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10.
제10장. 선지서-이스라엘 내의 언약 시행.
예언의 성격.
선지서들이야말로, 성경 가운데서 해석을 하거나 읽고 깨닫는데 가장 난해한 부류에 속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유는 예언서의 역할과 형식에 대한 제반 오해들과 관련이 있다.
예언의 의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언을 사전에서 정의하는대로,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해 예고 또는 예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구약 예언의 2%미만이 메시야 예언이고, 5%미만이 특별히 새 언약의 시대를 묘사한다. 1%미만이 장차될 사건들과 관련있다.
선지자들이 미래를 선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선포한 것은 우리들의 미래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유다 그리고 그들 주위에 있는 다른 나라들의 긴박한 미래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므로 선지서를 이해하는 열쇠들 가운데 하나는, 우리들에게는 선지서의 예언들은 성취되었음을 아는 것이다.
대언자로서의 선지자들.
선지자들의 최우선의 역할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들과 동시대인들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대언적 성격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수백 명의 선지자들 가운데서 단지 16명만 예언을 말하고, 그것을 수집하여 책에 기록해 두도록 선택함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이들 선지자들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이 그들이 실제로 한 말들보다 더 많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말한 것보다 그들이 행한 것이 훨씬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구약의 설화책들 가운데서 일반적으로 듣는 것은 선지자들에 관한 내용이지, 선지자들로부터 직접 말을 듣는 것은 극히 드물다. 반대로 선지서에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으며, 선지자들 자신에 대하여 듣는 바는 적다.
또 선지서는 긴 책을 담숨에 읽는 것이 어렵다. 왜냐하면 긴 선지서들은 대언한 예언들을 수집해 놓은 것인데, 이들은 원래 연대기적 차서대로 제시되지 않은 것이 태반이며, 어디서 한 예언이 끝나며, 어디서 또 다른 에언이 시작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그 예언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암시가 전혀 없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역사의 문제.
선지서의 이해를 복잡하게 하는 또 다른 문제가 역사적 괴리의 문제이다. 이스라엘에게는 분명한 것이 우리들에게는 불명확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그런가?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적, 역사적, 문화적 생활로부터 대단히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들로서는 선지자들이 말한 말씀들을 그것들의 원래 문맥에 적절히 배치시키는 데 큰 어려움을 갖는다는 점이다.
예언의 기능.
먼저 이스라엘의 선지자의 역할과 기능에 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1)선지자들은 언약 시행의 중보자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그의 법을 주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시행하신다는 사실이다. 적극적인 시행은 축복이요, 부정적인 시행은 저주이다.
선지자들이 출현하게 된 것이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적극적이든, 부정적이든 그의 법의 시행을 선포하셨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의 율법을 처음 선포하셨을 때, 그 율법의 중보자였다. 그리하여, 그는 선지자들에게 한 모델이 되었다. 이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중보자들 또는 언약의 대언자들이다.
그리고 율법을 지킬 경우 복을 받을 것이지만, 지키지 않을 경우, 형벌을 받을 것이다. 선지자들은 그들이 선포한 복과 저주를 창안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되풀이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언약을 시행할 그의 의도를 선언하셨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충성 여부에 따라 혜택이 되기도 하고, 해가 되기도 한다
.
율법은 언약에 충실한 자들에게 내리는 공동의 축복의 일정한 표준들을 포함하고 있다. ①생명, ②건강, ③번영, ④농작물의 풍성함, ⑤존경, 그리고 ⑥안전 등. 성경에 언급된 대부분의 축복들은 이 6개의 일반적인 그룹 가운데 하나로 나타난다.
저주에 대하여 율법은 공동의 형벌들을 묘사하고 있다. 죽음, 질병, 한발, 기근, 위험, 파멸, 패전, 추방, 빈곤 그리고 치욕이다. 대개 저주는 이것들 가운데 하나로 나타난다.
