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채

경북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주택

 

조선 중기의 문신(文臣) 계서(溪西) 성이성(成以性)(1595∼1664)은 창녕인(昌寧人)으로 남원부사(南原 府使)를 지낸 부용당(芙蓉堂) 성안의(成安義)의 자제(子弟)이며 인조(仁祖) 5년(1627) 문과(文科)에 급제한 후 진주부사(晋州 府使) 등 6개 고을의 수령을 지냈고, 세차례나 어사(御使)로 등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생활과 마음이 아울러 검소하여 훗날에 부제학(副提學)을 추서(追敍)받았으며 청백리(淸白吏)로 이름이 높았다. 본 건물은 그가 광해군(光海君)5년(1613)에 건립하였다고 전하는데 사랑채 부분은 후대에 증개축(增改築)된 것으로 추측된다.

후방(後方)의 숲이 우거진 동산을 배경으로 건물을 남향으로 배치하였다.

솟을대문이 달린 행랑채는 논의 가장자리 평지에 세웠으나 몸채는 뒷동산의 경사진 산록에 올려놓아 우뚝하게 솟아 보이고 앞쪽의 논들을 부감(俯瞰)할 수 있으며, 우측으로 10여미터 떨어져서 일곽의 토담을 두르고 사당을 배치하였다.

안채 부분을 안마당에서 바라보면 정면 3칸 대청(大廳)의 좌우에 안방과 상방이 대칭적으로 놓여져 있고 이 안방과 상방의 뒤쪽에는 각각 반칸크기의 도장방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대청의 좌측칸 즉 안방 측칸의 뒤쪽에도 안방의 것과 같은 크기의 도장방이 설치되어 있고, 그 앞 마루의 기둥에 걸린 상방(上枋)에는 고미받이를 걸치고 고미혀를 끼웠던 흔적들이 남아 있으며, 기둥의 측면에는 가시새를 설치하여 벽을 쳤던 자국이 남아있다. 따라서 이 마루 1칸은 원래는 온돌방으로 안방과 연결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안방 부엌은 마당쪽으로 2칸통(間通)으로 길게 뻗어 중문간(中門間)이 있는 앞채와 직교(直交)하였으며 상방 앞의 부엌은 칸반(間半)을 내밀어 사랑채 부분과는 1m 가량 틈을 두었다.

안대청 상부는 오량가(五樑架)로 제형(梯形) 판대공(板臺工)을 세웠고 기둥은 방주(方柱)에 자연석 주초를 놓았다. 앞채의 중문간은 사랑채와 연접하였고 좌측에는 고방 2칸이 배치되었으며 좌단(左端)의 모방 1칸이 돌출되어 있다. 사랑채 부분은 전면 3칸, 측면 3칸의 9칸집으로 전면 3칸과 우측면 2칸에 ㄴ자형의 마루를 설치하고 기둥 바깥으로 헌함을 돌렸다. 마루의 뒤쪽에는 사랑방, 책방, 사랑웃방 등을 배치하여 구색을 갖추었으며 마루의 양측면은 널벽으로 꾸미고 각 칸에 널문을 달았다. 사랑채의 정면은 누다락같이 꾸몄는데 누하(樓下) 방주 사이는 잡석쌓기 위에 토벽을 쳐서 막았고 누상(樓上) 방주(方柱)의 머리에는 주두(柱頭)를 놓았으며 퇴보와 결구된 처마도리 밑에는 둔중(鈍重)한 모양의 첨차를 놓았다. 마루 상부 천장은 합각 밑에만 우물반자를 설치하였다.

이 집의 안채부분은 경북 북부지방 ㅁ자 민가의 고태(古態)를 간직하고 있으며 약간 변형은 되었으나 복원 가능한 상태로서 주택 발달사 연구의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안채 12.gif 안채(안채) : 중요민속자료  제171-1호

안채 부분을 안마당에서 바라보면 정면(正面) 3간(間) 대청(大廳)의 좌우(左右)에 안방과 상방이 대칭적으로 놓여져 있고 이 안방과 상방의 뒤쪽에는 각각 반간(半間)크기의 도장방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대청(大廳)의 좌측간(左側間) 즉 안방 측간(側間)의 뒤쪽에도 안방의 것과 같은 크기의 도장방이 설치되어 있고, 그 앞 마루의 기둥에 걸린 상방(上枋)에는 고미받이를 걸치고 고미혀를 끼웠던 흔적들이 남아 있으며, 기둥의 측면(側面)에는 가시새를 설치하여 벽을 쳤던 자국이 남아있다. 따라서 이 마루 1간(間)은 원래는 온돌방으로 안방과 연결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안방 부엌은 마당쪽으로 2간통(間通)으로 길게 뻗어 중문간(中門間)이 있는 앞채와 직교(直交)하였으며 상방 앞의 부엌은 간반(間半)을 내밀어 사랑채 부분(部分)과는 1m 가량 틈을 두었다.

안대청(大廳) 상부(上部)는 오량가(五樑架)로 제형(梯形) 판대공(板臺工)을 세웠고 기둥은 방주(方柱)에 자연석(自然石) 주초(柱礎)를 놓았다. 앞채의 중문간은 사랑채와 연접(連接)하였고 좌측(左側)에는 고방 2간(間)이 배치(配置)되었으며 좌단(左端)의 모방 1간(間)이 돌출되어 있다.

이 집의 안채부분은 경북(慶北) 북부지방(北部地方) ㅁ자(字) 민가(民家)의 고태(古態)를 간직하고 있으며 약간 변형은 되었으나 복원 가능(可能)한 상태(狀態)로서 주택(住宅) 발달사(發達史) 연구(硏究)의 좋은 자료(資料)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사랑채 12.gif 사랑채(사랑채) : 중요민속자료  제171-2호

사랑채 부분(部分)은 전면(前面) 3간(間), 측면(側面) 3간(間)의 9간(間)집으로 전면(前面) 3간(間)과 우측면(右側面) 2간(間)에 ㄴ자형(字形)의 마루를 설치하고 기둥 바깥으로 헌함을 돌렸다. 마루의 뒤쪽에는 사랑방, 책방, 사랑웃방 등을 배치하여 구색을 갖추었으며 마루의 양측면(兩側面)은 널벽으로 꾸미고 각(各) 간(間)에 널문을 달았다. 사랑채의 정면(正面)은 누(樓)다락같이 꾸몄는데 누하(樓下) 방주(方柱) 사이는 잡석쌓기 위에 토벽을 쳐서 막았고 누상(樓上) 방주(方柱)의 머리에는 주두(柱頭)를 놓았으며 퇴보와 결구된 처마도리 밑에는 둔중(鈍重)한 모양의 첨차를 놓았다. 마루 상부(上部) 천장은 합각 밑에만 우물반자를 설치하였다.  

 

사당 12.gif 사당(사당) : 중요민속자료  제171-3호

사당채는 안채 동북쪽에 따로 담장을 쌓아 배치 하였다. 앞면 3칸·옆면 1칸 반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