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 후 보속을 안 하면 성체를 못 모시나요?
가톨릭 교회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힘 중의 하나는 바로 고해성사입니다.
인간은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에 죄를 짓게 됩니다. 죄라는 말의 어원은 내가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길에서 이탈되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해성사는 세례를 받은 신자가 세례 이후의 죄들(본죄)에 대하여 사제를 통하여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으며, 죄로 인하여 상처를 입혔던 교회와 공동체에 다시 화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치유와 화해의 성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고해성사를 통하여 마음의 평화와 영적인 힘과 위로를 얻음으로써 다시금 그리스도인답게 생활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가톨릭 교리는 고해성사가 다섯 단계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곧 성찰과 통회(상등통회, 하등통회), 정개(定改)와 고해 그리고 보속이 그것입니다. 이 다섯 요소들 모두가 고해성사가 가진 필수적인 단계들입니다. 하지만 이 요소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통회와 죄의 고백, 그리고 사죄경입니다. 즉 하느님께로부터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반성과 함께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철저한 결심이 필수적이고, 또한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은 죄의 용서에 대한 사죄권(마태 18,18 참조)이 있는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고 그 사제로부터 사죄경을 받는 것이 고해성사의 핵심입니다. 이렇게 죄의 용서는 고해자 자신의 통회와 고백, 사죄경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고 따라서 고해성사 후에 보속을 안했다고 해서 주님의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마땅히 고행성사의 완성을 위해서는 보속으로 끝맺는 것이 맞지만 보속을 못했다고 해서 고해성사가 무효가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보속은 고해성사 안에서 어떤 위치를 가질까요?
보속이란 죄의 결과에 대해 보상하거나 대가를 치르는 일입니다. 즉 죄를 지은 결과로 인한 인간의 벌(잠벌, 暫罰)을 기워 갚는 행위로서 죄의 용서 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실천 행위입니다. 결국 우리가 사심판과 연옥에 가게 될 때 받아야 할 벌을 이 지상에서 갚아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보속은 일반적으로 고해자의 영신적 이익을 위해 주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해성사 후에 보속을 미처 행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고해성사를 다시 하실 필요는 없고, 또한 성체를 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고해성사의 완성을 위하여 지금이라도 보속을 하시되, 만일 내 보속이 무엇인지 잊어버렸다면 다음 고해성사 대에 고해 사제에게 보속실천을 하지 못했던 이유 등을 고해하시면 다시금 보속을 받고 실천해서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고해성사의 시작은 무엇보다 자신의 죄에 대한 통회입니다. 무엇보다 하느님 앞에 내 자신을 낮추고 이웃들과 화해하는 것이 진정한 고해성사의 은총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2017년 4월 2일 사순 제5주일 빛고을 4면, 한분도 베네딕토 신부(교포사목, 프랑스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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