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불화,탱화

선운사 도솔암

문성식 2011. 1. 27. 03:09

선운사 도솔암

 

도솔암의 정확한 창건사실은 알 수 없으나, 사적기에는 선운사와 함께 백제 때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이 만년에 왕위를 버리고 도솔산의 한 굴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어느날 밤 바위가 쪼개지며 그 속에서 미륵삼존불이 출현하는 꿈을 꾸고 이에 감응하여

중애사.선운사.도솔사등 여러 사암을 창건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백제의 영토였던 이 곳에 신라왕이 머물렀을 가능성은 희박하여 창건사항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미륵삼존의 출현이나 ‘도솔(兜率)’이라는 이름 등은 도솔암이 미륵신앙의 배경하에 창건된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선운사 도솔암 전경

 

특히 도솔암 서편의 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좌상(磨崖佛坐像)은

고려 초기의 마애불 계통 불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는데, 사람들이 이 마애불을 ‘미륵불’이라 부르고 있었던 데서도

도솔암과 미륵신앙의 깊은 관련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마애불좌상이 조성된 이래 이불상의 배꼽에는 신기한 비결(秘訣)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하여,

동학농민전쟁 무렵에는 동학의 주도세력들이 현세를 구원해줄 미륵의 출현을 내세워 민심을 모으기 위해

이 비기를 꺼내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선운사 도솔암

 

발굴조사에 따르면 이 곳에서 출토된 기와에 ‘도솔산 중사(兜率山仲寺)’라는 명문이 있어

당시에는 절이름을 중사라고도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 도솔암은 상도솔암 하도솔암 북도솔암 등 세 암자로 나뉘어져 독자적인 이름을 갖게 된다.

상도솔암은 지금의 도솔천내원궁으로서 1511년 지은(智誾) 스님이 중창한 뒤

1694.1829년에 각각 중수하고 1705년에 중종을 봉안하였는데, 조선 말 이후 내원궁만 남기고 퇴락하였다.

선운사 도솔암  전경

 

하도솔암은 현재 마애불상이 있는 곳으로서 1658년에 해인(海印)스님이 창건하였으며,

북도솔암은 지금의 대웅전이 있는 자리로서 1703년(숙종 29)에 최태신이 창건하였다.

이처럼 각기 독자적인 암자였던 것이 근세와 와서 북도솔암을 중심으로 하나의 암자로 통합된 것이다.

현재 도솔암의 전각은 대웅전 나한전 도솔천내원궁 요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솔암내원궁에는 보물 제280호인 지장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마애불좌상은 보물 제 1200호, 나한전과 내원궁은 각각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선운사 도솔암 극락보전

 

선운사 도솔암 극락보전

 

선운사 도솔암 극락보전 편액

 

선운사 도솔암 극락보전 지장보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선운사 도솔암 극락보전 불단

 

선운사 도솔암 극락보전 아미타부처님

 

선운사 도솔암 극락보전 불단

 

선운사 도솔암 극락보전 아미타불

 

 

 

선운사 도솔암 극락보전 신중단

 

 

선운사 도솔암 극락보전 편액

 

선운사 도솔암 극락보전 앞 석탑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좌상 (고려시대유물 보물 제1200호)

 

나한전 왼편으로 돌아가면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드는 절벽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절벽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마애불이 새겨져 있습니다.

마애불의 조각은 섬세하거나 정교하지 않아 뛰어난 솜씨를 가진 장인이 조각한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매우 서민적이고 소박하게 생긴 마애불입니다.

음각, 양각이 도드라지지도 않고 평면적입니다. 얼굴은 네모지고,

눈은 가로로 길게 찢어졌고, 입술은 도드라지게 두툼합니다.

그런데도 이 투박한 불상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고려 초기의 거대한 마애불 계통 불상이기 때문입니다.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특히 이 불상의 명치 부근에는 신기한 비결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이 비기를 꺼내면 천지가 개벽한다는 말이 떠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학농민전쟁 무렵에 동학운동은 주도했던 손화중이 현세를 구원해줄

미륵의 출현을 내세워 민심을 모으기 위해 이 비기를 꺼냈다고 합니다.

당장은 천지가 개벽할 듯했지만 결국 동학운동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지요.

그런데 마애불명치의 구멍에 있던 비기는 불경이나 불상제작에 공이 있는 사람들의 명단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원래 마애불에 그런 장치를 해둔다고 합니다.

아마도 조선후기 농민착취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천지개벽을 바라는 바람에서

비기에 관한 전설을 형성하게 된 것이 아닐까요.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보물 제1200호

 

도솔암의 서편 암벽 칠송대(七松臺)에 새겨진 높이 13m, 너비 3m에 이르는 거대한 마애불상이다.

전설에 의하면 백제 위덕왕(재위 554∼597년)이 검단선사(黔丹禪師)에게 부탁하여

암벽에 불상(마애불)을 조각하고 동불암이라는 공중누각을 짓게 하였는데,

조선 영조 때 무너졌다고 한다.

불상은 낮은 부조로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이며, 머리에는 뾰족한 육계가 있다.
방형(方形)에 가까운 평면적인 얼굴에 눈은 가늘고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으며,

우뚝 솟은 코에 앞으로 내민 일자형의 두툼한 입술이 소박하고 익살스러운 미소를 띤 것처럼 보인다.

귀는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게 늘어져 있고, 목은 표현하지 않아서 상체 위에 머리를 올려놓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상체는 방형에 가슴이 넓고 평면적이며, 결가부좌한 넓은 하체에 손과 발 역시 체구에 비해 큼직큼직하다.

투박한 두 손은 활짝 편 채 아랫배에 가지런히 붙여져 있다.

 

불의(佛衣)는 통견(通肩)으로 두꺼운 편은 아니나 옷주름선이 선각으로 형식화되어 있고,

평평한 가슴 아래로 선명하고 단정한 군의(裙衣)의 띠매듭이 가로질러 새겨져 있다.
대좌는 비교적 높은 2단으로 되어 있는데, 상대(上臺)에는 옷자락이 늘어져 덮여 있고

하대(下臺)는 간략한 연꽃무늬의 연화좌로서 전반적으로 마멸이 심한 편이다.
광배는 표현되지 않았고, 가슴에는 사각형으로 큼직하게 복장(腹藏)구멍을 나타내었다.

머리 위에는 사각형의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고 부러진 서까래가 꽂혀 있는 것도 있는데,

이는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지붕만 있는 누각 형태의 목조 전실(前室)을 마련하였던 흔적으로 보인다.

이 불상은 고려 초기의 거대한 마애불 계통 불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사람들은 이 마애불을 미륵불이라 부르고 있는데 불상의 배꼽에 신기한 비결(秘訣)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하여,

동학농민전쟁 무렵에 동학의 주도세력들이 미륵의 출현을 내세워 민심을 모으기 위해

이 비기를 꺼내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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