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9.

문성식 2010. 8. 3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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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율법서-이스라엘의 언약 규정.


구약 성경 39권 중 단지 네권만이 육백 남짓한 계명들을 포함하고 있다.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그래서 이 책들은 율법서로 알고 있다.
물론 창세기를 포함해서 말할 수도 있다.
신약에서 실제로 구약 성경을 의미하면서 '율법'으로 언급된 적이 여러번 있으며, 이럴 경우, 구약의 대부분의 책들은 모세오경의 율법을 예증하거나 적용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대개 율법이라고 말할 때, 출애굽기 20장에서 신명기 마지막까지의 일단의 내용 체계를 의미한다.
출20장에서 신33장의 주요 내용은 법적 형식으로 되어있어, 우리는 이것을 구약 율법이라고 부른다.

이 계명들에 대하여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안고 있는 가장 어려운 문제는 해석학적 문제이다. 이 법적 형식을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겠는가? 아니 적용해도 되는가?

 

기독교인과 구약 율법.
여러분은 기독교인으로서 구약 율법을 지켜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제단 위에 동물을 올려 놓고 드릴 만한 성전이나 중앙 성소도 없는데, 어떻게 그것을 지킬 수 있단 말인가?
만일 구약 율법을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왜 예수께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이라고 하셨는가?

여기 기독교인과 구약 율법과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6가지 기본적인 지침을 제안하겠다.


1.구약의 율법은 언약이다. 언약은 두 명의 당사자 사이에 체결된 계약으로, 쌍방 모두 언약에 명기된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구약 시대에는 많은 언약들이 종주권 언약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즉 봉신은 군주에게 충성하고 군주는 봉신에게 혜택과 보호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봉신이 어떻게 충성을 보여줄 것인가? 그것은 언약에 명기된 규정들을 지킴으로써이다.
하나님께서는 고대 언약들과 흡사한 방식으로 구약의 율법을 제정하셨다. 그리하여 주 야훼와 그의 봉신 이스라엘 사이에 결 속의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받은 혜택과 보호에 보답하여, 우리가 출20장에서 신명기 33장에 걸쳐 발견하는 언약 율법에 포함된 육백 남짓한 규정들(즉, 계명들)을 지켜야만 했다.

 

2.구약은 우리의 언약이 아니다. 구약은 옛 언약이며, 그것은 우리가 더 이상 지킬 의무가 없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옛 언약의 규정들 가운데 어떤 것이라도 새 언약에서 다시 새롭게 되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전혀 구속력이 없다는 것을 주장해야 한다. 즉 구약의 율법이 어떤 방도로든지 신약 성경에서 재천명되거나 재언급되지 않으면,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에게 직접적인 구속력은 갖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인 우리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구약 이스라엘에게 기대하였었던 것과는 다른 순종과 충성의 표들을 기대하신다.
충성 그 자체는 여전히 기대외어진다. 그러나 그 충성의 방식은 바뀌었다.

 

3.옛언약의 규정들 가운데 새 언약에서 분명하게 갱신되지 않은 것들도 있다.
모세 오경의 대부분 율법들을 두 부문으로 구분 지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부문 중 어느 것도 기독교인들에게는 더 이상 해당되지 않는다.

이 부류에 속하는 율법은 (1)이스라엘의 시민법과 (2)이스라엘의 의식법이다.
현대에 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고대 이스라엘의 시민이 아니다. 또 의식법도 예수께서 단번에 그리고 영원한 효과를 지니는 제사를 드렸을 때, 이 옛언약은 즉시로 구시대의 것이 되고 말았다.
비록 새 언약의 방법대로 예배는 계속된다고 하더라도, 옛 언약은 더 이상 기독교적 예배 방식이 되지 않는다.
새 언약이 옛 언약과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성경의 언약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우리가 여전히 율법 아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눅16: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눅16:17)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뜻은, 율법은 변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옛 율법을 없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성취시키는 새 율법을 주셨다. 새 율법 또는 새 언약은 그것을 지킨 자들에게, 옛 언약을 엄격히 지킨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훨씬 뛰어난 의를 줄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구약의 전 율법을 성취하셨으며, 새 율법인 사랑의 법을 주셨다.

