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중요민속자료 제17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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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북 예천군 유천면 율현리 143 |
소재지 | 유천면 |
지정일 | 1984.01.10 |
수량/면적 | 일곽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임재원 |
관리자 | 임재원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
현 소유자의 말에 따르면 그의 8대조가 매입한 건물로 그 이전의 사실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한다.
본 가옥은 수목이 우거진 낮은 언덕을 배경으로 하여 전면의 높은 잡석축대 위에 건물을 남향으로 배치하였으며 전방은 비교적 넓은 논이 펼쳐져 있어서 시야(視野)가 적절히 열려져 있다.
일변(一邊) 5칸 ㅁ자집의 전면에 1칸씩 양익(兩翼)이 돌출하여 정면이 7칸으로 늘었고 지붕의 양단(兩端)은 박공으로 처리하였다. 안방과 상방의 뒤쪽에도 각각 1칸씩 도장방이 돌출되었고 지붕은 박공으로 처리하였다. 따라서 전체평면이 ㅂ형을 이루고 있다.
정면 7칸의 좌측에서 셋째칸에 안마당으로 출입하는 대문칸을 설치하고, 그 좌측 정면 2칸을 사랑채로 꾸몄다. 좌단간(左端間)은 전면이 개방된 사랑마루를 들였고 뒷벽에는 처마 밑으로 반침처럼 달아내어 감실을 설치하였다. 사랑마루와 대문간 사이의 1칸은 전면을 툇마루처럼 꾸며서 사랑마루와 연결하고 그 뒤편에 칸반(間半) 크기의 온돌방을 두었는데 앞쪽의 1칸크기 사랑방과 뒤쪽의 반칸(半間)크기 책방 사이에는 미서기문을 설치하였다. 책방의 서측벽에는 책장(冊藏)이 설치되어 있고 동측벽에는 안마당으로 출입할 수 있게 외여닫이 세살문을 내었다. 사랑채의 기둥은 자연석 초석위에 방주(方柱)를 세웠고 마루앞 기둥 전면에는 헌함을 돌렸다. 대문칸의 우측에는 마구간 1칸, 고방 2칸 및 우단(右端)에 모방 1칸의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안채의 중심은 대청으로 안마당의 폭과 같은 정면 3칸이지만 보간이 1칸으로 세장(細長)한 편이다. 기둥은 방주(方柱)로 자연석 초석위에 세웠으며 상부 가구(架構)는 삼량가(三樑架)로 판재(板材)에 가까운 각대공(角臺工)을 세운 위에 아주 짧은 단장혀로 보이는 부재를 얹어서 종도리(宗道里)를 고였고 처마도리에도 장혀를 시설하지 않은 간결한 구조로 되어 있다. 대청의 뒷벽은 토벽(土壁)을 치고 각칸의 중앙에 외여닫이 널문을 달아놓았다. 대청 좌협간(左夾間)의 전면 기둥에는 중방을 걸치고 상부에 토벽을 쳤으며 중방의 하면에는 뒷벽의 외여닫이 널문과 비슷한 폭으로 문설주를 세웠던 것으로 추측되는 장부구멍이 2개소(個所) 남아있다. 그리고 또 기둥의 중방 하부 양측면에는 가시새를 끼웠던 흔적도 남아 있어서 아마도 건축 당시에는 중방 하부에 외여닫이 널문을 설치한 뒷벽과 유사한 구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대청의 어간(御間)과 우협간(右夾間)에도 기둥사이에 중방을 걸쳤던 흔적, 처마도리의 하면에 중깃을 세웠던 구멍, 중방을 끼웠던 구멍, 하부의 기둥 측면에 가시새를 설치하였던 자국들이 남아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좌협간의 전면벽과 같은 구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청의 좌우에는 상방과 안방을 여느것처럼 대칭적으로 배치하였으나 도장방을 뒤쪽으로 1칸씩 돌출시켜 놓은 것은 흔한 예가 아니다.
