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중요민속자료 제17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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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북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248 |
소재지 | 풍산읍 |
지정일 | 1984.01.10 |
수량/면적 | 일곽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김윤 |
관리자 | 이기준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
조선 중종시(中宗時) 이조참판(吏曹參判)을 거쳐 삼도방백(三道方伯)을 지낸 청백리(淸白吏) 허백당(虛白堂)의 12대손인 학암(鶴庵) 김중휴(金重休)(1797∼1863)가 분가할때에 건립한 주택이다. 후일 학암이 조산대부(朝散大夫) 제능참봉(齊陵參奉)을 지냈기 때문에 본 가옥을 참봉댁(參奉宅)이라 부르게 되었다.
동네 어귀를 돌아들면 약간 경사진 높은 터에 토담을 두르고 행랑채에 솟을대문을 내었다. 원래는 5칸(間)이었으나 대문의 우측 2칸은 허물어져 철거되고 주초만 남아있다. 넓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안채가 남향하여 배치되었고 그 우측에 고간(庫間)이 병렬(竝列)하였다. 마당의 동편에는 사랑채가 서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이외에도 초당(草堂), 마구간 등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없다.
안마당으로 통하는 중문간(中門間)의 좌측에는 툇마루 뒤에 칸반(間半) 크기의 사랑방을 배치하고 좌단(左端)에 익사(翼舍) 1칸을 돌출(突出)시켜 사랑마루를 꾸몄는데 뒷벽 지게문 위에 벽감을 설치하여 처마 밑에 달아놓았다. 중문간의 우측에는 마구간과 부엌방이 1칸씩 놓여서 앞채를 이루었으며 안방 부엌과 직각으로 접하였다.
안채는 안마당과 같은 폭의 3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건넌방, 우측에 안방을 배치하였다. 대청 전면의 기둥은 원주(圓柱)를 사용하였고 보간 1칸의 좁은 우물마루 상부는 삼량가(三樑架)로 동자주(童子柱)를 세워 마루대를 받고 있다. 마루의 뒷벽에는 각칸에 양개(兩開) 널문을 내었는데 어간(御間)의 것은 문턱을 낮추어서 뒤꼍 출입이 용이하게 하여 놓았다. 안채의 우측에는 판벽(板璧)을 친 4칸 곳간채를 병렬로 배치하였다.
사랑채는 전면의 툇마루뒤에 2칸통으로 된 온돌방과 전면이 개방된 마루 1칸을 배치한 ㄱ자집인데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서 방 구들과 마루바닥이 다 파손되었다. 기둥과 보등이 구재(舊材)이면서도 풍화의 정도가 안채보다 덜한 것으로 보아 후대에 건축한 것으로 생각된다.
행랑채의 5칸중 대문칸의 우측 2칸은 주춧돌만 남아 있고, 좌측 2칸은 온돌방으로 꾸며져 있다.
이 가옥은 조선 후기건축으로 안동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의 주택이다. ㅁ자집에서는 후대에 사랑채 부분을 확장 개조하는 경우가 많으나 이 집은 사랑채를 별동(別棟)으로 증축한 예에 속한다.
중요민속자료 179-1 |
안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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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민속자료 179-2 |
곳간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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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민속자료 179-3 |
문간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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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민속자료 179-4 |
방아간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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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민속자료 179-5 |
측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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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민속자료 179-6 |
별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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