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11.

문성식 2010. 8. 3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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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시편 - 이스라엘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


시편 해석의 문제는 주로 시편의 특성 - 시편이란 무엇인가? - 에서 나타난다.
시편은 기본적으로 기도와 찬송이기 때문에, 시편은 그 특성상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며, 찬송으로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이 말씀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는가?
그리고 시편은 우선적으로 교리나 도덕적 행위를 가르치는 기능을 발휘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편은 시편을 영감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이 중요한데, 그것은 (1)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표현하고 (2)그의 길을 상고하는데 일조한다.
그러므로 시편은 성경으로부터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 희망과 회한을 표현하는데 도움을 얻고자 하는 신자에게 대단히 유익한 것이다.

시편은 빈약한 이해로 잘못 적용된다. 부정적인 듯이 보이는 것과 화자의 비참을 표현하는 시편은 어떻게 사용될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의 역사와 이스라엘에 내리는 하나님의 복에 대하여 말해 주는 시편은 어떤가?
메시야의 사역을 예언하는 시편은 어떤가? 바벨론의 어린 아이들을 반석에 메어치기를 바라는(시137:8-9) 시편의 내용은 도대체 어떻게 취급해야 할 것인가?

 

기본적인 석의적 관찰.
시로서의 시편.
시편을 읽고 해석하는 데 있어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시편이 시라는 명백한 사실이다. 시편과 관련하여 첨가해야 할 3가지 사실이 있다.
1.히브리 시는 그 특성상 가슴을 통해 마음에 호소하는 시이다. 즉 강한 감정적인 언어가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의 매 단어 또는 구절에서 전혀 의도되어 있지 않은 특별한 의미들을 찾아냄으로써 시편을 지나치게 해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동의 대귀법의 경우, 두 행 모두 시인이 의미하는 바를 표현하며, 두 번째 행은 전혀 새롭거나 다른 어떤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시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19: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시편 기자는 하늘과 궁창이 각기 별개의 것임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두 행 모두 하나의 영광스러운 실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2.시편은 여느 시와 똑같지는 않다. 시편은 음악 시이다. 음악시는 감정에 호소하기 위한 것이며, 감정을 자아내고 어떤 사실에 대한 개인의 단순한 인지론적인 이해를 넘는 반응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다. 시편에는 교리가 포함되어 있지만, 마치 교리 체계를 가르치는 것으로 읽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5)이라고 말했을 때, 임신은 죄악이라든지, 그의 어머니는 수태함으로써 죄인이 되었다든지, 원죄는 태아에게도 적용된다든지 등의 유사한 어떤 종류의 교리 체계를 세우려는 것이 아니었다.
시편 기자는 자기가 죄인인 것을 강하고,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하여 과장법을 쓴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을 읽을 때, 의도하지 않은 사실을 억지로 캐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3.시의 어휘는 목적상 비유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 비유의 의도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만 한다. 은유를 억지 춘향이로 해석하여 문자적으로 이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

 

문학으로서의 시편.
시편은 또한 문학의 형태이기 때문에, 그 시편의 어떤 문학 형식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형식들을 주목하지 않으면, 해석과 적용상의 몇몇 오류에 빠질 수가 있다.
1.시편은 몇 개의 다른 유형들로 구성되어 있다.
1)슬픔의 시 - 사람들은 여호와 앞에서 슬픔을 표시하고 도움을 호소할 수 있었다.
2)감사의 시 -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에게 보이신 자비로 인한 기쁨을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독자가 시편을 읽을 때, 그 유형에 주의하지 않는다면, 좀처럼 시편을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2.매 시편은 그 형식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형식이란 독특한 유형을 의미한다.
시편의 구조를 이해하게 되면, 그는 시편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따라갈 수 있다.

3.시편의 각 유형들은 이스라엘의 생활 가운데 어떤 주어진 기능을 감당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각 시편에는 의도된 목적이 있다. 즉 이스라엘의 왕위 즉위식 때 부르는 왕의 시를 결혼식에 읽는다면, 이것은 온당치 않는 일이다.

4.시편에 나오는 다양한 패턴들을 배워야 한다. 시편 기자들은 자주 단어에 문체 놀이뿐 아니라, 단어와 소리의 배열, 또는 반복을 즐겨 하였다. 또 아크로스틱(각 행의 첫 자를 히브리서 알파벳 순서에 따라 지삭하는 것, 예 시119편)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다.
5.매 시편은 하나의 문학적 단위로 읽어야 한다. 시편은 단일 구절들 또는 사상으로 세분되어서는 안되고, 전체로서 취급되어져야 한다.
잠언의 경우, 한 문장이 전체와의 관계를 떠나서도, 얼마든지 제구실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시편의 경우, 시편의 흐름과 균형을 잘 따라가는 것이 읽는 데 도움이 된다.

