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48.jpg 고려시대의 청자연적. 높이 10㎝. 간송미술관 소장.
 
고려청자의 문양은 공예의장(工藝意匠)이면서 자연현상(自然現狀)에서 소재(素材)를 찾아냈기 때문에 사실에 가깝고, 자연과 접하는 것 같다. 또한 문양 뿐만 아니고 형태 자체를 자연에서 찾아낸 것도 많다. 오리·원앙·공작 등 각종 새, 사자·원숭이·개구리 등 동물, 각종 물고기, 상상의 동물인 용·봉황, 각종 과실인 복숭아·석류·참외, 나팔꽃, 표주박 등이 청자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어느 것이나 동물과 식물이 지니는 특징과 자연의 향기를 지니고 있으며 절묘하고, 때론 익살스럽게 나타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에 대하여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어떤 특징과 개성을 청자를 만든 작자(作者)에 의해서 느끼게 된다.

이 원숭이모양 연적은 어미원숭이의 엉거주춤한 자세, 보채는 새끼의 모습을 통해서 원숭이 모자(母子)의 사랑을 재미있게 표시하였다. 성긴듯 섬세한 감정의 표현과 절묘한 듯 대범하고 아기자기한 감정이 보는 이의 마음을 때론 흔연(欣然)하고 때론 흥이 나며 때론 사랑을 느끼게 한다.

이 원숭이모자연적은 그냥 청자연적이 아니고 고려사람들의 사랑이며 익살이다. 어미의 머리 위에는 직경 1.0㎝ 정도의 둥근 물들어가는 구멍이, 새끼의 머리 위에는 직경 0.3㎝ 크기의 물을 벼루에 따라내는 구멍이 각각 뚫려 있어 연적(硯滴)임을 알 수 있다. 두 원숭이의 손가락과 발가락은 사이를 파서 두드러지도록 표현하였으며, 어미원숭이의 눈·코와 새끼원숭이의 눈은 철사점(鐵砂點)을 찍어 표현하였다. 유약은 잘 녹아 투명하고 잔잔한 기포가 전면에 있어 은은하며 빙열(氷烈)이 없으며 표면색조는 아름다운 비색(翡色)이다. 밑바닥의 유약은 닦아 냈으며 양 발과 엉덩이 세곳에 내화토를 받쳐서 번조하였다.
 

어미원숭이 의 눈·코·입과 새끼원숭이의 눈에는 짙은 철사(鐵砂)로 점을 찍었으며, 바닥에는 유약을 닦아내고 내화토(耐火土)로 눈을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 있다. 태토는 맑은 비색유(翡色釉)로 전면에 곱게 시유되어 은은한 광택이 나타나고 있다.

12세기 중반경 순청자(純靑磁)의 전성시기에는 오리·복숭아·거북·동자 등의 소형 연적이 적지 않게 제작되었는데, 이 모자원숭이연적도 그러한 연적 중의 하나로 노장사상에 의한 무릉도원의 이상향과 원숭이의 모습이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자애로운 모습의 모자원숭이연적은 그 예가 매우 드문 작품이다. 깔끔하고 이지적이며, 안정된 형태와 갓맑은 유색(釉色)이 잘 어울리는 고려청자 전성기 작품의 한 예이다.


고려청자연적(高麗靑磁硯滴)중 원숭이모양의 연적은 드물며 더욱이 모자형(母子形)은 유일한 예로서 고려귀족사회(高麗貴族社會)에 애완용으로 수입되었을 원숭이를 그당시 사기장인(沙器匠人)이 훌륭한 솜씨로 표현한 명품(名品) 중의 하나로 청자압형연적(靑磁鴨形硯滴)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다.

1146년경 제작된 인종(仁宗)의 장릉출토(長陵出土) 청자과형화병(靑磁瓜形花甁), 청자합(靑磁盒) 등과 유색(釉色)에 있어 동일(同一)하여 12세기 전반경(前半頃) 강진(康津) 사당리요(沙堂里窯)에서 제작된 것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