 면적과 장식 등은 인연 따라 생겼다 없어지는 것일 뿐, 공간은 이런 부질없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간을 인간의 인식으로 정의하고 벽을 세워 가두며 눈으로 보려는 것은 허망한 아집일 뿐이다. 공간은 정형으로 잡히지 않으며 규범으로 구체화되지도 않는다. 항상(恒常)의 상태로 화석화되지도 않으며 고정적 실체를 거부한다. 늘 변화하는 중에 있으며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무형으로 흘러 다닐 뿐이다. 이곳이 뚫리면 그것을 인연 삼아 흘러나갔다가 다시 저쪽에 또 다른 인연을 만들어 흘러 들어오기도 한다. 노장의 무위 개념과 다르지 않다. 그대로 한옥 공간의 특징이다.

 

한옥 공간의 순환성과 원통성, 여기에서 나타나는 가변성과 무형성은 원융무애를 닮았다. 한옥의 원통한 공간에서는 구별과 차별이 무의미하다. 앞뒤, 위아래의 차별이 없으며 겉과 속의 구별도 없다. 계급에 따른 위계와 별도로 순수한 물리적 구조로 보면 항상 똑같이 찰랑찰랑 차 있는 상태에 일순간 가름만이 잠시 나타났다 곧 다른 가름을 만들며 사라져 갈 뿐이다. 우주에 꽉 차있는 한 덩어리의 평등한 상태이다. 공간은 근원적 상태로 존재한다. 이것이 벽의 가름에 의해 현실 세계에서 한 순간 고형적 모습으로 나타날 뿐이다. 공간은 무량무수(無量無數)한 방편과 가지가지의 인연과 비유의 언사에 의해 인간의 현실사를 담아내는 포괄체로 기능한다.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동서양을 막론한 건축역사와 이론을 주 전공으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명비평도 함께 한다. 현재까지 37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공부로 익힌 건축이론을 설계에 응용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jyimi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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