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55.jpg 통일신라시대의 뼈항아리. 높이 16.0㎝, 입지름 15.3㎝.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경주지방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며,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외함(外函)과 함께 발견되었다. 유골을 넣어 매장하는 데 사용되던 항아리로서, 낮은 온도에서 발색하는 연유(鉛釉)계통의 녹유를 발라 구워낸 것이다.

 

통일신라(統一新羅)시대에는 승려와 상류사회에 불교적인 화장법이 유행되어, 그 유골을 넣어 매장하는 데에 필요한 토기제(土器製) 골호(骨壺)가 많이 사용되었다.

이 토기 골호 중에는 소수이지만 인화문(印花文)을 장식한 시유(施釉) 골호가 있는데, 이 녹유골호는 이러한 시유골호 중에서도 뛰어난 가작의 하나이다.

10156.jpg 안팎으로 고르게 입혀진 심록색의 유색(釉色)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고운 발색(發色)을 보여 주고 있다. 형태는 둥근 합형(盒形)으로, 별다른 기교를 부린 것은 없으나, 합의 바탕과 뚜껑의 표면 전체에 특이한 인화문을 장식해 놓았다. 이 인화문은 뚜껑의 꼭대기 한가운데에 패치한 일종의 꽃송이 같은 무늬와, 영락문(瓔珞文)으로도 볼 수 있는 장식문(裝飾文)·점선문(點線文)·선조문(線條文) 등이 섞바뀌어 합 아래위에 빈틈없이 장식되어 있다.

원래 이 골호는 서울에 있던 일인(日人) 수집가 이동정웅(伊東楨雄)의 손에 의하여 일본(日本) 패망 직전에 동경(東京)으로 옮겨졌는데, 고미술상(古美術商)의 손을 거쳐 동경국립박물관(東京國立博物館)에 팔려 수장되었던 것이다. 그 후, 1965년에 조인된 한일협정(韓日協定)에 의해 반환문화재(返還文化財)로서 1966년에 되찾아 온 것이다.

합형(盒形)으로 된 이 녹유골호는 원래 경주(慶州)지구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확인할 수는 없다.

이례적으로 뚜껑에 둥근 꼭지모양이 있고, 전체가 각이 진 화판(花瓣)으로 된 국륜형(菊輪形)의 합형 화강암 외함(外函) 속에 장치되어 있었던 것인데, 석함(石函)도 같이 수습 보존된 것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