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중요민속자료 제16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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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전남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 476 |
소재지 | |
지정일 | 1984.01.10 |
수량/면적 | 일곽 |
시대 | 시대미상 |
소유자 | 위계환 |
관리자 | .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
장흥(長興) 위씨(魏氏) 동성부락(同姓部落)인 방촌마을 깊숙한 곳에 자리한 종가댁(宗家宅)이다. 바깥마당에는 연못이 조성되었고 연못 앞으로 실개울이 흘러서 집 동쪽을 휘감아 돈다. 집 뒤로 대나무 숲이 우거진 앞에 안채가 서남향하여 높직이 자리하고 안마당 맞은편으로 대문간을 배치했다. 안마당 서쪽에는 헛간채를 두고 마당 동쪽으로는 서재가 놓였다. 안채 동북쪽에는 여러단의 계단을 올라서서 사당채가 배치되었는데 나무들에 가려서 아래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안채에는「세좌정축(歲左丁丑) 삼월구일자시입주(三月九日子時立柱) 십일일사시상량(十一日巳時上樑) 」이라는 상량문(上樑文)이 있어서 1937년에 지었음을 알 수 있고 대문간에는 「단군(檀君) 사천삼백일사년 신유(辛酉)」라고 쓰였으므로 1981년에 건축되었다. 그러나 서재는 약간 손질을 했지만 고풍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18세기 건물로 추측되며 사당채도 19세기 말 정도의 건축으로 추정된다.
안채는 5칸겹집 앞좌우퇴집으로서 20세기 초의 전형적인 남도겹집 구성을 하고 있다. 간살이는 서쪽으로부터 앞칸에(앞퇴 포함하여) 부엌, 뒷칸에는(아래퇴 포함하여) 광을, 다음은 상하 2칸 크기의 안방을, 복판은 상하좌우 4칸의 대청을, 머리에는 앞칸에 작은방, 뒷칸에는 뒷방이 배열되었다. 앞방에서 머리 모퇴 까지의 앞퇴에는 툇마루가 시설되고 머릿퇴에는 앞쪽을 골방으로, 뒤쪽을 토방으로 만들어서 아궁이를 시설했다. 대청 앞문은 아랫칸을 두겹문으로, 웃칸은 분합문으로 만들었다.
구조는 대청복판만 1고주7량으로 하고 기타는 2고주7량으로 했는데 남도겹집형태의 특이한 것이다. 고주(高柱)는 2중으로 이어 올리는 바 전면 내진주와 뒷기둥을 평주로 하여 대들보를 걸치고 전면 내진주에는 머리에 바로 동자주를 세워서 중하도리를 받치는데, 처마도리의 끝을 동자주 머리에 맞추었다. 또한 중하도리에서 중상도리까지에도 홍예보를 걸치는 바 대들보와 더불어 보가 2중으로 가는 셈이다. 이것은 남도지방의 20세기 집들에서 흔히 쓰는 가구 방식이다.
도리는 납도리로서 면을 접고 장혀를 받쳤다. 처마도리에는 보 밑에 단이를 받치고 장혀 아래에도 짧은 겹장혀를 끼웠다. 대들보가 걸쳐지는 대청을 제외하고는 대들보가 중심기둥에서 맞춰졌다. 기둥머리에는 뒷보가 끼워지고 위에는 앞보가 얹어졌으며 여기에 가로로 뜬도리와 뜬장혀가 맞춰졌다. 다만 이것은 대청부분에서 끊어진다. 대공은 둥근 판대공이고 지붕은 합각이다. 네모기둥에 덤벙주초이며 자연석 바른층 쌓기의 높은 축대위에 세워졌다.
서재는 특이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단칸집인데 남쪽과 동쪽에 퇴를 둬서 안마당으로 부터 돌아 앉았으며 남쪽면에는 합각지붕을 만들었는데 북쪽면은 박공으로 처리했다. 살림집의 구조도 아니며 공부방으로 이용되는 당옥(堂屋)으로서도 격식을 갖추지 못했다. 간살이는 단칸 구들을 만들고 남 ·동쪽퇴에는 툇마루를 시설했다.(구들 서쪽으로는 처마밑을 이용하여 반침을 달아낸 바 증축년대가 오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 아래 아궁이가 만들어졌다.)
구조는 1고주5량으로 처리했는데 북측면 퇴부분에는 충량(소꼬리 보)을 썼다. 내진주는 평주로 만들어서 2중으로 그 위에 동자주를 세우고 중도리를 올리는 변형된 정자식(亭子式) 뼈대를 구성했다. 가공석 바른층쌓기 높은 축대 위에 커다란 덤벙주초를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다. 머리에는 장혀를 끼우고 납도리를 받쳤는데 그 모는 굴렸다.
사당 역시 단칸 전퇴집으로서 앞퇴에는 툇마루를 깔았다. 덤벙주초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주두 얹고 장혀 받친 굴도리를 올렸다. 장혀는 기둥머리에 맞춰진 첨차를 받치고 양쪽에 소로를 끼웠다. 출목은 없고 박공지붕인데 풍판아래 선이 3자 모양을 그려 특이하다. 전면문은 판장문(板仗門)인데 가운데에 솟을살 불발기를 넣은 것이 재미있다. 전체적으로 20세기 초에 건축된 것으로 추측된다.