 

4.일부 옛 언약이 새 언약에서 갱신되었다.
일부란, 구약의 윤리적인 법의 어떤 국면들이 신약에서 기독교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재서술된 것을 가리킨다.
율법은 새 언약의 두가지 기본 법에 지탱하고 있다.
(마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22: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율법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양상들이 옛언약에서 새 언약으로 갱신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이 직접적으로 기독교인들에게 기속적인 의무로서 부가되는 것은 단지 제율법들의 양상들이기 때문이다.

 

5.구약성경의 모든 율법들은, 설사 그것이 우리에게 향한 하나님의 명령은 아니라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에는 개인적인 말씀은 아닐지라도 필히 알아야 하는 하나님의 갖가지 명령들이 포함되어있다.
이같이 구약의 율법을 처음 들은 원래 청중들은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 우리는 율법이 뜻하는 바를 알고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직접 주는 율법은 아니다.

 

6.구약의 율법으로부터 분명하게 그 의미가 새로워진 것만이 신약의 '그리스도의 법'의 일부로 간주될 수 있다(갈6:2).
이런 부류에 속하는 것으로 십계명을 들 수 있다.
왜냐하면 십계명은 신약에서 여러 면으로 기독교인들을 여전히 구속하는 계명으로 인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성경 내에서의 율법의 역할.
율법은, 바울이 말한 것처럼(갈3:24), 하나님의 의의 표준이 얼마나 높으며 누구라도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이 표준들에 도달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줌으로써, 구원의 역사 속에서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율법은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바로 이런 식으로 작용하였다. 율법 그 자체가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율법은 단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충성의 서약을 표명하고 있을 뿐이다.

 

절대 당위법.
'..을 하라' 또는 '...을 하지 말라' 등으로 시작하는 명령들을 절대 당위법이라고 칭한다. 이 계명들은 일반적으로 적용하여야 할 직접적인 명령들이다. 그러나, 이 율법이 모든 것을 다 포괄하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율법은 모델로서 하나의 예로 표준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율법에는 모든 가능한 상황을 일일이 열거하고 있지 않다.
율법에 서술된 것들은 일반적인 적용과 함께, 신뢰할 만한 지침을 주려는 것이지,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상황들에 대해 전문적으로 서술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그 정신에 있어서는 매우 포괄적이다.

*율법은 우리들에게 독력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가를 보여준다.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우리는 구약의 율법을 읽을 때,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기에는 얼마나 무가치한 자인가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결의법
'(신15:12) 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만일 육 년을 너를 섬겼거든 제 칠 년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것이요 (신15:13) 그를 놓아 자유하게 할 때에는 공수로 가게 하지 말고 (신15:14) 네 양 무리 중에서와 타작 마당에서와 포도주 틀에서 그에게 후히 줄지니 곧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에게 줄지니라 (신15:15)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속하셨음을 기억하라 그를 인하여 내가 오늘날 이같이 네게 명하노라 (신15:16) 종이 만일 너와 네 집을 사랑하므로 너와 동거하기를 좋게 여겨 네게 향하여 내가 주인을 떠나지 아니하겠노라 하거든 (신15:17) 송곳을 취하여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으라 그리하면 그가 영영히 네 종이 되리라 네 여종에게도 일례로 할지니라'

위의 율법 안에 있는 요소들은 조건적이다. 이런 율법은 오직 다음의 경우에만 적용된다.
1)당신이 이스라엘인으로서 최소한 한 명의 종을 가지고 있을 때,
2)당신이 이스라엘인으로서 종을 소유하되, 당신의 종이 법적 기한이 지난 후에 자원하여 당신의 종으로 계속 남기를 원하든지 아닐 경우이다.
이 율법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이는 특정한 때, 특정한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조건적이다.

