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란 무엇인가.
당신은 매일 밤마다 당신의 짝과 한 침대에서 딩굴며 한 이불을 덮고서 편안하게 잠들수있는가?
헝가리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한 침대에서 잘 수 있다는 것은 한 침대에서 섹스할 수 있다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밀란 쿤데라는 '높은곳에서 우리가 아무리 튼튼한 난간을 붙들고 서 있더라도 현기증을 일으키는 이유는 참을 수 없는 추락에 대한 욕망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쿤데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약간의 내용을 발췌해 본다. 한 침대에서 잔다는 것은 섹스만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한 침대에서 밤에 같이 잠이 든다는 것은 그 사람의 코고는 소리...
이불을 내젓는 습성...이가는소리...단내나는 입등... 그것을 이해하는 것 이외에도, 그 모습마저 사랑스럽게 볼 수 있다는 뜻이다.
화장안한 맨 얼굴을 예쁘게 볼수 있다는 뜻이며 로션 안바른 얼굴을 멋있게 볼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팔베게에 묻혀 눈을 떳을때 아침의 당신의 모습은 볼만 하리라. 눈꼽이 끼고, 머리는 떴으며, 침 흘린 자국이 있을 것이다.
또한 입에서는 단내가 날 것이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단내나는 입에 키스를 하고 눈꼽을 손으로 떼어주며 떠 있는 까치집의 머리를 손으로 빗겨줄 수 있다는 뜻이다.
당신이 함께 그와 또는 그녀와 잔다... 처음에 당신은 그의 팔베게 안에,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자겠지만, 한참 깊은 잠 중에서는 당신들은 등을 돌리고 잘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깊은 잠속에서 당신의 잠 버릇이 여지없이 다 나오기 때문이다.
이를 갈기도 하고,눈을 뜨고 자기도 하고, 배를 벅벅 긁거나, 잠꼬대를 한다거나, 잠결에 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당신이 함께 잔다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단내나는 입술로 키스를 할 수 있으며 옷을 충분히 입지 않았다면...바로 섹스가 가능 할지도 모른다. 섹스만을 하기 위한 잠자리에서와는 다르게 별도의 복잡한 절차와 교태와 암묵적인 합의가 필요 없다는 뜻이다. 그런... 한 침대에서 잔다는 것은... 매일 같이 잘 수 있다는 것은, 서로 매일 같이 섹스를 하는 사이와는 다른 것이다.
우리가... 집이 아닌 곳에서, 애인과 섹스를 할 때에는 우리는...일단 그와, 그녀와 사이에 어떤 합의가 있어야 한다. 사랑한다고, 믿는다고, 아니면 충분히 매력적이다 라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하튼 잘 만난 사람이며 사이라는 것을 서로...합의하에 이루어진다. 몇시에 호텔에, 또는 여관에 들어가서 몇시에 나선다는 그런 합의가 있으며, 그 곳에 가기 전에 상대방의 귀를 만진다든지, 엉덩이를 만진다든지, 하고 싶어...라고 말을 한다든지 하는 서로의 확실한 약속된 언어적, 비언어적 합의가 있을 것이다. 그곳에 가면... 남자는 계산을 하기 위해 지갑을 열 것이고. 여자는 텔레비젼을 켜며 콘돔을 준비하라고 말을 한다.
둘은...습관에 따라 먼저 목욕탕으로 들어가기도 하며 그냥... 침대에서 일부터 벌릴 수도 있다. 그렇게 한바탕의 폭풍이 지나가면... 잠시 누워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기도 하며... 여자는 눈썹이 지워지지나 않았는지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칠 것이고 남자는 자신이 여자를 만족시켰는지 곱씹어 볼 것이다. 그런 후 다시 한 번의 폭풍이 있을 것이다. 시간에 쫓긴다거나 정력이 형편없다면 그렇지 않겠지만. 그런후... 다시 목욕탕에 들어가 씻고. 그곳에 발을 디딜때와 다름없는 모습을 갖추기 위해 여자는 화장을 하고, 머리를 빗으며 남자는 목욕을 하고, 머리를 감을 것이다.
그러면... 섹스 뒤의 느낌은 어떻까. 사랑하는 사이라면, 그런 최면에 걸렸다면 좋을 것이고, 여자가 집에 늦었다면... 불안할 것이며. 새벽께라면... 남자는 더 머무르고 싶을 것이다.
가임 기간이라면 둘 중 하나는 불안할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기쁠지도 모른다. 불행하다면 둘 다 불안할 것이겠지만... 그들은 항상 꾸민 모습으로 만나며 눈꼽 낀 얼굴을 볼 수 없으며 단내나는 입술에 키스를 할 수 없다.
남자는 여자의 화장 안한 얼굴이 얼마나 큰 상상력을 요구하는지 알지 못할 것이며 여자는 남자가 얼마나 씻기 싫어하고 게으르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항상...잘 차려진 모습으로 만나며... 섹스는 ... 그들만의 합의된 축제이다. 그러므로, 한 침대에서 잘수 있다는 것은 한 침대에서 섹스를 할 수 있단 것과 분명 다르다...