동일한 표준들이 하나님께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상황에서도 적용된다. 이런 저주들은 문자적인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대개는 비유적인 의미를 지닌다. 항상 국가 전체를 의미하는 공동의 저주들이다. 개인의 번영이나 기근을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회개하도록 강구하실 때에 축복보다는 저주의 경고가 탁월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통계적으로 보아 주전 8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 활동한 선지자들이 선포한 대부분의 메시지 내용은 저주에 해당한다.
남.북 왕조의 붕괴 후, 주전 587년 이후에는 선지자들이 저주보다는 축복을 좀더 자주 말하게 되었다.
곧 이스라엘의 형벌이 완료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본적인 계획 - 긍휼을 보이시는 것을 개재시키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독자가 선지서를 읽을 때에는 이러한 기본적인 형식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
(1)이스라엘의 죄 또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내는 일
(2)상황에 따른 저주 또는 축복의 예언 등.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그들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다. 선지자들을 세우신 이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선지자에 해당하는 히브리 단어는 사실 셈족어 동사 '부르다'에서 파생된 것이다. 사실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수차례에 걸쳐 일인칭을 사용하여 주께로부터 직접 전달된 것을 표현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스스로에 대하여 '나는' 또는 '나를'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이스라엘과 또 다른 나라들에게 전달하는데 도구로 사용된 선지자들은 일종의 사회적 직책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주재자의 뜻을 천상 궁정에서 파송된 대사와 같았다. 어느 단체가 이 율법들을 파기하였든지간에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형벌의 말씀이 전달되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왕을 세우기도 하고 폐하기도 하였으며, 전쟁을 선포하기도 하고, 전쟁을 반대하기도 하였다.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자기들이 창안해 낸 것이 아니다. 선지자들의 말씀을 읽을 때, 우리가 읽은 것은 전혀 새로운 어떤 것이 아니라, 본질상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전해 주셨던 것과 동일한 메시지인 것이다.
물론 메시지가 전달되는 양식은 각기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지자의 메시지는 옛적의 메시지를 변경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선지자들은 모세오경의 율법에 포함되지 않은 어떤 교훈을 선포하거나 다른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영감받은 것은 아니다.
호4:2에서 십계명 중 5계명이 하나씩 하나의 용어로 요약되어있다.
(호4:2)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저주-'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3계명.
사위-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9계명.
살인-살인하지 말라는 6계명.
투절-도적질 하지 말라는 8계명.
간음-간음하지 말라는 7계명.
두 번째 예는 메시야 예언과 관계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메시야 개념을 불러 일으킨 것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처음으로 하신 것은 아니다. 사실 이 메시야 개념은 율법에 기인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하셨기 때문이다.
'(눅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모세의 율법에 메시야의 사역을 예언한 내용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신18:18은 탁월하다.
'(신18: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석의적 과제.
도움이 될 만한 참고 문헌.
성경 사전, 주석류, 성경 핸드북 등이 유용하다.
역사적 배경.
훌륭한 석의를 수행하기 위해서 모든 선지서들에 대한 두 종류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광범위한 배경.
구약의 16개의 선지서들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 B.C.약 760-460년에 쓰여졌다. 아모스와 말라기 사이의 근 3세기 동안 선지자들의 말이 집중적으로 기록된 까닭은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역사 중 이 시기는 특별히 선지자들의 과제인 언약 시행의 중재를 필요로 하였다는 것이 그 대답이다.
두 번째 요인은, 선지자들이 이 중요한 시기에 하나님을 대신하여 선포하였던 경고와 축복을 후대 역사를 위하여 기록하려는 하나님의 확연한 소원에 있다.
이 시기의 특징은 다음 3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전례 없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사회적 대 변동.
2)엄청난 수준의 종교적인 부정과 고대 모세 율법을 등한시함.
3)인구 팽창과 국경의 확대 등.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새로이 요구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일으키셨으며 적절하게 그의 말씀을 선포하셨다.
