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국보 제2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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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북 경주시 진현동 15-1 불국사 |
소재지 | 진현동 |
지정일 | 1962.12.20 |
수량/면적 | 1기 |
시대 | 통일신라 |
소유자 | 불국사 |
관리자 | 불국사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불국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높이 10.4m.
불국사 대웅전 앞뜰 동쪽에, 서쪽의 3층석탑과 대응하여 위치하고 있는 4층탑이다.
상징적으로 볼 때 다보탑은 법신불(法身佛)인 다보여래(多寶如來)와 보신불(報身佛)인 석가모니불이 불이(不二)임을 상징하는 탑이다. 다보불탑 또는 칠보탑(七寶塔)이라고도 하며, 탑의 기단 위에 이중의 방을 구축하고 맨 위에 상륜(相輪)을 설치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탑은 ≪법화경 法華經≫의 견보탑품(見寶塔品)에 근거하여 건립되었다. 견보탑품은 다보여래가 ≪법화경≫의 진리를 설하는 석가모니를 찬양한 후, 다보탑 안의 자리 반쪽을 비워 나란히 앉도록 했다는 것이 중심내용이다. 이 다보여래는 석가모니 이전의 과거불(過去佛)로서, 영원히 살아 있는 본체로서의 부처인 법신불이다.
다보여래는 보살의 시절에 “누군가 ≪법화경≫을 설하는 자가 있으면 그곳에 많은 보배로 장엄된 탑을 신통원력으로 나타나게 하여 그 일을 찬양하리라.”하고 서원하였다.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하는 바로 앞에 칠보로 장엄된 탑이 땅 위 허공에 우뚝 솟았는데 이것이 다보탑이다.
견보탑품에는 그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높이는 500유순(由旬 : 인도의 거리를 재는 단위. 1유순은 약 40리)이요, 평면의 넓이는 250유순이나 되었고, 땅에서 솟아나 공중에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가지 가지의 보물로 장식된 난순(欄楯 : 난간의 기둥과 난간 옆으로 가로지른 것)이 5천이요, 감실(龕室)이 천만이요, 옆으로 나부끼는 깃발, 길게 늘인 깃발, 그리고 줄줄이 늘어뜨린 구슬들, 또 무수히 걸린 보배로운 방울이 화려하고 사면으로 아름다운 향이 풍겨나와 사계에 가득찼으며, 금·은·유리 등 칠보로 된 지붕은 사천왕(四天王) 궁전까지 닿아 있었다. 하늘나라에서는 둥근 꽃을 비오듯 뿌려 탑을 공양하고, 천상계의 많은 신중(神衆)들이 꽃·향·구슬·깃발·음악으로 이 탑을 향해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다보탑은 위의 이야기를 조형을 통하여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하나하나의 형태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칠보는 부처의 본질인 ‘깨달음〔覺〕’의 일곱가지 덕성, 즉 칠각지(七覺支 : 擇法·精進·喜·輕安·念·定·捨)를 표시한 것이다.
탑의 높이가 500유순이라 한 것은 인과의 종적인 관계가 깊음을 표시하며, 평면의 넓이가 250유순이라고 한 것은 밑으로 그 덕이 널리 이웃에 미침을 표시한 것이다. 그리고 난순은 무궁무진한 정신의 힘을 간직함을 상징하였으며 비어 있는 감실은 한량없는 공(空)의 집, 아무런 집착도 없이 자비롭기만 한 마음을 상징하고 있다.
이 탑은 ≪법화경≫의 신앙과 함께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미쳐서 많은 탑이 건립되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불국사다보탑이다. 751년(경덕왕 10)에 당시의 재상이었던 김대성(金大城)이 건립한 이 탑은 깊은 우주의 진리, 인간의 진리를 표명하고 있다.
기단은 정사각형의 모습을 취하면서 사제(四諦)와 팔정도(八正道)의 근본도리가 밝혀져 있다. 이 기단 위에 겹겹이 쌓여가는 층들은 그 도리를 따라 실천할 때 나타나는 훌륭한 덕성들을 상징한다.
