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읍성(樂安邑城)에는 동문이 있다. 동문 밖에는 석교(石橋)가 있고 석수(石獸)도 있다. 그만큼 중요시되던 문임을 알 수 있는데 이 문은 향교(鄕校)로 가는 대로에 연하여 있어서 통행이 빈번하였고, 길가에는 대소의 점포들이 즐비하였다. 지금도 상황은 대략 그와 비슷하다. 최창우가(崔昌羽家)는 그런 점포중의 하나로 다른 집들에 비하여 고형을 비교적 순수하게 지니고 있다.
낙안성내외엔 ㄱ자형의 평면이 드문데, 이집은 ㄱ자의 평면이다. 고형의 점포라는 점과 평면이 ㄱ자형이라는 점에서 이 집은 지정대상에 오르게 되었다.
대로에서 철대문을 열고 약간 경사진 골목에 들어서면 오른편 벽체는 온담인듯이 쌓여있다. 대로에 면한 1간이 점포자리이고 이어서 방 1간이 있어서 이 방에 드나들게 하려고 약간의 쪽마루를 설치하였다.
점포에서 몸체로 이어지는 자리에 일변이 여섯자, 나머지 한변이 일곱자 되는 아주 작은 방이 1간 있다. 그야말로 골방이거나 구석방이다. 이렇게 작은 방을 만들어야 하였던 것은 대로에 연한 헛간(虛間)과 같은 넓은 공간에 들어가기 위한 개구부(開口部) 설치에 그 목적이 있다.
집은 이로부터 ㄱ자로 꺾이는데 헛간 다음이 안방이다. 안방의 앞쪽엔 반반간(半半間)의 앞퇴간을 만들어 편리하도록 꾸몄다.
방 다음이 넓은 부엌이고, 부엌의 부뚜막은 방쪽 벽에 있다. 여기에서 땐 불이 방고래를 한바퀴 돌아 다시 부뚜막쪽으로 나오면서 굴뚝으로 빠지게 된다. 부뚜막에 굴뚝이 설치되는 남방형의 유례를 여기에서도 볼 수 있다는 점에 이집의 학술적인 가치가 있다.
부엌 앞쪽에 있는 장독대는 두텁게 쌓은 낮은 맞벽으로 감싸았고, 그 옆에 있는 우물에는 지금 펌프가 설치되었다.
장독대를 석벽이나 맞담, 혹은 울을 둘러서 막는 예는 성내의 여러집에서 볼 수 있었으며 어떤 집에서는 치쌓은 돌각담의 일부를 화계처럼 만들어 거기에 장독을 늘어놓은 예도 있었다.
이처럼 남해안과 섬에서 장독대를 감싸는 일은 지역적인 특성을 보이는 구조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