서당(書堂) 동쪽에는 후원이 조성되었는데 향나무, 수국, 감나무등이 뒤안의 대나무숲과 어우러져 잘 정돈되어 심어졌다. 뒤안 가운데 축조된 안채 굴뚝은 벽을 기와로 쌓고 골기와를 얹어 전통적 정원 분위기를 자아낸다.
안채에는「세좌정축(歲左丁丑) 삼월구일자시입주(三月九日子時立柱) 십일일사시상량(十一日巳時上樑) 」이라는 상량문(上樑文)이 있어서 1937년에 지었음을 알 수 있고 대문간에는 「단군(檀君) 사천삼백일사년 신유(辛酉)」라고 쓰였으므로 1981년에 건축되었다. 그러나 서재는 약간 손질을 했지만 고풍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18세기 건물로 추측되며 사당채도 19세기 말 정도의 건축으로 추정된다.
안채는 5칸겹집 앞좌우퇴집으로서 20세기 초의 전형적인 남도겹집 구성을 하고 있다. 간살이는 서쪽으로부터 앞칸에(앞퇴 포함하여) 부엌, 뒷칸에는(아래퇴 포함하여) 광을, 다음은 상하 2칸 크기의 안방을, 복판은 상하좌우 4칸의 대청을, 머리에는 앞칸에 작은방, 뒷칸에는 뒷방이 배열되었다. 앞방에서 머리 모퇴 까지의 앞퇴에는 툇마루가 시설되고 머릿퇴에는 앞쪽을 골방으로, 뒤쪽을 토방으로 만들어서 아궁이를 시설했다. 대청 앞문은 아랫칸을 두겹문으로, 웃칸은 분합문으로 만들었다.
구조는 대청복판만 1고주7량으로 하고 기타는 2고주7량으로 했는데 남도겹집형태의 특이한 것이다. 고주(高柱)는 2중으로 이어 올리는 바 전면 내진주와 뒷기둥을 평주로 하여 대들보를 걸치고 전면 내진주에는 머리에 바로 동자주를 세워서 중하도리를 받치는데, 처마도리의 끝을 동자주 머리에 맞추었다. 또한 중하도리에서 중상도리까지에도 홍예보를 걸치는 바 대들보와 더불어 보가 2중으로 가는 셈이다. 이것은 남도지방의 20세기 집들에서 흔히 쓰는 가구 방식이다.
도리는 납도리로서 면을 접고 장혀를 받쳤다. 처마도리에는 보 밑에 단이를 받치고 장혀 아래에도 짧은 겹장혀를 끼웠다. 대들보가 걸쳐지는 대청을 제외하고는 대들보가 중심기둥에서 맞춰졌다. 기둥머리에는 뒷보가 끼워지고 위에는 앞보가 얹어졌으며 여기에 가로로 뜬도리와 뜬장혀가 맞춰졌다. 다만 이것은 대청부분에서 끊어진다. 대공은 둥근 판대공이고 지붕은 합각이다. 네모기둥에 덤벙주초이며 자연석 바른층 쌓기의 높은 축대위에 세워졌다.
서재는 특이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단칸집인데 남쪽과 동쪽에 퇴를 둬서 안마당으로 부터 돌아 앉았으며 남쪽면에는 합각지붕을 만들었는데 북쪽면은 박공으로 처리했다. 살림집의 구조도 아니며 공부방으로 이용되는 당옥(堂屋)으로서도 격식을 갖추지 못했다. 간살이는 단칸 구들을 만들고 남 ·동쪽퇴에는 툇마루를 시설했다.(구들 서쪽으로는 처마밑을 이용하여 반침을 달아낸 바 증축년대가 오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 아래 아궁이가 만들어졌다.)
구조는 1고주5량으로 처리했는데 북측면 퇴부분에는 충량(소꼬리 보)을 썼다. 내진주는 평주로 만들어서 2중으로 그 위에 동자주를 세우고 중도리를 올리는 변형된 정자식(亭子式) 뼈대를 구성했다. 가공석 바른층쌓기 높은 축대 위에 커다란 덤벙주초를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다. 머리에는 장혀를 끼우고 납도리를 받쳤는데 그 모는 굴렸다.
사당 역시 단칸 전퇴집으로서 앞퇴에는 툇마루를 깔았다. 덤벙주초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주두 얹고 장혀 받친 굴도리를 올렸다. 장혀는 기둥머리에 맞춰진 첨차를 받치고 양쪽에 소로를 끼웠다. 출목은 없고 박공지붕인데 풍판아래 선이 3자 모양을 그려 특이하다. 전면문은 판장문(板仗門)인데 가운데에 솟을살 불발기를 넣은 것이 재미있다. 전체적으로 20세기 초에 건축된 것으로 추측된다.
서당(書堂) 동쪽에는 후원이 조성되었는데 향나무, 수국, 감나무등이 뒤안의 대나무숲과 어우러져 잘 정돈되어 심어졌다. 뒤안 가운데 축조된 안채 굴뚝은 벽을 기와로 쌓고 골기와를 얹어 전통적 정원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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