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02_20.jpg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청화백자 항아리로, 크기는 높이 54.8㎝, 아라리 지름 19.2㎝, 밑 지름 18㎝이다

구연(口緣)은 수직으로 낮게 서고 거기서 서서히 팽창하여 견부(肩部)에서 팽배되었다가 서서히 좁아진 후 동체최하부(胴體最下部)에서 약간 벌어져 접지면(接地面)에 이르는 입호(立壺) 형식(形式)인데, 항아리의 양감이 풍부하고 하부가 좁아 외견(外見)이 아주 준수하다.

동체(胴體) 상부 (上部) 네 곳에 청화(靑華)로 화창(花窓)을 그리고, 서로 마주보는 곳에 각각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연상(聯想)케 하는 산수문(山水文)과 화조문(花鳥文)을 사실적으로 그려 주문양(主文樣)으로 삼았다. 또 각(各) 화창(花窓)은 내(內)에 도안화(圖案化)된 「부(富)」자(字)가 있는 마름모꼴의 사각형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각 화창(花窓)과 화창(花窓) 사이의 상·하(上·下) 네 곳에 역시 내(內)에 도안화(圖案化)된 「수(壽)」·「강(彊)」자(字)가 있는 원(圓)이 있다. 수직으로 선 구연(口緣) 측면(側面)에는 당초문대(唐草文帶)가, 구부(口部)주위에는 커다란 여의두문(如意頭文)과 변형연판문(變形蓮瓣文)이 번갈아 시문되었으며, 동체(胴體) 최하부(最下部)에는 단청(丹靑)에서 응용한 듯한 안상(眼象)과 같은 문양대가 있다.

유약은 전면(全面)에 고르게 시유되었으며 잘 녹아 투명(透明)하며 광택이 있다. 표면색조(表面色調)는 회백색(灰白色)이며 빙열(氷裂)은 없다. 동체(胴體) 중앙(中央)에 상·하(上·下)를 접합시킨 흔적이 있으며 구연(口緣) 한 곳과 굽 여러 곳의 작은 결손(缺損)을 복원수리(復元修理)하였다. 안다리굽으로 접지면에 굵은 모래를 받쳐서 번조(燔造)하였다.

항아리의 형태나 청화(靑華)로 시문된 문양의 내용(內容)과 밝은 발색(發色), 또 종속문양대의 문양 단위가 큰 점, 번조방법(燔造方法) 등으로 보아 18세기경에 경기도(京畿道) 광주(廣州) 관요(官窯) 금사리계(金沙里系) 가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항아리는 금사리(金沙里) 시기(時期)의 청화백자 (靑華白磁) 입호(立壺)로서 형태가 크고 잘 생겼으며 문양구성도 다양한데 특히 화창내(花窓內)의 산수화조문(山水花鳥文)이 뛰어나다. 이 시기의 청화백자(靑華白磁)는 그 수효가 적고 작은 병류(甁類)가 많은데 이 항아리는 크고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 청화문양(靑華文樣)도 뛰어난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