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중요민속자료 제20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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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남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 196 |
소재지 | |
지정일 | 1984.12.24 |
수량/면적 | 2동 |
시대 | |
소유자 | 박경숙 |
관리자 | 박경숙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주택.
상량(上樑)한 묵서명(墨書銘)에「세재무오구월상량(歲在戊午九月上樑)」이라 하였는데 이「무오(戊午)」는 1918년이다. 재산을 모은 토호(土豪)가 지은 집으로 집주인과 대목(大木)의 의사(意思)가 일치되어 호사(毫奢)를 다하였는데 특히 안채의 구성에서는 특출함을 보였다. 국내에서는 거의 유일한 평면구성이랄 수 있을 것 같아 학문적인 자료로 남겨두어야 하겠으므로 지정하게 되었다.
안채는 ㄱ자형이다. 보통의 ㄱ자형이 아니라 고패된 부분을 ㅁ형으로 한번 접은 형상이고 꺾인 좌우가 거의 대등한 규모이다. 부엌이 중앙에 있다. 부엌으로 출입하는 통로가 전퇴(前退)를 열고 토상화(土床化)한 것이어서 그 구조가 참으로 수이(殊異)하다. 거기에다 부엌문이 앞으로 나와 있어서 이 부분의 구성은 신기하고 흥미롭다. 부엌에 들어서면 거의 정방형(16척 ×15.8척)의 넓이인데 ㅁ로 꺾인 부분이 모가 죽어 일그러져 있다. 중간에 기둥 둘만이 서 있을 뿐이어서 넓게 보이는 공간이다. 부엌을 중심에 두고 사랑채쪽(동편)으로 방 2칸이 부엌에 이어져 있다. 두줄박이 겹집형인데 앞퇴에 연한 방은 크고 (7.9척 ×7.5척) 뒷방은 작다(7.5척 ×6.0척). 이 방 다음이 4칸 대청(大廳)인데 앞퇴까지 합하면 5칸 규모이다. 다음엔 다시 크고 작은 방과 앞퇴가 있다.
부엌의 남쪽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부엌 다음과 다음칸이 방이다. 역시 크고 작은 방이 겹줄인데 큰방은 2칸을 터서 널찍하게 쓰고 작은 뒷방은 각각 칸을 막아 작은데로 사용하였다. 역시 앞퇴가 있다. 다음간은 앞퇴를 넓게하여 마루방이 되고 다음에 방, 그리고 작은방에 이어진 부분에 다시 마루를 깐 마루방이 있다. 크게 보자면 남측엔 정면 3칸, 측면 3칸인 셈이고 동측은 정면 4칸에 측면이 3칸인 구성이다.
사랑채는 평면이 {{#187}}형인데 정면 7칸으로 구성되었다. 동향하였는데, 그 남쪽 끝칸은 방이다. 전퇴가 있는데, 기루(起樓)하듯 고설(高設)하고 난간을 설치하였다. 다음 칸도 방인데, 앞퇴가 한단 낮아졌고 난간은 여전하다.
다음 칸 역시 방인데, 이 방부터는 앞퇴가 정상높이가 되고 난간이 없으며 뒤퇴가 첨가되기 시작한다. 다음 2칸은 대청으로, 앞뒤퇴가 다 있다.
사랑채 북쪽 부분은 앞부분부터 2칸 두줄박이의 4칸 대청인데, 내루형(內樓形)이며 밖으로 쪽마루를 달고 난간을 설치하였다. 그 뒤로 2칸이 방인데, 북쪽편에 퇴를 두어서 뒤퇴와 연결되게 하였다.
이밖에도 사랑채 오른쪽에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바깥행랑채가 위치하며, 또한 사랑채 왼쪽에는 안채를 향하여 북향한 안행랑채가 있다. 안행랑채는 대문간을 포함하여 정면 6칸, 측면 1칸 규모이다.
안행랑채와 안채 사이에는 동향한 2칸의 곳간채가 배치되어 있다. 따라서, 안채·사랑채·안행랑채·곳간채 등에 의하여 집의 전체형상은 튼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이 집의 특색은 무엇보다 안채의 평면구성이 특출하다는 데에 있으며, 이러한 것은 국내에서는 거의 유일한 예라 할 수 있다. 특히, 조선 후기에서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한옥이 어떻게 변모되었는가를 밝힐 수 있는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사랑채
사랑채 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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