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18.jpg 조선시대 백자항아리로 높이 41.3㎝, 입지름 19㎝, 밑지름 21.5㎝의 크기이다. 아가리 가장자리가 밖으로 말렸고, 목 부위의 경사면부터 풍만하게 벌어졌다가 서서히 좁아진 둥근 몸체의 항아리이다.

 

주둥이 부분이 부서져 수리했기 때문에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안으로 구부러지고, 배가 불룩하며, 굽으로 갈수록 차차 좁아진다.

문양(文樣)은 주둥이에 당초절지(唐草折枝)의 변형을 그리고, 어깨에는 연판문대(蓮瓣文帶)를 그려 놓았다. 몸체에는 대와 매화를 화원(畵員)의 활달한 솜씨로 그리고, 굽에는 물결문대(文帶)를 표시해 놓았다. 대는 몰골법(沒骨法)을 썼으며, 매화는 등걸을 두어 번 휘어 돌려 나무 가장자리만 힘차게 휘어 돌아간 굴곡과, 나무등걸의 양감(量感)을 나타내기 위하여 같은 방향으로 짧은 사선(斜線)을 긋고, 호초점(胡椒點)과 흡사한 점을 찍어 놓았다.

태토(胎土)는 회백색이며, 표면의 정리가 세련되어 있다. 식은테가 없는 담청색(淡靑色)을 띤 유백조(乳白調)의 안정된 백자유(白磁釉)로 시유(施釉)되어 매우 전아(典雅)한 품위를 풍기고 있다.


농담(濃淡)이 들어간 검은 안료로 목과 어깨 부분에 구름무늬와 꽃잎무늬를 돌렸고 아랫부분에는 연속된 파도무늬를 장식했다. 몸체의 한 면에는 대나무를, 다른 한 면에는 매화등걸을 각각 그려 넣었다. 유약은 푸르름이 감도는 유백색으로, 전면에 고르게 씌워져 은은한 광택이 난다.

이러한 항아리의 형태는 16세기 분청사기에서 보이며, 특히 중국 명대의 항아리와 비슷하다. 어깨 부분과 아랫부분에 표현된 무늬는 17세기 전반기의 무늬로 계속 이어진다. 매화, 대나무의 모양이나 밝은 유약색으로 보아 16세기 후반경 경기도 광주군 일대의 관음리 가마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매화와 대나무 그림은 솜씨가 뛰어나서 궁중화가가 그린 것으로 보인다.

이 항아리는 철화백자 항아리로서는 초기의 것으로, 당당하고 풍만한 모양새에, 능숙한 솜씨로 매화와 대나무를 표현하여 문양과 형태가 잘 어울리는 우수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