북왕조는 당시 근동의 최강대국인 앗수르에 의해 B.C. 722년에 멸망하고 말았다. 그후 유다의 극심한 죄악과 또 다른 초강대국 바벨론의 부흥으로 이사야, 예레미야, 요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를 포함한 많은 선지자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유다 역시 불순종으로 인하여 B.C. 587년에 붕괴되었다. 그 후에, 에스겔, 다니엘, 학개, 스가랴, 말라기와 같은 선지자들은 그의 백성의 회복, 국가의 재건 그리고 정통성의 재흥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선언하였다.
이 모든 것은 신명기 4:25-31에 기록된 기본적인 패턴을 따른다.
(신4:25) 네가 그 땅에서 아들을 낳고 손자를 얻으며 오래 살 때에 만일 스스로 부패하여 무슨 형상의 우상이든지 조각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함으로 그의 노를 격발하면 (신4:26)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 증거를 삼노니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는 땅에서 속히 망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너희 날이 길지 못하고 전멸될 것이니라 (신4:27) 여호와께서 너희를 열국 중에 흩으실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쫓아 보내실 그 열국 중에 너희의 남은 수가 많지 못할 것이며 (신4:28) 너희는 거기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바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하며 냄새도 맡지 못하는 목석의 신들을 섬기리라 (신4:29)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신4:30) 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여 환난을 당하다가 끝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 말씀을 청종하리니 (신4:31)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선지자들은 대부분 이러한 사건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그리고 역사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그 분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그 역사의 어떤 부분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특정한 상황들 : 매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은 어떤 특정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전달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 수만 있다면, 연대.청중.상황 등에 대한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예언을 이해하는데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개체 예언들의 분리.
누구든지 선지자들을 연구 또는 석읮거인 지식을 목적으로 읽게 될 경우, 그가 배워야 할 첫 번째 것은 예언을 생각하는 일이다. 대개의 경우, 선지자들이 말한 바는 의미가 계속 연결되면서 그들의 책에 제시된다. 다양한 시기, 다양한 장소에서 말하였던 것들이 수집되어, 한 예언이 어디서 끝나며 또 다른 예언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지시하는 분절이 없이 총괄적으로 기록되었다.
그래서 이것이 같은 날 동일한 청중들에게 말하여진 것인가? 아니면 다른 환경하에 상이한 그룹에게 수년 후 아니면 전에 말하여진 것인가?
그러므로 주석, 성경사전, 성경 핸드북을 통하여 도움을 입어야 한다.
예언의 형식들.
매 예언의 분리가 선지서 이해의 열쇠이기 때문에 선지자들이 그들의 예언을 구성하기 위해 사용한 다양한 형식들에 대한 지식을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성경 전체가 매우 다양한 종류의 문학과 문학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선지자들도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전하는데 있어 다양한 문학 형식들을 채용하였다.
여기 가장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형식 3가지를 선정하였다.
1)소송 : 소송 비유에서 하나님은 피고 이스라엘에 대하여 원고, 기소하는 변호인, 재판관, 법정의 간수 등 상징적으로 묘사되었다.
(사3:13)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 (사3:14)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장로들과 방백들을 국문하시되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은 너희 집에 있도다 (사3:15)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뇨 주 만군의 여호와 내가 말하였느니라 하시리로다 (사3:16)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죽거려 행하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하시도다 (사3:17) 그러므로 주께서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체로 드러나게 하시리라 (사3:18) 주께서 그 날에 그들의 장식한 발목 고리와 머리의 망사와 반달 장식과 (사3:19) 귀고리와 팔목 고리와 면박과 (사3:20) 화관과 발목 사슬과 띠와 향합과 호신부와 (사3:21) 지환과 코 고리와 (사3:22) 예복과 겉옷과 목도리와 손주머니와 (사3:23) 손 거울과 세마포 옷과 머리 수건과 너울을 제하시리니 (사3:24) 그 때에 썩은 냄새가 향을 대신하고 노끈이 띠를 대신하고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고 굵은 베옷이 화려한 옷을 대신하고 자자한 흔적이 고운 얼굴을 대신할 것이며 (사3:25) 너희 장정은 칼에, 너희 용사는 전란에 망할 것이며 (사3:26) 그 성문은 슬퍼하며 곡할 것이요 시온은 황무하여 땅에 앉으리라
사3장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혼합되어 있다.
