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70.jpg 읍성(邑城)의 서문도 현재 형체만 있을 뿐 유구(遺構)를 알 수 있는 시설은 남아있지 않다. 그 서문을 나서면 곧바로 우회하는 골목안에 성벽을 마당 끝에 둔 집이 있다. 남향의 양명(陽明)한 집으로 낙안(樂安)마을의 보편적인 평면구성을 대표한다고 할만한 구조를 지녔다.

초가삼간(草家三間)의 구성이다. 부엌 간반(間半)과 건넌방 옆의 헛간부설은 건평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조선조의 관습이었다. 이 집은 앞뒤퇴가 다 있어서 통산(通算)하면 8간의 넓이가 된다. 이것을 옛사람들은 초가삼간이라 하였던 것이다. 부엌은 앞퇴까지를 포괄하10771.jpg 여서 판선(板扇)이 평주간(平柱間)에 설치되었다. 여느 부엌의 구성이나 별다른 바가 없다. 단지 부엌의 서쪽과 뒤편 벽을 트고 토담을 쌓아 넓혀서 그만큼 넓게 사용하고 있는 차이를 보일 뿐이다. 안방벽 쪽으로 부뚜막이 있다. 앞퇴와의 간벽(間壁)은 판벽(板璧)으로 막혔는데 중방(中枋)위에는 판비(板扉)를 단 벽장을 만들어 찬장과 같은 용도로 쓸 수 있게 하였다. 부엌 다음이 안방 1간이고 다음이 안마루 1간, 이어 웃방 1간이 계속되고 그 다음간은 헛간이다. 토담으로 쌓은 이 부분은 나중에 달아낸 것으로 보인다. 두 방은 뒤의 퇴를 열었으나 안마루만은 그것을 포함시켜서 그만큼 넓게 되었다.

방, 안마루, 건넌방엔 앞쪽으로 띠살의 분합문이 달렸다. 방의 문짝은 키가 낮은데 비하여 안마루의 문짝은 키가 높다. 대청엔 단 문짝을 크게하는 유형에 속하는 것이다. 여기의 안마루는 일종의 고방(庫房)이냐 아니냐의 미묘한 구조를 보인다. 곽형두씨택(郭炯斗氏宅) 같이 판벽(板璧)한 뒤에 문얼굴낸 구조이면 분명히 고방인데 이집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는 중 ·서부 제택(弟宅)들에서 대청 앞에 분합문을 달아 개폐시키게된 그런 줄기에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안마루라는 명칭도 고방이라 부르는 의도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점은 아주 미묘하여서 실제로 의도된 것인지의 여부에 달린 것이나 창건한 주인과 목수가 없는 현재로서는 판가름하기 어렵다. 대청 바깥벽에 분합문을 달려는 의도이었다고 하면 그것만으로도 지정될 학술적인 가치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