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감실에 성체는 모셔져 있는데, 왜 예수님의 피인 성혈(포도주)은 모시지 않나요?

문성식 2019. 3. 12. 08:58


감실에 성체는 모셔져 있는데, 왜 예수님의 피인 성혈(포도주)은 모시지 않나요?

 

 

초대 교회 신자들은 최후만찬 중 예수께서 분부하신 말씀을 충실히 따라 주님을 기억하면서 함께 모여 빵을 나누고 성체와 성형을 영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11세기까지 양형 영성체(성체와 성혈을 모두 영하는 방식)가 지켜졌으나, 12세기 말에 이르러 단형 영성체(성체만 영하는 것)가 우세하게 되었는데요, 그 이유는 신자들의 증가로 인해 전례와 영성체 시간이 너무 길어졌기 때문입니다. 이후 신학자들은 단형 영성체 또한 완전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는 온전한 영성체임을 신학적으로 뒷받침하였습니다. 즉 성체 안에는 예수님의 살만 존재하고 성혈 안에는 예수님의 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성체에도 예수님이 온전히 계시고 성혈 안에도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에 동방 교회에서 서방 가톨릭교회의 단형 영성체 관행을 반박하자 이에 대해 콘스탄티노플 공의회(1414-1418년)에서는 양형 영성체를 금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오래전부터 교회는 영성체 방법뿐 아니라 미사 중 영성체를 받아 모신 후 남는 성체에 대한 보관과 병자들의 영성체에 대한 방식을 고민해왔습니다. 그래서 초기교회에서는 성체를 제의실에 보관하기도 했었습니다만, 이후에는 성당에(정확한 위치는 제대 위에) 감실을 설치하도록 하여 그곳에 성체를 모시도록 했습니다. 1917년 교회법전에는 제대 위 감실 설치 규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우리말인 ‘감실(龕室)’은 실제로는 도교에서 따온 말입니다. 라틴어로는 ‘타베르나쿨룸(tabernaculum)’이라 하는데, 이 단어는 천막, 초막을 의미합니다. 교부들은 예수님의 육신을 잉태한 마리아의 태가 바로 최초의 감실이며 모든 감실의 원형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감실에 성체를 모셔 두는 첫 번째 주 목적은 죽을 위험에 놓인 병자에게 노자 성체를 영해 주는 데에 있습니다. 두 번째 목적은 미사 외에도 성체를 영해 주며,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묵상하는 성체조배, 그리고 성체 강복을 위한 것입니다. 때문에 감실은 성체가 모독될 위험이 없도록 보호하고 보존하는 기능을 맡습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빨간 초나 촛불로 감실 주위를 밝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실에 성체가 모셔져 있다면 이를 관리하는 이가 항상 있어야 합니다. 본당 사제는 그에 대한 첫 번째 책임을 맡습니다.

 

사실 감실에는 미사 후 남은 성체와 성혈 모두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사목적으로 성혈은 미사 중 사제가 모실 수 있는 만큼만 축성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성혈은 (성작에 담아) 감실에 오래 보관하기에 적절치 않으므로, 또한 남은 성혈의 이동에 있어서 여러 가지 제약이 많기 때문에 감실에는 성체만 모셔두는 것입니다.

 

[2017년 6월 4일 성령 강림 대축일 빛고을 4면, 한분도 베네딕토 신부(교포사목, 프랑스 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