이 집은 건축연대를 잘 알 수 없으나 고졸(古拙)한 평면구성과 ㅁ자 주택에서는 보기 어려운 안대청의 폐쇄성 등 구조적인 독특한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어 결코 건축연대를 낮추어 볼 수 없으며 주거 발달사 연구의 중요한 대상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본 가옥은 수목이 우거진 낮은 언덕을 배경으로 하여 전면의 높은 잡석축대 위에 건물을 남향으로 배치하였으며 전방은 비교적 넓은 논이 펼쳐져 있어서 시야(視野)가 적절히 열려져 있다.
일변(一邊) 5칸 ㅁ자집의 전면에 1칸씩 양익(兩翼)이 돌출하여 정면이 7칸으로 늘었고 지붕의 양단(兩端)은 박공으로 처리하였다. 안방과 상방의 뒤쪽에도 각각 1칸씩 도장방이 돌출되었고 지붕은 박공으로 처리하였다. 따라서 전체평면이 ㅂ형을 이루고 있다.
정면 7칸의 좌측에서 셋째칸에 안마당으로 출입하는 대문칸을 설치하고, 그 좌측 정면 2칸을 사랑채로 꾸몄다. 좌단간(左端間)은 전면이 개방된 사랑마루를 들였고 뒷벽에는 처마 밑으로 반침처럼 달아내어 감실을 설치하였다. 사랑마루와 대문간 사이의 1칸은 전면을 툇마루처럼 꾸며서 사랑마루와 연결하고 그 뒤편에 칸반(間半) 크기의 온돌방을 두었는데 앞쪽의 1칸크기 사랑방과 뒤쪽의 반칸(半間)크기 책방 사이에는 미서기문을 설치하였다. 책방의 서측벽에는 책장(冊藏)이 설치되어 있고 동측벽에는 안마당으로 출입할 수 있게 외여닫이 세살문을 내었다. 사랑채의 기둥은 자연석 초석위에 방주(方柱)를 세웠고 마루앞 기둥 전면에는 헌함을 돌렸다. 대문칸의 우측에는 마구간 1칸, 고방 2칸 및 우단(右端)에 모방 1칸의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안채의 중심은 대청으로 안마당의 폭과 같은 정면 3칸이지만 보간이 1칸으로 세장(細長)한 편이다. 기둥은 방주(方柱)로 자연석 초석위에 세웠으며 상부 가구(架構)는 삼량가(三樑架)로 판재(板材)에 가까운 각대공(角臺工)을 세운 위에 아주 짧은 단장혀로 보이는 부재를 얹어서 종도리(宗道里)를 고였고 처마도리에도 장혀를 시설하지 않은 간결한 구조로 되어 있다. 대청의 뒷벽은 토벽(土壁)을 치고 각칸의 중앙에 외여닫이 널문을 달아놓았다. 대청 좌협간(左夾間)의 전면 기둥에는 중방을 걸치고 상부에 토벽을 쳤으며 중방의 하면에는 뒷벽의 외여닫이 널문과 비슷한 폭으로 문설주를 세웠던 것으로 추측되는 장부구멍이 2개소(個所) 남아있다. 그리고 또 기둥의 중방 하부 양측면에는 가시새를 끼웠던 흔적도 남아 있어서 아마도 건축 당시에는 중방 하부에 외여닫이 널문을 설치한 뒷벽과 유사한 구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대청의 어간(御間)과 우협간(右夾間)에도 기둥사이에 중방을 걸쳤던 흔적, 처마도리의 하면에 중깃을 세웠던 구멍, 중방을 끼웠던 구멍, 하부의 기둥 측면에 가시새를 설치하였던 자국들이 남아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좌협간의 전면벽과 같은 구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청의 좌우에는 상방과 안방을 여느것처럼 대칭적으로 배치하였으나 도장방을 뒤쪽으로 1칸씩 돌출시켜 놓은 것은 흔한 예가 아니다.
이 집은 건축연대를 잘 알 수 없으나 고졸(古拙)한 평면구성과 ㅁ자 주택에서는 보기 어려운 안대청의 폐쇄성 등 구조적인 독특한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어 결코 건축연대를 낮추어 볼 수 없으며 주거 발달사 연구의 중요한 대상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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