 

고대 이스라엘에서의 시편의 사용.
시편은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하여 예배시에 이용될 목적으로 지어진, 실제로 사용하기 위한 노래였다. 시편은 예배하는 자와 하나님 사이를 연결하는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하였다.
대부분 시편들의 연대를 확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시편은 특이할 정도로 거의 모든 시대에 적용 가능하다.
고대에서는 보통 시편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제사드리러 갈 때 예배의 보조물로 사용하였다. 시편들은 점차적으로 '권'이라 부르는 그룹들로 수집되었다. 5권의 그룹이 있다.
1권:시편 1-41편. 2권:42-72편, 3권:73-89편, 4권:90-106편, 5권:107-150편.

표제 - 이것은 원래의 시의 일부는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영감된 것으로 간주하지 않지만 - 에 따르면 다윗이 시편의 절반 가량 - 을 썼다.
시편 1편은 전체의 서론으로서 처음에, 시편 150편은 결론으로서 마지막에 각기 위치하게 되었다.

바울은 초대 교인들에게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기를 권하였다(엡5;19, 골3:16). 이 세 용어들 모두가 시편을 언급한다고 할 수 있다.

 

시편의 유형들.
시편을 7개의 각기 다른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슬픔의 시.
개인 및 공동체의 슬픔을 표현하는 시로 시편에서 가장 많이 차지한다(거의 60개 이상).
시편의 애가는 그 백성이 느꼈던 고뇌를 깊고 정직한 열정으로 표현한다.

감사의 시.
슬픔의 시와 정반대의 상황에서 사용되었다. 이 시편들은, 만사가 순조로이 진행되고, 환경이 쾌적하고, 또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보호하심과 복주심에 대하여 백성들이 하나님께 감사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여호와께 기쁨을 표현한 것이다.

찬미의 노래.
이전의 불행이나 최근의 기쁜 일들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이, 하나님의 하나님되심과 그의 엄위로우심, 그리고 그가 온 세상과 그의 백성들에게 베푸신 은택들에 대하여 찬송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창조주로서 찬양을 받으신다. 또 이스라엘의 보호자와 은혜를 주시는 자로서 찬양을 받으시기도 한다. 또 역사의 주인으로서 찬송을 받으시기도 한다.

구속사의 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행하신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역사, 특별히 그들을 애굽의 굴레서 구원하셔서 그들을 백성으로 형성하신 것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경축과 수임의 시.
첫 번째 종류는 시편50, 81편과 같은 언약 갱신 의식의 시. 이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그 백성과 맨 처음 맺었던 언약을 갱신하도록 하기 위한 시이다. 이 시편들은 갱신 예식을 위한 예배 지침으로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
두 번째 왕의 시. 왕직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왕을 세운다는 것은,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안정과 보호를 주시는 까닭에 중요한 제도로 간주되었다.

세 번째 대관식 시. 고대 이스라엘에서 왕의 대관식을 축하하는 것이며, 이 예식은 매년 반복되었음 직하다.

마지막으로 시온의 노래, 또는 예루살렘 성의 노래. 신약성경이 (하늘의) 새 예루살렘 상징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므로, 그 시편들을 기독교인들의 예배에서도 유용하게 이용됨을 알 수 있다.

지혜의 시.
8개로, 지혜와 현명한 생활의 유익을 찬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뢰의 노래.
10개의 시로, 하나님은 신뢰할 만한 분이시며, 그의 백성들이 심지어 절망 중에 있을 때에라도 그의 선하심과 돌보심도 표현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석의적 예문.
시편의 형식과 구조를 아는 것이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시편 3편 : 슬픔의 시.
슬픔의 시에는 실질적으로 등장하는 6개의 요소들을 분리할 수가 있다.
이들 요소들의 전형적인 순서는 다음과 같다.
1.대상 : 시편 기자는 그 시편을 기원하는 이를 밝힌다. 물론 그는 여호와이시다.
2.고소 : 고소란, 문제가 무엇이며, 왜 여호와의 도움을 찾고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3.신뢰 : 즉시 하나님께 신뢰를 표현한다. 우리가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그가 적절하다고 보시는 방법대로 우리의 고소에 응답하시도록 그를 신뢰해야 한다.
4.구원 : 고소한 상황 가운데 구원해 줄 것을 하나님께 간구한다.
5.확신 :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에 대한 확신을 표현한다. 이 확신은 어떤 경우 신뢰의 표현과 병행된다.
6.찬양 : 하나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복에 대하여 하나님께 찬양, 감사, 존귀를 드린다.

