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17.jpg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靑松邑 청운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택.

 

이 집은 현 소유자의 2대조로 조선시대 고종 때 행장능참봉(行莊陵參奉)을 지낸 임춘섭(林春燮)이 매수하였다고 전해올 뿐 정확한 건축연대는 알 수 없다.

마을이 서쪽으로 올라간 경사지에 자리를 잡고 있어 100여 호나 되는 대부분의 주택들은 대체로 동쪽의 낮은 지역에 흐르는 용전천(龍纏川)을 내려다보며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집은 마을 서쪽 높은 곳에 위치하면서 대지 남쪽의 길을 향하여 남향 대문을 세웠다.

 

마당을 끼고 ㅁ자집이 배치되었는데 사랑방과 통래칸(通來間)이 남향하여 정면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ㅁ자형 평면에 사랑뒷방이 서쪽으로 한 칸 돌출하여 □형으로 되었다. 안채에서 독립하여 있는 행랑채는 3칸의 오른쪽 끝이 대문간이고 어간(御間 : 중앙간)이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으며 좌측은 온돌방이다.

 

대문간에서 바라본 긴 남쪽 정면에 설치된 통래칸을 들어서면 안마당에 이르고 좌측에 동향하여 전면이 개방된 안마루가 놓여 있다. 마루 좌측에는 사랑방이, 우측에는 뒷방과 큰 방이 대칭으로 배치되었고 앞채에 부엌·고방·외양간이 꾸며져 있다.

손바닥만한 안마당 위에는 지붕처마가 사방에서 돌출하여 하늘이 조그맣게 보인다. 만약 좁은 안마당을 지붕으로 다 덮어버렸다고 가정하면 현재의 평면구성은 강원도 남부지역에서 볼 수 있는 9칸 똬리집과 거의 흡사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객(來客)의 사랑방 출입은 앞마당에서 직접 사랑방으로 드나들게 하였고, 강원도 지방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통래칸에서 사랑방으로 드나들 수 있는 문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집은 원래 사랑방의 통래칸 쪽 반 칸이 쌀뒤주였다고 한다.

마루 상부의 가구(架構)는 삼량가(三樑架 : 보를 세 줄로 놓아 한 간 통으로 집을 짓는 방식)이지만 좀 특별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즉, 사랑방 벽과 큰방의 모서리에 세운 기둥 위에 마루를 가로질러 큰 부재를 보냈다.

 

그리고 그 위에 보를 걸쳐서 마당 쪽으로 외팔보처럼 돌출시키고 그 끝에 처마도리를 놓아 지붕을 구성하였다. 마루에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뒷벽에는 기둥 좌우에 외여닫이 널문을 한 1.2.짝씩 달았다. 안채는 기와집이나 행랑채는 초가집으로 두 건물 모두 몹시 퇴락한 상태로 남아 있다.

 

안채는 ㅁ자형 평면에 사랑뒷방이 서쪽으로 1칸 돌출하여 ㅁ형으로 되었다. 대문간에서 바라본 긴 남쪽 정면에 설치된 통래간(通來間)(중문간(中門間))을 들어서면 안마당에 이르고 좌측에 동향하여 전면이 개방된 안마루가 놓여 있다. 마루의 좌측에는 사랑방이, 우측에는 뒷방과 큰방이 대칭으로 배치되었고 앞채에 부엌, 고방, 외양간이 꾸며져 있다. 손바닥만한 안마당위에는 지붕 처마가 사방에서 돌출하여 하늘이 조그맣게 보인다. 만약 좁은 안마당을 지붕으로 다 덮어버렸다고 가정하면 현재의 평면구성은 강원도 남부지역에서 볼 수 있는 9칸 두리집과 거의 흡사하다. 다른점이 있다면 내객(來客)의 사랑방 출입은 앞마당에서 직접 사랑방으로 드나들게 하였고, 강원도 지방에서 볼 수 있는 바와같이 통래간(通來間)에서 사랑방으로 드나들 수 있는 문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집은 원래 사랑방의 통래간쪽 반간(半間)이 쌀 뒤주였다고 한다.

마루에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뒷벽에는 기둥 좌우에 외여닫이 널문을 한짝씩 달았다. 마루 상부의 가구(架構)는 삼량가(三樑架)이지만 좀 특별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즉 사랑방 벽과 큰방의 모서리에 세운 기둥 위에 마루를 가로질러 큰 부재를 보내고 그 위에 보를 걸쳐서 마당쪽으로 외팔보처럼 돌출시키고 그 끝에 처마도리를 놓아서 지붕을 구성하였다.

행랑채는 3칸의 우단(右端)이 대문간이고 어간(御間)이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으며 좌측은 온돌방이다. 안채와 더불어 몹시 퇴락한 상태이며 초가지붕이다.

본 주택의 평면구성은 ㅁ자형의 최소규모로서 청송지방(靑松地方)에서 볼 수 있는 ㅁ형의 배치방식을 수용하고 있으며 강원도 남부지방의 9칸 두리집과도 통하는 면을 보이고 있어 민가평면 연구의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또 마루 상부의 지붕틀 가구형식도 특이한 바가 있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