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jpg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유씨의 동족마을로 빼어난 자연경관과 민속·유교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조선시대 양반촌이다. 이 집은 용궁현감을 지낸 유교목 선생이 세웠다. 조선 헌종 2년(1836)에 지었고 남촌과 북촌을 가르는 길가에 자리잡고 있는데, 하회마을 동쪽에 있다하여 하동고택이라고도 부른다.

 

이 집은 예천(醴泉) 용궁현감(龍宮縣監)을 역임한 유교목(柳敎睦)이 서기 1836년에 건축하여 대를 이어 살아오다가 1953년에 현소유자의 부친 유시익(柳時益)이 인수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당호(堂號)는 건물이 하회(河回)마을 동쪽에 있다하여 하동고택(河東古宅)이라 하였다.

남촌(南村)의 중심에서 북방으로 남촌과 북촌을 가르는 길가에 자리잡고 있는 이 주택은 행랑채, 사랑채, 안채들이 독립되어 있지만 사랑채와 안채는 튼ㅁ자를 이루어 양반가(兩班家)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안채의 중앙에는 안마당 가득히 정면 3칸의 대청을 들여 놓았는데 보간은 1칸으로 비교적 폭이 좁으며 오른쪽 칸의 뒷부분 반칸에는 아래위 두층으로 된 수장공간(收藏空間)을 설치하여 놓았다. 잡석기단(基壇)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아 방주(方柱)를 세웠으며 지붕가구(架構)는 삼량가(三樑架)로 들보위에 각대공(角臺工)을 세운 간략한 구조로 되어있다. 대청의 좌측에는 안방 2칸과 그 앞에 부엌 2칸을 마당쪽으로 길게 내려뽑아 배열하였고 이와 대칭으로 대청의 우측에는 1칸크기 건넌방과 그 앞의 1칸 마루에 이어 중간방 1칸을 배치하였다. 그런데 건넌방과 중간방 사이에는 대개 아궁이를 설치하는 부엌이 놓이는데 이 집에서는 마루가 놓임으로써 건넌방 아궁이가 건물의 외부 측면에 설치되었다.

정면 3칸의 사랑채 좌측에는 전면으로 약간 나앉은 중문간채 4칸이 접해 있다. 사랑채 지붕의 오른쪽 마무리는 합각으로 꾸몄지만 좌측은 중문간의 한단 낮은 박공지붕 위에 다시 박공지붕이 겹쳐지는 꼴을 하고 있다. 사랑채의 평면구성은 좌측의 전면 2칸에 툇마루를 설치하고 뒤쪽에 사랑방을 들였으며 우측간은 전면이 개방된 마루를 놓았다. 기둥은 방주(方柱)를 사용하였는데 잡석기단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았다. 마루의 상부 가구(架構)는 오량가(五樑架)로 충량위에 낮은 받침을 깔고 소로를 얹어서 외기를 받고 있으며 중도리와 외기틀 안에 우물반자를 꾸몄다. 사랑방 앞 툇마루의 천장은 별스럽게 고미반자를 쳤다. 사랑채 좌측의 중문간채는 사랑채에 접한 중문간 좌측으로 광을 3칸 배열하여 안마당의 앞을 막고 있다.

행랑채는 4칸의 좌단에 대문간이 설치되었고 우측으로 머슴방 2칸에 이어 마구간이 놓여져 있다.

주택의 평면구성에 있어서 안대청에 보이는 광의 배치에서는 예스러움을, 그리고 건넌방과 중방 사이의 마루에서는 새로운 변화를 느끼게 하는 건물로서 조선 후기 주택연구의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