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2.jpg 전북 장수군  산서면山西面  사계리에 있는 조선후기의 주택

 

유헌 정황(丁煌)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종가이다. 유헌 정황은 인종의 장례 때 예법을 준수할 것을 주장하다가 정미사화 때 거제도로 유배되어 일생을 마쳤다. 안채, 사랑채, 행랑채, 대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채와 행랑채는 1854년 지었고 대문은 1927년에 지었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 헛간채가 튼 ㄷ자형으로 배치되고 사랑채 옆에 행랑채가 경사지게 놓였다.

조선 후기와 일제시대에 걸쳐 지은 상류주택이며, 근처의 작은 종가인 정상윤 가옥과는 대조적이다. 같은 시기에 지었지만 정상윤 가옥이 크고 화려한데 비해, 이 집은 큰 종가이면서도 규모가 작고 소박하며 실용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안채를 제외하고는 변화된 부분이 많지 않아 원형을 비교적 잘 보여주고 있는 집이다.

 

이 집은 마을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데 앞으로 논과 작은 계류가 있고 그 너머로 낮은 야산이 펼쳐져 경관이 좋음. 집 오른쪽에는 작은 종가인 정상윤가옥(문화재자료 119호)이 위치해 있고 왼쪽으로 100여m 떨어진 계류 위의 언덕에는 반계정이 있다.

이 집은 인종의 국장(國葬)때 예법을 준수할 것을 주장하다 정미사화(丁未士禍)때 거제도로 유배되어 일생을 마친 창원정씨 7세손 유헌 정황(丁惶)의 후손들이 세거해온 종가임. 안채 앞마당에 검은 바위가 있는데 주변을 파면 그 중간부에 “천하대지(天下大地) ”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이 집터가 좋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안채와 행랑채는 종도리 장여에 “숭정기원후사갑인(崇禎紀元後四甲寅) ”이라는 상량묵서명이 있어 1854년에 19세손 반계 정상규가 함께 건립하였음을 알 수 있음. 솟을대문은 종도리 장여에 세재정묘(歲在丁卯)라는 상량묵서명이 있는데 일제 강점기인 1927년에 21세손 회사 정양수가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 헛간채가 튼ㄷ자형으로 배열되고 사랑채 옆에 행랑채가 축을 달리하여 경사지게 놓였으며 사랑채 앞에는 솟을대문이 위치하고 있다.

이 집은 조선후기와 일제 강점기에 걸쳐 지어진 상류주택인데 인접한 작은 종가인 정상윤가옥과 대조적임. 같은 시기에 지은 건물이지만 정상윤가옥은 크고 화려한 데 비해 이 집은 큰 종가이면서도 규모가 작아 소박하며 실용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사랑채와 안채 모두 중앙부는 앞뒤에 퇴칸을 가진 구조이고 양끝의 퇴칸은 양통집(겹집)의 구조로 두 형식의 장점을 적절히 조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음. 반계가 건립한 정자 또한 형식보다는 내용을 추구한 실용성을 살펴 볼 수 있다.

이 집은 안채를 제외하고는 변화된 부분이 많지 않아 원형을 비교적 잘 보여주고 있어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