이 시편은 교훈이 아니라, 안내할 목적으로 지어졌다. 우리는, 우리가 어찌할 바를 몰라 방황하고 있을 때, 의기소침되었을 때, 여러 가지 문제에 둘러싸여 있을 때, 또한 실패의 감정을 가지고 있을 때, 바로 이 시편을 사용할 수 있다.

시편 138편 : 감사의 시.
감사의 시는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1.서론 -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우셨는지를 요약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2.곤궁 -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시기 전의 상황을 묘사된다.
3.호소 -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호소가 반복된다.
4.구원 -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이 기술된다.
5.증거 -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찬양의 노래가 제시된다.

특주 : "저주의 시"
시편이 모든 시대에 걸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호소력을 지닐 수 있었던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의 언어 이해에 있다. 인간의 모든 감정이 - 심지어 극단적인 감정까지라도 - 발견된다.
슬픔과 기쁨은 죄악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원한, 분노, 증오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을 해하려는 욕망과 시도와 같은 죄악된 생각 또는 행동으로 이끌 수도 있다.
마음 속에 품은 분노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강렬한 행동으로 옮기도록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그래서 시편은 문자적으로는 물리적으로 향하는 우리의 분노가 다른 어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리게 하거나, 하나님을 통하여 전할 수 있도록 문자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타인에 대한 분노를 하나님께 글로 표현한 시편을 저주의 시라 부른다.

우리는 우리에게 악을 행한 사람들에게 악으로 갚으려는 대신 우리의 분노를 직접적으로 하나님께 그리고 하나님을 통하여 표현함으로써 신약 성경이 가르친 바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4:26-27)는 교훈을 성취해야만 한다.
저주의 시는 분노를 어거하고, 분노를 하나님께 표현하도록 돕는다.

시137편에서 저자는 언약의 저주대로 심판해 줄 것을 요청한다. 이 저주에는 모든 사악한 사회와 그 가족의 일원들을 일소해 버리겠다는 조항이 포함되어있다.
여기서 시편 기자는 언약의 저주들에서 발견되는 동일한 극단적인 과장법적 언어를 사용하여 수난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감정에 대하여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있다.
이 분노의 말들을 실제로 듣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죄를 유발하는 분노의 방향을 바꾸고 자제하기 위하여 그 시를 올바로 사용하게 되면, 저주의 시는 참으로 우리에게 죄를 짓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시가된다.

저주의 시는 우리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사랑이 적극적인 방법으로 정의되어있다. 즉 사랑이란 어떤 사람에 대해 당신이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가라기보다는 사랑을 보이는 그 사람을 위하여 당신이 무엇을 행하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되어있다.
성경은 사랑하라고 명령하지, 사랑하는 감정을 품어라(느껴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주의 시를 통하여 아무리 지독한 증오의 감정을 품고 있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께 정직하게 표현하여야 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학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공의로 처리하시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참음으로 인해 계속 악을 행하는 원수는 참으로 커다란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저주의 시의 진정한 역할은 우리에게 '악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분을 발하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마지막 말 : 시편에서 '미워하다'는 용어는 다른 문맥에서는 '멸시하다'로 번역된 단어이다. 이 말은 참지 못하다, 참을 수 없다. 거절하다를 의미할 수도 있다.
이것을 근거로 볼 때, 저주의 시에 사용된 언어가 성경의 다른 곳의 가르침, 특히 마태5:22과 위배된다고 추정해서는 안된다.

 

해석학적 관찰들.

시편의 세가지 근본적인 유익
첫째, 시편은 예배의 지침서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즉 하나님을 찬양하거나, 호소하거나 또는 하나님께서 내리신 복을 기억하려는 예배자는 그의 사상과 감정의 정식적인 표현 방법으로 시편을 사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둘째, 시편은 우리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솔직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지를 제시한다. 누구나 시편으로부터 기쁨, 좌절, 분노 또한 그 밖의 여러 감정들을 표현함에 있어 얼마나 솔지갛고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할지를 배울 수 있다.
셋째, 시편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행하신 일들에 대한 반추와 묵상의 중요성을 제시한다.

 

주의의 말.
시편은 유쾌한 삶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시편의 어떤 구절로부터 하나님이 믿는 자들을 행복하게 하고, 그들의 삶을 만사 형통케 하시기로 약속하셨다고 추론하는 것은 시편의 언어를 오해한 것이다. 시편을 많이 저술한 다윗은 언젠, 슬픔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열렬하게 찬양하였으며, 그에게 감사드렸다.
바울도 역경 중에서 찬양과 감사를 드릴 것을 권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또 그 불행한 중에서도 그의 크심과 선하심으로 인해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이런 삶은 고통을 전혀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증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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