이런 결의법이 모세오경 법전에는 육백 여개의 계명들이라는 많은 분량을 이루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것들 가운데 어느 것도 새 언약에 분명하게 갱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율법들은 특정한 이스라엘의 시민, 종교, 윤리 생활에 적용되었기 때문에, 적용면에서 대단히 한정적이다.
그런 이유로 기독교인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결의법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해석학적 원리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겠는가?
첫째. 우리가 개인적으로 종들을 가지지 않을 수 있지만, 옛언약 아래서 하나님께서 종 제도를 내신 것이 잔인하다거나 가혹한 규정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종을 단지 육년만 섬기게 하다가 놓아줌으로 한계를 부여하였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께서 종들에게 사랑을 베푸셨음을 배운다. 하나님은 종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행하신 것처럼, 종들에게 관용을 베풀 것을 요구한다.


셋째. 노예, 종들이 실제로 자유하기보다는 종으로 있는 것이 더 지내기 편하다고 할 정도의 관용적인 방법으로 실행될 수 있었다. 곧 종의 주인은 그의 종들에게 음식과 의복과 주거지를 공급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종들의 생존과 복지를 잘 유지시켰음을 뜻한다.


넷째. 종을 소유한 사람은 엄밀한 의미에서 종을 소유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종의 주인과 종의 소유자였다.

신15장의 율법을 통하여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 그의 공평성 요구, 이스라엘 사회를 향한 그의 이상, 그리고 특별히 '구속'의 의미와 관련하여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 등에 대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데 있다.
이런 점에서 율법은 우리에게 다음의 사실을 제공해 준다.
(1)구속에 관한 신약의 가르침의 배경에 되는 중요한 부분.
(2)구약의 노예제도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노예제도와 어떻게 다른가 하는 명백한 상.
(3)우리가 달리는 가질 수 없었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관점 등.
즉 이 법문은 명백히 우리에게 직접 적용될 수 있는 하나님의 명령은 아니지만, 여전히 우리를 향한 귀중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율법들은 철저한 상황 묘사보다는 백성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예들을 보이고 있다.
구약의 법은 하나님께서 그의 언약 백성들에게 제시한 표준의 종류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 할 경우, 훌륭한 교훈을 주는 것이다.

 

구약의 율법과 여타의 고대 법전.
고대 국가들이 사용한 초기 법전들을 구약의 율법과 비교해 볼 때, 구약 율법이 훨씬 진보된 것임이 드러난다.
에쉬나 법전이나 함무라비 법전에서는


-계급 차별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다.
종이나 서민의 죽음에 대한 처벌로서 단지 벌금형을 부과한 반면, 귀족의 일원의 죽음에 대해서는 사형을 가하고 있다.
여자에게 해를 끼쳤을 경우, 귀족의 남자들은 일신상의 처벌은 면제되었다.
심지어 귀족의 남자가 다른 귀족의 딸을 죽게 하였을 경우에도 그 자신의 처벌은 받지 않고, 대신 그의 딸이 죽음을 당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24:16)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법전들은 여자와 종들은 재산으로 취급한 것이다.

그러나 구약의 법은 이들 법전들보다 윤리적으로 훨씬 앞서 있다. 살인 금지는 성(性) 또는 사회 계급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또 종들은 구약의 율법하에서 고대의 율법하의 종들의 지위와는 전혀 다른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신23:15) 종이 그 주인을 피하여 네게로 도망하거든 너는 그 주인에게로 돌리지 말고 (신23:16) 그가 너의 성읍 중에서 기뻐하는 곳을 택하는 대로 너와 함께 네 가운데 거하게 하고 그를 압제하지 말지니라'