제1층을 향하여 올라가는 동서남북 사방의 10층계단은 오직 구도자에게만 허락된 40위(位)의 수행경지를 상징한 것이며, 1층의 사각형은 사섭(四攝)의 도리가 천명되어 있다. 1층부터 마지막 보주(寶珠)까지 12단계는 십지(十地)의 등각(等覺)·묘각(妙覺, 佛地)을 상징함으로써, 이 탑 자체가 곧 불(佛)임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1층으부터 시작되는 중심기둥은 탑의 끝까지 계속되는데, 이것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모든 수행이 일심을 근거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양식상으로 볼 때 이 석탑은 우리 나라 석탑구조의 기본형을 따라 기단부·탑신·상륜부로 이루어졌으며, 평면은 기단부부터 방형을 기본으로 하되 탑신부의 상부구조는 8각으로 되어 있다. 기단부의 사방향에 있는 계단에는 본래 난간이 가설되어 있으며, 현재도 계단의 하단 양측에는 원래의 유구로 보이는 석주가 남아 있다.
계단의 윗부분은 상대 갑석에 연결되고 갑석의 윗면에는 1단의 굄돌이 있으며, 그 위에는 네 귀와 중앙에 5주의 방형석주를 세운 뒤 교차되게 받침 2단을 다시 얹었다.
이 위에 1층의 옥개석에 해당하는 갑석을 올려놓았는데, 일반적인 석탑과는 달리 매우 평박한 낙수면과 경쾌한 네 귀의 반전(反轉) 전각(轉角)을 이루고 있다. 이 갑석 위에는 하층의 기단에서와 같이 1단의 굄돌이 놓여 있고 그 위에 방형의 난간이 가설되었으며, 난간 속에는 8각으로 조성된 신부(身部)를 마련하였다.
신부 위에 다시 8각의 갑석을 덮고 8각형의 난간을 돌린 다음, 그 안에 여덟 개의 죽절형(竹節形) 돌기둥을 세워서 8각 연화대석을 받치게 하였다.
연화대석은 1석으로 조성하였는데 외측에 돌린 연화문은 복엽앙련(複葉仰蓮)으로 모두 16판이 조각되어 있다. 연화대 위에는 1석으로 만든 8각받침대석이 놓여 있으며, 그 위에 갑석과 같은 굽이 모각되어 있다.
그리고 이 받침석 위에는 8주의 주두형 석주를 받치고 그 위에 8각옥개석을 놓았다. 옥개석은 옥개받침이 각출되지 않았으며, 처마 끝에는 널찍한 낙수홈이 얕게 오목새김되어 있다.
또한 옥개석은 8각마다 전각의 반전이 경쾌하고 낙수면의 합각은 예리하다. 그리고 옥개 위에는 8각의 연화좌가 상륜부의 굄대를 받치고 있는데 1변에 복엽의 연판이 2판씩, 모두 16판의 복련(覆蓮)이 조각되어 있다.
옥개석 위에는 8각의 낮은 각형굄 2단을 각출하고 그 위에 8각형의 노반(露盤 : 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앙화·상륜 등을 받치는 장식)을, 다시 그 위에 원형의 복발(覆鉢 : 탑의 노반 위에 놓는 엎은 주발 모양의 장식)을 놓은 뒤 그 위에 8각 앙화(仰花)를 얹었는데, 복발과 앙화의 각 면에는 각종의 문양이 화려하게 돋을새김되어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보륜 3륜이 있으며 정상에 보개(寶蓋)를 덮고, 후에 보완한 듯한 보주(寶珠)를 정상에 놓았다. 이 탑은 1925년경 일본인들에 의하여 전면 해체 보수되었으나, 이에 관한 보고서 간행은 물론 간단한 기록조차 남겨 놓지 않았으며, 탑 속에 장치된 사리를 중심으로 한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이에 관하여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당시의 일본인 감독자의 이름으로 금동불상 2구를 경주박물관에 인계한다는 내용의 인계서가 남아 있을 뿐이며, 이 불상은 물론 여타의 사리 장엄구는 모두 행방불명된 상태이다.
또 이 다보탑에는 사방의 보계(寶階)가 마련된 갑석 위에 네 마리의 석사자가 안치되었는데, 그중 하나는 언제인지 모르나 없어지고, 세 마리가 있었음을 1902년에 현지조사한 일본인 학자가 확인하고 있으나 그 중 두 마리는 다시 일본으로 반출되고 현재는 한 마리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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