법정이 소집되고 이스라엘에 대한 소송이 제기된다(13-14절). 고소장이 낭독된다(14절 하-16절). 증거에 의해 이스라엘의 유죄가 분명해졌기 때문에 심판의 판결이 언도된다(17-26절). 언약을 파기하였기 때문에 언약에 열거된 온갖 종류의 형벌들이 이스라엘의 남녀들 위에 내릴 것이다.
이런 비유 형식은, 이스라엘은 불순종 때문에 징계를 받을 것이며, 그 징계는 극심할 것이라고 그들에게 알리는 극적이며 효과적인 방도이다. 특별한 메시지를 전하는 데 효과적인 특별한 문학 형식이 채택된 것이다.
2)화 : '화'는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앙이나 죽음에 직면하여, 또는 장례식에서 슬퍼할 때 부르짖던 용어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화'의 의미를 사용하여 임박한 파멸을 예고하셨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이 단어의 의미 심장한 사용을 알아차렸다.
화 예언은, 세가지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①재앙의 선언, ②재앙의 원인, ③파멸의 예고.
3)약속 : 약속 또는 구원의 예언이다. 미래에 대한 언급, 급진적인 변화의 기술, 축복의 언급 등. 전형적인 약속 언약의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축복은 언약의 표준들 - 생명, 건강, 번영, 농작물의 풍성, 존경과 안전 - 을 통하여 온다. 가장 핵심적인 강조점은 농작물의 풍성함에 있다.
시인으로서의 선지자들.
시는 고대의 문화에서 매우 높이 평가되는 표현 양태였다. 국가적 서사시, 중요한 역사적, 종교적인 기념들은 다 시로써 보존되었다. 시는 산문과 비교하여 훨씬 더 암기하기 쉽다. 또 시에는 어떤 리듬이 있으며, 대칭과 어떤 전체적인 구조가 있다.
시는 비교적 규칙적이며, 질서가 있다. 일단 잘만 배워 놓으면 시는 산문보다 훨씬 덜 잊어 버리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읽고, 쓰는 기술이 그리 발달되지 않고 개인적으로 책을 소유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던 시대에 이처럼 유용한 현상을 잘 사용하심으로써, 그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로 시로써 말씀하셨던 것이다. 백성들은 시에 익숙하였고, 이러한 예언들을 기억할 수 있었다.
구약시의 반복 형식의 3가지 유형들을 소개하겠다.
1)동의 대귀법 - 두 번째 행은 첫 행의 의미를 반복 또는 강화한다.
(사44: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2)반의 대귀법 - 두 번째 행은 첫 행의 사상과 대조를 이룬다.
(호7:14)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
3)종합 대귀법 - 두 번째 행은 어떤 방도로든지 좀더 많은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첫행을 부연한다.
(옵1:21) 구원자들이 시온 산에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리니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
해석학적 제안들.
다른 시대에 하나님의 고대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이 영감된 시적 예언들을 통하여 오늘날 우리엑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엇일까? 먼저 본서 4장에서 서신서들의 해석에 대하여 말한 것 중 상당 부분이 여기에도 적용된다고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특별히 생각하여야 할 3가지 문제들이 있다.
그것은 경고, 관심사, 축복이다.
1)경고 : 미래의 예언자로서의 선지자.
먼 미래를 예고하는 것이 선지자의 일차적인 일이지만, 지금은 그 미래가 과거이다. 즉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의 비교적 즉각적인 미래에 다가올 심판과 구원에 대하여 예고하였지만 오늘날 우리 시대의 미래에 대하여 예고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예언한 것의 성취를 보기 위하여, 그들에게는 여전히 미래에 속하나 우리들에게 과거가 되어 버린 때를 회고해야만 한다.
