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여,가정,부부

부부사랑의 묘약 3가지

문성식 2011. 3. 8. 12:49

*성숙한 사랑은 상대의 연약함을 감싸안는 것

부부 상담의 경우 흔히 듣는 말이 상대방이 결혼 전과 달라졌다는 것이다. 어떤 부인은 결혼 전에는 남편이 끔찍이 자기를 사랑해 주고 자상하게 신경을 써 주었다고 했다. 그러나 결혼한 후 사랑은커녕 매사에 따지고 비난만 하니 두렵고 불안한 마음 뿐, 생활의 재미를 잃어 버렸다고 털어놓았다. 한편 남편은 상대방의 명랑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에 끌려 그녀를 사랑하게 됐다. 그러나 결혼 후에 보니까 신경질만 잘 내고 주부의 일도 잘 감당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자식 하나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고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의지하려고만 한다. 이런 여자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아마도 자기가 사람을 잘못 선택한 것 같다고 푸념을 토한다. 상대방이 변했다는 말은 나는 변하지 않았지만 상대방이 달라져서 자기가 받는 상처가 크다는 것을 알려 준다. 모두가 상대방의 잘못이라고 귀착해 버린다. 자기 자신을 냉철한 눈으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 주장과 감정에만 빠져서 분노와 미움, 배신감과 실망만 남게 된다(상대방을 자기의 욕구를 채워줘야 될 사람으로만 볼 때). 부부간에 왜 이러한 변화가 생겼을까.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사람이 변해서 문제가 생기게 됐을까? 부부들은 사랑의 심리를 배울 필요가 있다. 시행착오를 통해서 성숙한 사랑의 묘약을 찾아야 한다.

위의 부부의 경우 남편은 결손가정에서 자랐다. 그에게는 충분하지 못했던 부모의 사랑 때문에 마음속에 늘 외롭고 그늘진 곳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결여된 부모의 지도와 관심 속에서 그는 자기 스스로가 모든 일을 확인하고 판단하며 책임을 져야 하는 환경에서 성장해야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만나게 된 현재의 부인은 그가 찾았던 밝고 따뜻한 여인이었다. 그의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켜 주었다. 당시에 그녀의 성격은 그녀가 가진 다른 어떤 자원보다도 그에게 부각되었기에 그는 그녀의 다른 면을 보지 못했다.

부인은 오빠가 셋이나 있는 집안에 막내딸로 태어나서 부모와 오빠들이 늘 도와주는 가운데 별로 책임의식을 가지지 못하고 성장했다. 막내로, 또한 외동딸로 그녀는 과잉보호를 받고 자라면서 사회적으로 대인관계에 자신감을 못 가지고 마음 한구석에는 늘 열등감과 소외감을 가지고 살았다. 그러던 중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많고 자상한 성격과 자신을 사랑스럽게 받아주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고 스스럼없이 편해졌다. 이성에 대한 자신의 욕구가 채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 후 그들 중 누구라도 변했을까? 변한 사람은 부부 중에 아무도 없었다. 남편의 따지는 성격은 연애할 때 세심한 배려를 베풀었던 꼼꼼한 성격 그대로지만, 지금은 부인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부인의 의존적이고 책임감이 결여된 행동 역시 예전에도 존재했으나, 명랑하고 밝은 그녀의 성격에만 도취된 나머지 그는 또 다른 면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사랑의 심리에는 묘한 점이 있다. 사실 인간은 상대방을 통해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반대되는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상대방의 어떠한 능력이나 성격 또는 취향을 통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는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환상에서 비롯된다. 누구에게나 환상은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자기 환상과 요구에만 집착할 때 현실을 왜곡하기 쉽다. 지각과 판단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들 부부 역시 누가 누구를 속인 것이 아닌, 둘 다 착각하고 스스로 속은 환상에 기인됐음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사랑에는 이러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러나 이것은 미성숙한 사랑이다. 성숙하고 순수한 사랑은 서로의 문제와 약점을 드러내어 놓고 서로를 용납해 주고 이해해주며 사랑할 수 있어야 된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더 이상 감추고 방어하지 말고, 적나라하게 드러낼 때 상대방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되고 상처의 치유를 얻게 된다. 사랑의 묘약은 바로 여기에 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사랑을 유지하는 비결

