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1.jpg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山西面  오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택.

 

이 가옥은 현 소유자의 5대조가 같은 마을에 있던 큰 집에서 살림을 나게 되면서 지은 것이라고 하나, 상량에 사랑채는 조선 영조 49년(1773년)에, 안채는 고종 23년(1886년)에 건립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건물을 살펴보면 전북지방 상류가옥에서는 희귀한 고패형식의 안채와 안채 전면에 세워진 일자형의 사랑채를 중심으로 서쪽채, 아래채, 문간채, 바깥채 등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권씨 자신의 인근에서는 널리 알려진 독농가이기도한 까닭에 이 집은 부농가로서 많이 변모되어 현재도 가옥의 모든 공간이 활용되고 있다. 대부분의 상류가옥이 현재에 이르러서는 거의 모든 기능이 정지된채 껍데기만 남아 있는 사실과는 대조적이라 하겠다.

 

안채를 비롯해 사랑채·문간채·부속사 등 5채의 건물로 이루어졌다. 안채는 1853년에 건립되었고, 사랑채는 1773년에 건립된 것을 1875년과 1969년에 중수한 것이다.

 

집의 배치는 전형적인 상류층의 주택의 공간 구성을 따르고 있다. 내외 구분에 따라 사랑마당과 안마당으로 구분했으며 안채 뒤에는 뒤뜰이 있다. ㄱ자 모양의 안채 전면에 一자형 사랑채가 있고 안채 서쪽에 별채가 직각으로 배치되어 안마당은 ㅁ자형을 이룬다.

 

안채는 3칸 대청을 중심으로 작은방과 찬방(도장방)이 있으며, 큰방과 부엌이 찬방 전면으로 돌출된 ㄱ자형 평면이다. 3칸의 대청 중 끝의 한 칸은 신위(神位)를 모시는 사당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본래 집 북서쪽에 별도의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작은방을 입식 부엌으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으며 부엌이 있던 자리에는 방을 들였다.

 

맞배집으로서 박공면에 도리의 뺄목이 충분히 뻗어 나와 단정한 기품을 느낄 수 있다. 사랑채는 4칸 규모의 一자형 팔작집이다. 60cm 높이의 잡석 기단 위에 세웠으며, 2칸의 대청에 이어 윗방, 사랑방이 연이어 있다. 각 실은 툇마루가 있어 서로 연결되며 마루 끝에는 계자 난간을 둘렀다. 뒤쪽 툇간(退間 : 집채의 원칸살 밖에 내어 지은 칸살)은 서고 또는 벽장, 골방 등을 만들었다.

 

사랑채 동편에는 중문과 외양간, 창고로 이용하는 바깥채가 있다. 본래 중문은 사랑채와 서쪽 채 사이에 있었는데 문이 너무 좁고 지관의 권유도 있어서 현 위치로 옮겼다 한다. 대문도 사랑채 화단 중간에 있는 서문이 본래의 자리였으나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많은 부분이 변화되고 개조되었지만 안채와 사랑채만은 옛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조선 후기 상류 주택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