산다는 것은 마치 스케치와 같다. 어떤 결단이 올바른 것인가를 검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어떤 비교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직접적으로 체험한다. 최초로 준비없이 체험한다. 미리 앞서 연습도 해보지 않고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와 같다. 하지만 삶을 위한 최초의 시연(試演)이 이미 삶 자체라면 삶이란 어떤 가치가 있을 수 있는가 ?
이러한 근거에서 삶은 언제나 스케치와 같다. 스케치 또한 맞는 말은 아니다. 스케치는 언제나 어떤 것에 대한 초안 혹은 어떤 그림의 리허설과 같은 것인데 반하여 우리들 삶의 스케치는 무(無)에 대한 스케치로서 그림없는 초안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소함에 얽메이는 사람이 아닌, 사소한 곳에서 행복을 만드는 사람이기를 희망한다.
[이상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
오랜 시간동안 함께 살아온 중년 부부는 막 피어오르는 꽃다운 나이의 연인들을 보며 "참 좋을 때다." 라고 부러움 반 시새움 반의 눈초리를 보내는 일이 있다. 옛 과거에의 영화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냥 부러워하기만 해도 될 것을 어떤 이들은 아예 자기가 처한 현실을 한탄하고 신세를 비관하기까지 한다. 부스스하고 너저분한 모습으로 허벅다리를 벅벅 긁어대는 아내나 남편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밀란 쿤데라의 말대로 뜨거운 연인들은 그 열정을 불태우기 위해서 남들의 눈을 피해 숙박업소를 찾아가곤 한다. 물론 쿤데라의 시각처럼 남자가 계산을 하는 동안 꼭 여자가 멀찌감치 떨어져서 어색한 순간을 참아내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한 침대에서 잔다' 는 것은 꼭 섹스만을 하겠다는 의사표현만은 아니다.
상대의 코고는 소리,이불을 들썩이는 습성까지 이해하고,눈곱 끼고 침 흘린 모습까지 정겹게 여기는 사이가 한 침대에서 함께 잠드는 사이인 것이다.
아침에 함께 눈뜨면 텁텁한 입 냄새를 풍기며 서로에게 입맞추고 침 자국을 닦아주는 사이이다.
섹스를 하고 싶은 날에는 오늘은 어디서 해야 하는지 몇 시까지 귀가해야 하는지 숙박료는 얼마인지 계산할 필요가 없고,상대의 합의를 얻기 위해 일부러 교태를 부리거나 작전을 쓸 이유도 없는 사이이다.
한 침대에서 섹스만 할 수 있는 이들은 항상 꾸며진 모습으로 만나기 때문에 상대의 흐트러진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으며, 그 남자의 고약한 잠버릇과 그녀의 지저분한 맨 얼굴을 알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 매일 밤 한 침대에서 당신의 짝과 잠들 수 있다면 한 침대에서 섹스만 할 수 있는 이들을 크게 부러워하거나 혹은 당신들의 모습을 비관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진정 아름다운 모습이란 오늘도 비좁은 침대에서 서로 부대끼며 한몸처럼 잠들어 있는 당신들, 바로 아름다운 부부(夫婦)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작품소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1984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사랑에 관한 철학적 담론을 담은 작품으로써, 미국의 뉴스 주간지 《타임》에 의해 1980년대의 '소설 베스트10'에 선정되기도 한 작품이다.
삶의 무게와 획일성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외과의사 토마스와 진지한 삶의 자세로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여종업원 출신 테레사, 자신을 둘러싼 정치적·사회적 속박으로부터 철저히 자유롭기를 원하는 화가 사비나, 그리고 사비나의 애인인 대학교수 프란츠 등 4명의 남녀를 통해 펼쳐지는 서로 다른 색깔의 사랑이야기가 주된 줄거리이다.
무거움과 가벼움의 차이가 동전의 앞뒷면처럼 공존하는 토마스는 테레사와 사비나를 동시에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한다.
토마스와의 사랑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테레사는 끊임없이 다른 여자를 만나는 토마스의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한다. 한편, 자유분방하며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는 사비나는 그 대가로서 조국 체코의 예술과 아버지, 그리고 진지한 애인 프란츠를 배신해야 하는 외로운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고수한다.
사랑과 성(性), 역사와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끝없이 갈등과 반목과 질시를 거듭하던 이들은 오랜 방황의 세월이 지난 뒤에야 결국 인간의 존재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은 인간의 삶과 죽음을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이분법적 측면에서 조명한 소설이다.
밀란 쿤데라는 대조적이며 전형화 된 4명의 주인공을 통해서 사랑의 진지함과 가벼움, 사랑의 책임과 자유, 영원한 사랑과 순간적인 사랑 등 모순되고 이중적인 사랑의 본질을 드러냄으로써 궁극적으로 인간 존재의 한계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특히 시간의 흐름을 파괴하는 독특한 서술형식은 이 소설의 주제의식인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영원회귀와 교묘하게 대칭을 이룰 뿐만 아니라 소설의 형식적 측면에서 포스트모더니즘 기법을 실험한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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