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 천장은 높고 방의 천장은 낮다
한옥에서 대청의 천장은 높고 방의 천장은 낮다. 당연하다. 대청은 넓고 방은 좁기 때문이다. 건축에서 얘기하는 스케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말로 하면 척도인데, 단순히 잰다는 뜻이 아니라 ‘상대적 비율’이라는 의미이다. ‘x-y-z'축의 세 방향 크기가 정비례를 기본 법칙으로 상식적 범위 내에서 적절한 비율로 어울리는 범위, 혹은 그렇게 정해지는 상대적 치수라는 뜻이다. 넓은 광장 앞에 들어서는 건물은 따라서 커야 하며 키 큰 사람이 신발도 큰 걸 신는 것 등이 모두 스케일의 개념이다. 한옥에서는 이를 잘 알고 지킨다. 대청 천장을 굳이 안 막고 구조를 다 드러낸 이유는 여름에 바람을 시원하게 들이려는 환경적 목적이나 구조미학이라는 조형적 목적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케일에 맞춰 천장을 높게 하기 위한 목적도 크다.
방과 대청 사이의 천장 높이 차이는 기능적인 면도 있다. 좌식생활에 맞게 방의 천장은 낮다. 앉아서 생활하기 때문에 천장이 높을 필요가 없다. 이놈의 좌식생활 때문에 조선이 호연지기를 잃고 앉은뱅이처럼 찌그러들었다는 지적도 있지만, 공간의 관점에서 보면 낮은 천장이 주는 아늑하고 포근한 매력을 즐길 수 있다. 창호지 문이라도 닫고 가만히 들어앉아 있으면 어머니 품 안에 안긴 것 같다. 좌식생활이 불편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식생활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공간적 특징이다. 한 공간에서 바닥 면적과 천장 높이 사이의 관계가 왜 중요할까. 한마디로 방이 작으면 천장이 낮아야 사람은 심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대청은 좌식생활과 입식생활이 함께 일어나는 곳이다. 실내도 아니고 실외도 아닌 전이공간이라는 곳인데, 좌식의 실내생활과 입식의 실외생활이 교차하는 중간지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장 높이를 입식생활에 맞게 높게 냈다. 대청은 한옥을 완전한 앉은뱅이 공간만으로 놔두지 않는 역할도 한다. 작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꺾임이 많은 한옥에서 분명히 제일 장쾌한 공간이다. 방과의 스케일 대비가 심하기 때문에 그 효과는 그만큼 커진다. 가부장제 아래에서 주인마님의 체통을 제일 잘 살려서 영을 세워주는 장면은 사모관대를 쓴 양반이 대청에 서서 호령하는 장면일 것이다. 어머니 품 같이 아늑한 방과 양반의 체통을 살려주는 장쾌한 대청은 스케일의 미학을 대표하는 좋은 예이다. 이 둘을 한 채 안에 나란히 둬서 대비의 미학을 살려낸 것은 스케일의 미학을 제대로 구사해서 응용할 줄 아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오르내림과 꺾임이 많은 한옥 구조의 휴먼 스케일
한옥은 오르내림이 많고 꺾임도 많다. 현대인들은 이것을 불편하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인간을 돕는 이로움의 과학이다. 곰곰이 따져보자. 평평하고 밋밋한 집에서 살면 정녕 편리한가. 요즘 유행하는 텔레비전의 건강 프로그램, 심지어 9시 뉴스에도 자주 등장하는 문구 하나, “스트레칭 세 번만 해도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이다. 사무직 종사자, 운전자, 가정주부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사람 몸은 자주 움직여야 건강이 유지된다는 말이다. 평평하고 밋밋한 집에서 개구리 겨울잠 자듯 살다보니 결국 온몸이 찌뿌드드해지고 헬스클럽과 요가원을 찾게 된다. 오르내림과 꺾임이 많은 집에서 살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난다. 일상생활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을 많이 움직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신체 이동의 템포를 조금 천천히 잡아야 한다. 급한 마음에 쫓기는 것 같은 템포로 사는 사람에게 오르내림과 꺾임이 많은 구조는 단지 불편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