‘연애 기간 동안 그는 자신의 소망과 두려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었다. 그는 자신의 느낌을 이야기하고 감정을 표현했다. 연애 기간 동안 그녀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었고 따뜻하고 다정했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근사한지를 수도 없이 이야기했다. 그는 이처럼 정열적인 여인과 결혼하게 되어 가슴이 벅찼다. 그녀는 대화가 통하는 남자와 결혼하게 되어 가슴이 떨렸다. 결혼을 한 뒤, 그는 열심히 일했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왔다…. 결혼을 한 뒤, 그녀는 집안 일에 시달려 언제나 피곤했다….’
나타샤 조세포 위츠의 ‘이전과 이후’의 한 부분인 이 시를 결혼한 많은 부부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시의 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결혼을 하고 나면 언젠가 열정은 사라지고 책임과 의무만 남는 듯 ‘Do’ 리스트만 늘어난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서로 지쳐 서로에게 품었던 사랑의 배려도 감사의 표현도 생략하면서 살게 된다. 서로에 대한 감정이 서서히 메마르면서 ‘님’이 아닌 ‘남’으로 살아가는 부부가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아무리 사랑하는 부부도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비 온 날이 있으면 맑게 개인 날이 있듯, 사랑하는 날이 있으면 미운 날도 있는 것이다.
또 그래야 삶에 곡예를 타는 듯한 맛도 있지, 매일 맑음도 너무 따분할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 미운 날을, 흐린 날을 너무 오래 방치해 두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데, 우리는 그 감정을 억제하는 법만 배웠지 적절히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보통 부부싸움 하는 것을 보면, 한쪽은 묵비권 행사만 하고 또 한쪽은 상대편의 감정을 추리하다, 달래다, 안되면 한 쪽이 소리 지르거나 때리는 경우로 막을 내린다. “당신이 이럴 때 내 감정은 이랬어요”라고 말하면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이 사랑을 유지하는 방법은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 들어주는데 있다는 것이다.
여자는 남편의 따뜻한 한마디,“당신 오늘 잘 지냈어! 당신 오늘 더 예뻐 보이네!” 한 마디면 다이어트를 따로 할 필요 없이 행복에 배가 부를 것이다. 남자는 아내의 부드러운 한 마디, “당신 힘드셨지요? 이것 당신 드리려고 만들었는데…” 하며 예쁜 접시에 담긴 맛있는 음식 한 그릇이면 힘든 하루의 노고가 풀리리라 생각된다. 작지만 소중한 것에 감사하는 마음과 그것을 표현할 줄 아는 태도. 그런데 이런 것이 귀찮고 불만 불평만 쌓이면 서로 썰렁한 사이가 되어 앞의 시 ‘이전과 이후’에 나오는 부부처럼 되어 버리는 것 같다. 통계에 의하면 부부가 매일 서로에게 15분만 배려해도 지금 이혼율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 한다. 재혼의 실패는 초혼보다 훨씬 높다고 한다. 이혼한 사람들은 이럴 줄 알았으면 정말 이혼을 안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혼의 고통이 크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함께 살면서 서로가 무덤덤해진 사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이, 아이들 때문에 사는 사이, 카페 마담같이 편한 아내랑 사는 사이, 그저 남편이 큰아들이니 생각하며 사는 사이여도 곤란하다. 배우자의 사망이 인간의 가장 큰 충격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지금은 부부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시간,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할 시간인 것 같다.
‘이전과 이후’의 끝 부분을 음미하면서 우리는 우리 인생의 동반자,
우리 영혼의 동반자(soul mate)인 아내에게, 남편에게 당신이 있어서 정말로 행복하다고 고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일 내가 5분 후에 죽는다면 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해보는 것도 가슴 ‘찡’한 일이다. 만약 그들이 포옹을 하고 왜 이제는 서로를 껴안지 않는지 왜 충분한 대화를 나누지 않는지 이야기한다면 다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을 텐데.

