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비운 것은 방을 비우는 것과 달리 한옥에서 ‘비움의 미학’의 핵심을 이룬다. 일단 이 자체가 한국화의 ‘여백의 미학’처럼 하나의 독립적 미학적 가치를 갖는다. 마당을 무엇인가로 가득 채우는 경우보다 반드시 나으란 법은 없지만 못할 것도 없다. 여백이 미학적일 수 있는 것은 일반론적으로 말하면 쉼의 가치 때문이다.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는 장면을 볼 때 가져야 하는 심리적 부담과 시각적 피로 같은 것에서 해방시켜 주는 쉼의 미학이다.
이것을 이론적으로 정리한 것이 노장사상의 가르침인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이다. 도자기의 비유라고도 하는데, 도자기의 쓸모 있음은 딱딱한 껍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체가 없는, 따라서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기 쉬운 가운데의 빈 공간에 있다는 가르침이다. 딱딱한 껍질은 오히려 다른 존재가 들어오는 것을 막고 방해하기 때문에 진정한 쓸모 있음을 못 만들어낸다. 내 마음에 물욕이 가득 차 있으면 아무것도 들이지 못하고 혼자서 그 욕심을 부여매고 끙끙대다가 망가져 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런 일반론은 한옥의 마당에 대한 건축적 해석과 대체로 일치한다. 다소 심심하고 무성의해보이며 심지어 삭막하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마당을 비워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공간적으로 어떤 이득이 있길래 마당을 비운 것이며, 마당을 비웠더니 공간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우선 마당에서 복사열을 이용한 대기 순환에 유리하다. 마당을 가득 채우면 여름 남동풍의 바람 길을 막기 때문이다. 빈 마당은 지붕 처마 선이 내려놓는 그림자를 조형 요소로 활용하기에 더 없이 유용하다. 계절과 하루 중의 시간대, 그리고 날씨 등에 따라 수시로 길어졌다 짧아지며 진해졌다 흐려지는 항변의 조형요소를 집에 끌어들여 즐길 수 있게 된다. 빈 마당은 햇빛을 집에 들여 함께 하는 중요한 통로이다. 앞의 바람과 합하면 햇빛과 바람이라는 대표적인 자연요소와 함께 살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