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은 산과 강과 나무 같은 원생림으로 정의되는 좁은 의미의 자연과도 여전히 적극적으로 어울린다. 이를 위해 만든 것이 누각이라는 독특한 건축형식 혹은 구조형식이다. 누각 은 자연과 소통하고 자연을 즐기기 위해 벽을 다 털어내고 기둥만 남긴 건물이다. 누각 가운데 최고는 물론 숲속이나 나무 아래 혹은 강가 바위 위에 위치하는 경우이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이면 어김없이 지어지던 정자라는 것이다. 정자에서는 글도 읽고 문장도 지으며 술과 예술과 더불어 풍류도 즐긴다. 이 모든 것들은 사실 하나였다. 적어도 자연 아래에서, 정자 속에서라면 말이다.
다음으로 좋은 경우가 한옥의 후원 같은 곳에 단독으로 짓는 누각이다. 그리 흔하지는 않았지만 이 역시 집에서 자연을 적극적으로 즐기고 자연과 하나 되려는 의지의 발로였다. 마지막 경우가 한옥의 집안에 누각구조를 들여 방과 함께 짓는 경우인데 누마루와 대청이 그것이다. 누각 구조를 군더더기 없이 만들기 위한 한옥만의 장치가 있는데, ‘벼락치기 문’이라는 것이다. 위로 들어 올릴 수 있는 문이다. 여닫이와 미닫이만으로는 누각 구조를 만드는 데 부족하다. 창문을 아무리 활짝 열어도 벽의 일부가 남기 때문이다. 골조만 남기고 벽을 다 털어야 진정한 누각구조가 되는데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창문 형식은 벼락치기 문밖에 없다.
‘단독 누각-누마루-대청’으로 이어지는 벌거벗은 구조는 분명 한옥, 혹은 동북아 특유의 공간형식이다. 자연과 하나가 되어 어울리며 자연을 즐기는 일을 피크닉 가듯 마음먹고 하는 이벤트로 보지 않고 일상생활 속으로 끌어들여 항시적이고 당연한 일로 만들려는 건축 장치이다. 선비문화에 견주어 생각하면 풍류를 즐기기 위한 공간구조이다. 풍류란 단순히 술 먹고 노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려는 세계관의 한 형식이다.
불이(不二)와 탈물(脫物)
자연과 하나 되려는 공간 개념은 불교와 도교 사상의 가르침과 연관이 깊다. 불교에서는 불이 사상이 대표적이다. 불이 사상이란 세상만물을 가르는 이분법의 분별이 사실은 사물의 본성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이 지은 인위적인 헛것이라는 가르침이다. 너와 나는 둘이 아니고 본디 하나이듯 내-외부 공간도 하나이지 서로간에 나머지 반쪽처럼 대별적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공간을 안팎으로 굳이 분별하려 드는 것은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가르친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생산해서 남을 누르고 물질을 더 많이 거머쥐기 위한 공리적 목적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