이스라엘의 은전(恩典)인 구약 율법
영생과 하나님 앞에서의 참된 의를 제공하는 능력에 관한 한 율법은 상당히 불충분한 것이다. 율법은 이런 목적 때문에 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 자체의 목적들을 정당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되면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익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음식법.
'(레11:7)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이런 음식법은 강한 보호의 의미가 있다.
대부분의 금지된 음식들은
1)시내 광야나 가나안 땅의 건조한 기후 가운데서 질병을 옮기기 쉬운 것들, 또는
2)시내 광야나 가나안 땅의 특정한 농업 환경 속에서 음식물로는 아주 비경제적으로 사육한 것들,
3)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본받아서는 안되는 집단이 실행하는 종교적 제사에 선호하는 음식들이다.
더욱이 음식 알레르기는 인종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해 볼 때, 음식법은 이스라엘을 어떤 알레르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음식 알레르기 전문가에 따르면, 많은 주요 고기들 가운데서 가장 알레르기가 적은 것이 양이었다.

 

피흘림에 관한 법.
(출29:10) 너는 수송아지를 회막 앞으로 끌어오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송아지 머리에 안수할지며 (출29:11) 너는 회막문 여호와 앞에서 그 송아지를 잡고 (출29:12) 그 피를 네 손가락으로 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을지며
죄는 심판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법을 통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한 사람은 살 수가 없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하지만 또 죄인이 죽음을 모면할 절차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것은 대리자의 피를 흘림으로써 가능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신 희생을 요구하는 율법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역의 전례가 된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율법의 요구를 이룬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납하시는 기초가 된다.

 

색다른 금지들.
'(신14:21) ........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지니라'
'(레19:19)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육축을 다른 종류와 교합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이 율법들과 다른 금령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백성들의 번식 숭배에 연루되는 것을 금지할 목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가나안 사람들은 '교감술'을 믿고 있었다.
이것은 어떤 상징적인 행동이 신들과 자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상이다.
그들은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과 함께 삶게 되면 마술적으로 염소떼의 지속적인 번식을 보장해 준다고 생각하였다. 동물을 혼배한다든가, 종자를 섞어 뿌리고, 두 재료로 직조하는 행위들은 서로 '혼인하는 것'으로 간주, 마술적으로 그 열매를 생산하는 장래에 농작물의 풍성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율법을 지키는 자들에게 복을 주는 법.
'(신14:28) 매 삼 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신14: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이스라엘의 모든 법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의 방편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법들은 특별히 그것을 지키면 복을 줄 것이라고 언급한다.
십일조에 대한 신명기 14장이 그렇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친히 그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알리셨다.
만일 이 명령이 그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돈을 도적질한 것이 된다.
이 법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며 - 구약의 사회 보장 제도는 잘 설정되었다 - 동시에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잘 돌보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한 것이다.

 

요약:몇 가지 지침 및 주의 사항.
1.구약의 율법을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완전한 영감된 말씀으로 생각하라. 구약의 율법을 당신에게 직접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생각하지 말라.
2.구약의 율법을 옛 언약의 기초요, 그러한 까닭에 이스라엘 역사의 기초로 생각하라. 구약의 율법을, 그것이 특별히 갱신되지 않았으면 새 언약 가운데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구속력 있는 것으로 생각지 말라.
3.구약의 율법에 계시된 하나님의 공의, 사랑, 그리고 지고의 표준들을 생각하라. 하나님의 자비는 표준들의 엄격함과 대당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4.구약의 율법이 완전하다고 생각지 말라. 그것은 기술적으로 전포괄적이지 않다. 구약의 율법을 페러다임(모범)으로 생각하라. 그것은 광범위한 상황이 예상되는 행동들에 대한 예들을 제시한다.
5.구약의 율법이 선지서들이나 신약에서 자주 인용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율법의 정수는 선지서들에서 반복되며 신약에서 갱신되었음을 기억하라.
6.구약의 율법은, 순종할 때 더 많은 복을 가져오는, 이스라엘의 은혜로운 선물임을 알라. 구약의 율법을 백성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임기응변적이고 귀찮은 규율들의 일단으로 생각지 말라.

 

 

 

출처 : Joyful 의뜰 원문보기   글쓴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