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사람을 닮으니 식구들 사이의 접촉 가능성 및 그 형식을 늘려준다. 의사소통방식을 다원화한다는 뜻이다. 집의 중심을 벽을 이루는 물질로 보지 않고 벽 사이의 공간을 오가는 발길로 본 것이다. 집의 요체를 벽이 한정하는 면적으로 보지 않고 발길에 따라다니는 식구들 사이의 소통과 교류로 본 것이다. 벽으로 막아 각자 면적을 깔고 앉아 안으로 꽁꽁 걸어 잠그는 집은 물심양면 모두 건강할 수 없다. 사람 몸으로 치면 혈끼리 단절되어서 기가 막힌 상태이다. 소통과 교류가 끊기니 그 집안의 분위기와 가풍은 말 그대로 ‘기가 막히게’ 된다. 한옥은 이것을 경계했다.
대가족제도 때 집이라서 더 그랬다. 가부장제 집이기 때문에 엄격한 위계는 필요했지만 이와 동시에 식구 수가 많은 대가족 집이었기 때문에 위계만 고집하다간 자칫 ‘기가 막힌’ 집이 되기 쉬웠고 이것을 경계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통하고 저렇게도 통하게 만들었다. 삼대 십 수 명이 한 집에 살다보면 식구들 사이에 일어나는 소통과 교류는 경우의 수로 셀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 얼마나 많은 만남과 모임이 일어날 것이며, 얼마나 다양한 소통과 모의가 필요할 것인가. 드러내고 싶은 소통도 있었을 것이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교류도 있었을 것이다. 이에 적절하게 복합적이고 이에 상응하는 다양한 공간구조가 필요한데, ‘원통’한 공간이 최고였다.
순환하는 한옥 공간에서는 동선의 종류가 다양해진다. 이 자체가 일단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동에 다양한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이동의 목적과 성격, 이동하는 사람의 상황과 마음상태 등 여러 조건에 따라 각각에 맞는 동선을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기 때문이다. 한옥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작은 도시이자 우주이다. 수많은 길이 나고 이동과정이 다양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