*돈이 있으면 행복할까?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한다. 돈과 행복… 삶의 과정에서 누구나 생각해보는 과제다. 우리 인간은 그칠 줄 모르는 욕망 때문에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갖기를 원한다. 하기야 우리들의 삶 자체가 좀더 나은 미래를 기다리는 삶이 아니겠는가…. 부자가 되길 기다리든, 명예나 권력을 기다리든 우리는 현재의 비어진 삶에 무엇인가 채워지길 기다리며 산다.
벨기에 시인 모리스 메터링크는 행복을 은유하는 파랑새라는 글을 썼다. 어린 오누이 둘이서 파랑새를 찾아 헤매다가 끝내 찾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자기 집 창문에 파랑새가 앉아있었다. 그래서 잡으려 했더니 파랑새는 훌훌 날아가 버렸다. 행복은 각자 느껴지는 마음이기 때문에 잡기도 어렵지만 멀리서 찾기보다는 주어진 자기 조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른 아침인데 길 건너에서 “부룽부룽” 하더니 “찌익” 하는 자동차의 금속성 소리가 공기를 가른다. 에바가 오늘 아침에도 남편과 다투고 집을 나가는 것 같다. 처음 이곳에 이사왔을 때 에바가 생울타리 너머로 악수를 청하며 그녀의 집에 초대했었다. 그녀는 다정다감하면서도 개성이 강한 여인이다. 집안도 꼼꼼하고 아름답게 꾸며놓았다. 포세와 벤즈를 타는 풍족한 생활을 하는 그들 부부는 집에 가 보아도 행복한 가정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가정은 남편의 주벽으로 거의 하루 건너 싸우며 서로 불신과 불만이 팽배해져서 곧 이혼할 것이라 한다. P씨는 미국에 이민 와서 갖은 고생 끝에 사업에 성공했다. 자녀들도 장성해서 결혼시켰으며 이젠 부인과 둘이서 충족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나이도 많고 체력도 한계에 달한 이때 자신의 조상을 찾아보려 한국에 갔을 때 그곳의 이질적인 문화에 자신이 이방인임을 깨닫게 되었으며 또한 이곳에서 완전히 미국화도 될 수 없는 생활에 무엇인지 채워지지 않는 공허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고생하고 있을 때의 삶은 목적이 뚜렷했었다. 그때는 돈이 모이면 행복은 저절로 찾아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행복하지 않다. 왜 그럴까? 그는 젊음도 건강도 가버렸고 자녀도 미국화되어 마음을 터놓을 수 없으며, 오랜 세월 긴장되고 메마른 생활에 남을 사랑하는 것도, 남에게 사랑받는 것도 잊어버렸다. 그는 바람처럼 자취도 없이 지나가 버린 시간이 허무하기만 하다. 네로 황제는 쾌락장관을 두어 매일 쾌락을 추구했으나 만족치 못하고 결국 더 많은 쾌락을 위해 로마시내를 불태웠다. 행복이란 오직 즐거운 시간을 갖는데 있다고 생각하고 인간의 본바탕에 숨어있는 본능의 작용대로 향락하는 것이 인생의 행복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인간의 존엄을 갖춘 다른 행복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삶의 보람인 사랑이나 일의 큰 의미를 찾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화가 고갱은 말년에 타이티섬에서 병마와 가난으로 최악의 생활을 하면서도 자기보다 더 불행했던 고흐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는 그 역경 속에서도 위대한 예술을 남겼다.

복합된 생활에서 다양한 개성의 사람들이 지그재그로 어울려 생활하는 현대는 아무도 행복의 조건은 이것이다! 고 말하기 힘들다. 획일적인 행복을 논할 수 없는 이 시대에 행복은 각양각색의 옷을 입고 개개인의 마음을 노크한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사실 돈이란 우리 일상생활에서 필요 불가결한 행복 조건의 하나다. 신체의 모든 부분은 마음에 의지하고 마음은 돈지갑에 의지한다는 말도 있듯이 물질 문명이 발달하여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면서 돈이 인간의 가치 척도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돈이라는 행복의 조건은 남에게 보이는 겉옷이고 행복 자체는 아닐 것이다.
인생은 정지 상태가 아니고 항상 변화한다. 또한 인생은 제한적이고 상대적이다. 그래서 오늘의 우리 불행은 현실의 자기와 희망하는 자기사이의 괴리감에서 나온다. 희로애락이 반복되는 우리들의 삶에서 인생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개척하고 발전시켜서 행복이라는 파랑새를 쟁취해보자.

자료원 / 가정과 상담 2002-04-01
출판사 / 한국가정사역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