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연 ★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因緣)은 결과를 만드는데 있어서 작용되는 직간접 원인을 의미하는데 인(因)은 결과를 낳기 위한 직접적 원인을, 연(緣)은 결과를 낳기 위한 간접적 원인입니다. 예를 들어 씨앗이라는 직접적 원인에 물, 바람, 햇빛 그리고 꽃을 가꾸는 사람의 정성어린 돌봄 등의 간접적 원인에 의해 꽃이 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꽃은 피고 지면서 씨앗을 남기고 씨앗은 다시 꽃으로 이어지듯이 우리의 삶도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둥근 원처럼 연결되어 흘러갑니다. 과거 또는 금번 생 중에서 어떤 인연에 의해서 엮여 있는 지도 모른 채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아파하고 헤어지기도 합니다. 어떤 이끌림에 의해 서로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지만, 좋아하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느끼는 감정은 그리 오래지 않아 시들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단점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할 때는 본인의 업장이 부정적 감정으로 상대방에게 투사하여 드러나면서 괴로운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괴로움은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틀에서 다른 사람을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옳고 그름을 정하는 기준은 다를 수 있는데, 사람들은 습관화된 자신만의 고정된 생각의 프레임에 갇혀 판단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은 지극히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미워하게 됩니다. 각자 타고난 기질과 처해 있는 환경이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 두 인격체의 만남은 서로 상반된 면이 많을수록 서로 부딪히며 뾰족한 면을 서로 찌르고 있으니 고통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신이 수용하지 못하는 누군가의 말과 행동을 체험하고 있다면 아직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이분법적 기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주변 사물들은 단지 자신의 저항하고 있는 것에 대한 뾰족한 상태를 거울에 비춰주고 있을 뿐입니다. 두렵다고 느끼는 감정은 두려운 상황들을 만들고 외롭다고 느끼는 감정으로 인해 외로운 상황들을 만듭니다. 무언가 빼앗기지 않으려고 붙잡으며 집착하면 빼앗기게 되고, 소유에 대해 감사하고 집착하지 않으면 저절로 흘러들어오게 됩니다.
인생을 힘들게 하는 요인은 자신의 관념 속에서 양극성을 받아드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인정받으려고 하는 마음, 사랑받으려고 하는 마음은 사실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인정 또는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되면 불행하다고 느끼는 감정에 빠져 불편한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인정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는다는 것을 받아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 또한 강요할 수 없고 사랑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정할 수 있어야 불행하게 다른 극성을 끌어들이는 상황을 현실에 창조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문제는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결핍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며 존재감을 부각시켜주는 사랑을 받고 싶은 것입니다. 상대방이 전하고자 하는 작은 사랑의 행동과 마음은 무시된 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받지 못했다는 서운함과 존중받지 못한 감정으로 인해 사랑은 미움으로 변하여 금이 가게 됩니다.
인연으로 만난 사람을 두고 지금 이 순간 행복하면 전생에 복을 지어 생긴 선연이라고 하고, 행복하지 못하면 전생에 죄를 지어서 받는 악연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악연이라고 생각하는 만남일지라도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결핍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모든 만남은 상대방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비추어주는 거울로서 작용을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부족한 면을 비춰 주는 거울이라고 생각하다면, 다가온 모든 인연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원래 영혼은 완전무결하며 부족함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언젠가 소멸하게 되는 육체라는 옷을 입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결핍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영혼이 이번 생에 태어 난 것은 에고(ego)라는 가면을 쓴 연기자로서 이번 생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통해 경험하며 느끼고 배워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상태로 살아가기 때문에 누군가와의 만남 속에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고 고통이 생기는 원인을 찾아가면서 교훈을 터득하게 됩니다. 인연을 통해 영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일깨워준 상대방에게 감사하며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자신은 최선을 다해 잘하고 있고 상대방이 이해를 해주지 못하고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호랑이와 암소의 사랑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호랑이와 암소는 서로 갖지 못한 상대방의 색다른 매력을 느껴 결혼하게 됩니다. 결혼 후 호랑이는 사랑하는 이에게 줄 맛있는 살코기를 아낌없이 주려고 했고, 암소 또한 호랑이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풀을 아낌없이 대접했습니다. 서로 아끼는 것을 주었지만 싫어하는 것을 주는 것을 계속해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참고 참다가 둘은 결국 서로에게 향한 좋은 의도를 받아드리지 못한 채, 자신이 고수하는 프레임에 갇혀서 헤어지게 됩니다. 누가 잘하고 못함의 문제가 아닌 상대방이 갖고 있는 사랑의 표현을 이해하고 받아드리지 못한 것이 불행을 가져온 것입니다.
상대방의 다른 면을 이해하고 받아드리면 의식수준은 올라가 높은 주파수 대역에서 좋은 인연을 끌어당기게 됩니다. 반대로 의식 수준이 내려가 주파수가 낮아질수록 자신을 힘들게 하는 인연을 끌어당기는 것이 우주의 원리입니다. 계절이 바뀌고 신체리듬이 변하는 것처럼 사람의 운명도 좋은 기운에 의해 움직일 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어느 정도는 설계된 운명의 틀 속에서 살아가며 때가 되면 인연과의 만남이 전개됩니다. 그러나 삶 전체가 이미 정해진 틀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고, 자유의지에 의해 보다 높은 의식으로 나아가기 위한 영적 성장의 기회 또한 상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힘들다고 생각되는 만남도 좋은 기회로 받아드리는 역발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힘들게 하는 만남을 통해 자신이 받아드리지 못하는 것을 찾고 이해하고 수용하게 되면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은 소멸됩니다. 상반된 플러스(+), 마이너스(-)의 생각이 중화되어 더 이상 받아드리지 못하는 힘든 상황을 끌어당겨 현상을 창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원리입니다. 본인이 저질러 놓은 인연과보를 모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점과 책임을 전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인연은 좋은 인연대로 좋고, 힘들다고 생각되는 인연도 전생 또는 현생에서 꼬여 있는 매듭을 풀 수 있는 기회로 여기면 세상의 인연은 좋고 나쁨을 구분하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때가 무르익으면 인연은 저절로 찾아오게 되고,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고 사라지기 때문에 모든 인연을 소중히 여길수록 자신이 이번 생에서 찾고자 했던 성장의 보석들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