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75.jpg 조선시대 만들어진 백자 항아리로 큰 항아리와 작은 항아리 두개가 있다.

큰 항아리는 총 높이 34.0㎝, 높이 27.2㎝, 아가리 지름 10.1㎝, 밑 지름 13.7㎝이며, 작은 항아리는 총 높이 12.5㎝, 높이 9.5㎝, 아가리 지름 4.2㎝, 밑 지름 5.7㎝이다.

조선(朝鮮)시대 항아리는 크게 형태(形態)에 의해 입호(立壺)와 원호(圓壺)(일명(一名) 달항아리)의 둘로 나뉘는데, 이번에 지정된 이 대·소호(大·小壺) 두 점은 형태가 거의 같으며, 조선시대(朝鮮時代) 전기(前期) 입호(立壺)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즉 구연(口緣)은 밖으로 동그랗게 말아 붙였으며, 구부(口部)에서 서서히 팽창하여 견부(肩部)에서 팽배되었다가 풍만하고 여유있는 곡선을 그리며 서서히 줄어들어 접지면(接地面)에 이른다. 뚜껑의 윗면 중앙에는 보주형(寶珠形) 꼭지가 있어 손잡이가 되며, 그 주위로 두 개의 낮은 층단(層段)(소호(小壺)는 한 단)이 등간격(等間隔)으로 있다. 두 항아리 모두 안다리굽 형태이며, 뚜껑과 항아리 모두 접지면(接地面)에 가는 모래를 받쳐서 번조(燔造)하였다. 대·소호(大·小壺) 모두 정선(精選)된 태토를 사용하였으며, 작은 결손(缺損)도 유빙열(釉氷裂)도 없는 깨끗한 외형(外形)을 갖추고 있다. 유약(釉藥)은 내·외면(內·外面)과 굽안바닥에까지 고르게 시유(施釉)되었으며, 유약(釉藥) 자체(自體)는 옅은청색(靑色)을 머금고 있으나 태토(胎土)와 어우러진 표면색조(表面色調)는 유백색(乳白色)에 가깝다. 이런 형태의 항아리는 보물 1071호로 지정된 조선시대의 청자에도 그 예(例)가 있으나 순백자(純白磁)로는 예(例)가 드물다. 구연(口緣) 의 처리 등 형태의 시대적 특징과 함께 태토(胎土)·유약(釉藥)·표면색조(表面色調)·번조방법(燔造方法) 등으로 보아 조선(朝鮮) 초(初) 경기도(京畿道) 광주(廣州)의 관요(官窯)에서 만들어진 궁중용(宮中用) 상품(上品) 갑번자기(匣燔磁器)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의 도자기중에서 핵심은 순백자(純白磁)로 그 중 초기백자는 국초(國初) 조선(朝鮮)의 기백과 상응하는 격식과 유연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항아리들이 근래에 매장문화재로서 많이 발견되었지만 이 항아리와 같이 품격(品格)이 뛰어난 예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