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중요민속자료 제17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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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북 안동시 풍산읍 하리1리 192-2 |
소재지 | 풍천면 |
지정일 | 1984.01.10 |
수량/면적 | 일곽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이종훈 |
관리자 | 김필임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반대하여 풍산으로 내려온 이웅의 후손으로 숙종 때 사람인 이문한이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집의 이름을 일성당(日省堂)이라 한 것은 외당에 독서실을 만들어 하루하루를 반성한다는 뜻으로 현판을 달았기 때문이다. 참나무숲이 우거진 뒷동산을 배경으로 비교적 높은 곳에 세워진 ㅁ자형 집으로 조선시대 전통 민가의 대표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곳이다.
고려말 전농정(典農正)을 지낸 전의 이웅(全義 李雄)이 이성계(李成桂)의 역성혁명(易姓革命)에 반대하여 풍산(豊山)에 낙향(落鄕)하였으며 그의 후손이 하리동(下里洞)에 입향(入鄕)하였다. 일성당(日省堂)은 이웅의 후손으로 숙종조인 이문한(李文漢)(1612∼1704)이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며, 집의 이름을 일성당(日省堂)이라 한 것은 외당(外堂)에 독서실을 배치하고 하루 하루를 반성한다는 뜻으로 현판(懸板)을 달았기 때문이라 한다.
이 가옥은 참나무 숲이 우거진 뒷동산을 배경으로 남남동으로 좌향(坐向)하였고 앞마당 앞쪽 둑밑에는 마당귀로 경사져 올라오는 길 옆으로 곡간수(谷間水)가 흐르고 있다. 비교적 높은 자연석 축대 위에 세워진 ㅁ자평면의 건물로 지붕모양이 흔히있는 맞배지붕으로 처리하지 않고 앞채는 모임지붕처럼 연결하였으며 뒤채의 중앙부는 합각지붕으로 꾸몄다.
사랑채와 안채부분이 ㅁ자집으로 한몸을 이루었으며 안채부분은 정면 문간의 좌측에서 뒤채까지 ㅁ형을 이루고 있다. 안채의 중앙은 앞에 툇마루가 설치된 안방과 마루가 각각 1칸씩 차지하였는데 이 2칸은 앞채의 3칸크기에 맞먹는 큰 간살로 되어있다. 안방의 좌측에는 뒤로 반칸을 돌출시킨 골방이 1칸 모서리에 설치되었고, 그 앞에는 안방에 접하여 마당쪽으로 2칸반을 뽑은 긴 부엌이 고방에 닿았으며 고방은 앞채에 포함되어 있는 외양간에 이어졌다. 마루의 우측에는 웃방을 2칸 설치하고 그 앞에 대문간을 두어 웃방 아궁이를 시설하였다. 안채의 기둥은 방주(方柱)를 사용하고 있으나 정면의 중앙기둥만은 모를 많이 죽여서 주신(柱身)을 8각(角)으로 다듬었으며 자귀질한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 기둥머리에서 들보를 받고있는 보아지가 고졸(古拙)한 모양을 보이는 민도리 집으로 오량가(五梁架)에 제형(梯形) 판대공(板臺工)을 세워서 마루대를 올렸다. 안방 부엌 상부의 고미다락은 골방에서 오르내리게 되어 있는데 이는 좀 보기드문 구성이다.
사랑부분은 안채부분과 대각(對角)을 이루는 방향에 ㅁ형으로 배치되었는데 우각부(隅角部)에 놓인 양면이 개방된 사랑마루 1칸을 중심으로 좌측의 정면쪽에 2칸통 사랑방을 들였고 마루의 뒤쪽에는 벽감이 달려있는 마루방 1칸을 설치하였다. 그런데 사랑마루와 벽감이 있는 마루방의 천장이 고미반자로 되어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본 가옥은 골방에서 부엌위 다락으로 출입하게 된것과 사랑마루 및 벽감이 있는 마루방에 고미반자를 설치하고 있는 점이 보기 힘든 구조다. 그러나 이런 것은 이 집의 독특한 특색이라기보다는 후대의 평면구조의 변형에 따른 결과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사랑부분에 많은 구재를 사용하고 있는 것도 의혹을 불러 일으킬만한 요소로서 작용한다.
중요민속자료 178-1 |
안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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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민속자료 178-2 |
안변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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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민속자료 178-3 |
바깥변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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