겔25-39장에는 주로 이스라엘 외의 다른 나라들의 운명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들의 운명을 언급하셨고, 그 성취가 예언이 전달된지 수십년 내에, 즉 거의 B.C. 6세기 안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구약의 예언들에서 신약시대의 사건들을 지나치게 찾으려고 할 때 문제가 일어난다.
현세적인 것은 영원한 계획의 빛으로 관조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마치 큰 원판과 그 앞에 있는 좀 더 작은 원판을 동시에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다. 그런 다음 계속되는 역사의 관점에서 이 두 원판을 측면에서 관찰하여 이들 두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가를 아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종종 종말적 사건들과 관련하여 말하고 있는 현세적인 심판들을 미래에 속한 것으로 밀어 붙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
또 종말론적인 용어는 그 용어의 특성상 비유적인 것인 경우가 있다.
에스겔 37:1-14에서 뼈가 회복되는 일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사건인 죽은 자의 부활 용어를 사용하여 에스겔을 통해 이스라엘 나라가 주전 6세기에 바벨론 유수로부터 돌아올 것을 예고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과거 사건인 것이 마치 마지막 때의 사건인 양 종말론적인 용어로 비유적으로 예고되었다.
관심사 : 예언과 부차적인 의미들.
신약에 언급된 구약 본문들이 원래 구약의 문맥에서는 분명한 의미를 지닌 것이지만, 신약 저자에 의하여 상이한 의미로써 사용되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어떻게 이적적으로 반석에서 물을 공급받았는지를 증거하는 두 이야기에서 바울은 고전10:4에서 인용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험을 그리스도와의 대면과 일치시키고 있다. 바울은 반석에 부차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그것을 '그리스도'와 일치시킨 것이다. 이러한 부차적인 의미를 일반적으로 보다 완전한 의미라고 부른다.
바울은 '반석이 그들에 대한 관계는 그리스도가 우리들에 대한 관계와 같다' 즉 '신령한 것들이 우리에게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것인 것처럼 그리스도는 생명을 유지시키는 원천이시다'고 말하는 것이다.
바울이 이런 유비로 기록하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가 구름과 바다를 세례로(2절), 반석을 그리스도로(4절) 이해할 수가 있었겠는가? 성령께서는 바울을 영감하여, 광야 이스라엘 백성과 그리스도 안의 생활 사이의 유비적인 관계를 문맥, 의도, 문체, 용어에 대한 일상적인 법칙을 따르지 않고도 기록할 수 있게 하셨다.
바울이 영감을 받아 구약과 신약을 비유적으로 연결한 것은 신뢰할 만하다. 그러나 성경 어느 곳에서도 우리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하는 것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런 원리를 세울 수 있다. 보다 완전한 의미는 영감을 받을 때는 작용했으나 조명 - 즉 성경을 읽을 때 성령께서 깨닫게 하심 - 에는 작용하지 않는다.
영감이란 성경을 어떠한 방법으로 기록하기 위한 원래적 동기를 가리킨다. 조명이란 성경의 저자들이 기록한 것을 이해하는 통찰력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조명으로써 성경을 다시 기록하거나 재정의할 수 없다.
마지막 축복 : 바른 신앙과 바른 생활에 대한 이중적 강조.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고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에게 바른 신앙과 행동의 조화를 이루도록 촉구하셨다. 선지자들은 계속하여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의 언약 시행을 원하신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새 언약의 계명들에 순종하는 자들의 궁극은 최종적이며 영원한 축복이 될 것이다.
불순종하는 자들의 궁극은, 그들이 지상생활 동안 어떤 훌륭한 대접을 받았던지 간에, 저주 뿐이다.
그러므로 말라기의 경고(말4:6)는 아직도 계속된다.
(말4:6)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출처 : Joyful 의뜰 원문보기▶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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