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76.jpg 고려 후기의 청자주전자. 높이 32.7㎝, 입지름 2.7㎝, 밑지름 13㎝. 

 

고려청자(高麗靑磁)에 진사(辰砂)무늬를 곁들이는 장식기법은 이미 12세기 전반기에 있었던 것 같은데, 진사만으로는 대담하게 큰 무늬를 장식한 작품들이나 진사를 흔하게 쓴 작품들은 대개 13세기에 들어선 이후의 일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는 미국(美國) 워싱턴의 후리어 미술관에 있는 청자진사연판문주자(靑磁辰砂蓮瓣文注子)와 국립중앙박물관의 청자상감진사포도당아문주자(靑磁象嵌辰砂葡萄唐兒文注子), 그리고 이것이 있다.

이것은 경기(京畿) 강화(江華)에서 고려(高麗) 최충헌(崔忠獻)(1149∼1219)의 묘지(墓誌)와 함께 출토된 유물이므로, 최충헌(崔忠獻)의 졸년(卒年 1257) 무렵 곧 고려(高麗) 고종(高宗) 때의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다.

유색(釉色)과 진사의 발색(發色)이 다른 것들보다 높다고 할 수 있으며, 진사청자로서는 가장 뛰어난 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형태는 표주박 모양의 연판으로 표면을 장식하고 화맥(花脈)은 오목새김하고, 연판 가장자리는 진사를 칠하였다. 윗몸체와 아랫몸체 중간에는 동자가 연봉오리를 두 손으로 껴안아 들고 있는 모습과 연잎을 앞뒤로 장식하였다. 손잡이의 앞쪽 끝부분은 당초형이며, 손잡이 꼭대기에 두 눈이 관통한 개구리형 고리를 앉혔다.

 

주구(注口)는 연잎을 말아붙인 형상으로 밑바닥에는 하엽(荷葉)형상을 반양각으로 나타냈다. 또한 주구로부터 연줄기가 솟아나 하엽 중심과 연결되었다. 연줄기가 솟아나오고 줄기에서 다시 잎이 멀어져 주구를 이룩한 것을 상형한 것이다.

 

연판의 가장자리를 비롯하여 동자의 무릎, 주구의 연엽 중심부, 주구와 몸체 사이에 있는 당초 사이의 꽃봉오리, 연봉오리 꼭대기, 손잡이 앞끝 당초 사이의 봉오리 등에도 진사를 칠하였다.

 

연판의 소판(小瓣), 손잡이 모서리, 부리의 밑부분 및 연줄기 등에 백퇴화점을 찍었으며, 동자의 두 눈 및 정수리와 개구리의 정수리에는 철사점(鐵砂點)을 찍었다.

 

유약은 비교적 맑고, 빙렬(氷裂)이 없고 광택이 나며, 약간 실투성(失透性)으로 기포가 잔잔하게 깔려 있다. 아랫몸체 등의 하부 일부는 유약이 덜 녹아 누렇고 불투명하게 변하였다. 굽은 바닥의 유약을 훑어내고 내화토와 모래를 빚어 여덟 군데를 받쳐 번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