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9.jpg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월곡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주택. 중요민속자료 제154호. 19세기 중엽에 지은 집이라 하며 원래 서쪽의 양씨댁과 한집이어서 내외당의 관계였다고 한다.
 
원래는 서쪽의 양재국씨 가옥과 한집으로서 안채와 사랑채 관계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두 집을 합해도 양반가옥의 공간짜임새는 잃고 있다. 아마도 자유분방한 토호(土豪)의 주택이었는데 중간에 집이 나뉘면서 부속건물들이 헐리고 새로 지어지면서 지금과 같이 엉성하게 되었으리라 추측된다.

건물의 배치는 나란히 축으로 구성해서 안채인 양승수(梁承壽)씨 댁은 조금 비탈진 대지의 2단 높은 축대 위에 거의 서향하여 자리했다. 이 앞에 조금 북쪽으로 축을 이동하여 대문채를 배치해서 직선축으로 진입토록 유도한다. 사랑채였던 양재국씨 댁은 안채보다 약간 높은 위치에 향을 조금 남쪽으로 틀어서 배치하였다. 이것 역시 마당보다는 많이 높기 때문에 2단 축대로 처리했다.

이 집의 대문은 별도로 두었는데 직각축을 써서 마당모퉁이 왼쪽 면에 남향하여 자리했다. 집 앞의 행길이 담장을 끼고 지나고 사랑대문 앞에서 샛길이 갈라져 들어가므로 이 샛길을 이용해 동선처리를 한 것이다.

안채는 一자형 평면인데 양쪽날개를 맞걸이로 하고 몸채는 전후퇴집으로 해서 아예 구조체 자체를 구분했다. 보통 중부지방에서의 날개는 몸채에서 내미는게 상식인데 여기서는 날개를 몸채에 붙인 형상이다. 간살이는 왼쪽날개는 3칸반, 오른쪽 날개는 3칸이며 몸채는 4칸이다(구들의 칸은 조금 적고 앞의 사잇기둥이 생략됨). 간살이는 남도방식으로서 오른날개에 2칸부엌과 뒤로 부엌방을 둔다. 다음 복판 2칸이 큰방이며 뒷퇴는 각 칸으로 나뉘어 골방이 된다.

앞퇴에는 툇마루가 시설되었다. 몸채 끝 2칸은 앞뒤퇴를 터서 커다란 대청을 만들고 왼쪽 날개에는 뒤 2칸을 갓대청으로 하고 앞은 구들로 만들었는데 앞쪽에 조그만 굴묵 공간을 두었다. 대청 앞과 툇마루 앞에는 약간 낮게 또다른 구조들로서 쪽마루를 시설했다.

몸채의 구조는 긴보5량이고 날개채는 맞걸이3량인데 날개채 종도리를 종보로 삼아 몸채의 중도리와 종도리가 걸쳐졌다. 다만 서로의 구조를 구분하는 것은 기둥과 처마도리까지이다. 기둥은 모두 네모기둥이며 덤벙주초로 받쳤다. 머리에는 장혀를 끼우고 모접이한 납도리를 올렸는데 대들보가 긴보로 크기 때문에 장혀 밑까지 맞추고 아래에 단이를 받쳤다. 보의 단면은 얼추 양변치기를 한 달걀꼴이고 대공은 사다리꼴 판대공인데 2개의 부재가 이어졌다. 댓돌은 낮은 자연석으로 경계하고 보다 앞에 조금 높은 축대를 이중으로 쌓았다. 지붕은 날개채 전후면은 박공으로 하고 몸채도 양쪽은 날개 용마루에 지붕을 올려 합각을 만들었는데 오른쪽 날개 전면은 바깥지붕만을 두어서 눈썹지붕으로 처리하고 큰방 앞에서 지붕이 기울어져 회첨골이 생기는 것을 피했다.

대문간은 맞걸이 6칸, 우진각지붕집이다. 20세기 중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양재국씨 댁(사랑채)은 왼쪽 날개가 없는 十자 모양집인데 안채보다 훨씬 규모있게 지었을 뿐 평면구성, 구조기법 등이 양승수씨 댁과 유사하다. 간살이는 역시 남도방식으로서 대청의 규모가 적어지면서 한쪽으로 갔다. 몸채 왼쪽 1칸은 전후퇴를 터서 대청으로 하고, 다음 복판 2칸은 사랑방이다. 사랑방 앞퇴는 툇마루이며 뒷퇴는 골방인데 좌우칸이 나뉘어??다. 오른쪽 날개는 앞 2칸은 부엌, 뒤에는 뒷방으로 사용한다.

구조는 2고주5량이며 장혀받치고 납도리를 올렸는데 다만 몸채 중 ·종도리는 굴도리로 만들었다. 기둥은 몸채 전후면만 두리기둥이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이다. 대청 상부의 구조는 가운데 측면기둥에서 우미량을 대들보 위에 올리고 그 위에 중도리의 외기를 걸쳐서 그 사이를 우물반자로 마무리 짓는 권위건축(權威建築)의 기법을 쓰고 있다. 지붕은 몸채를 합각으로 처리하고 날개채는 앞뒤를 박공으로 하는데 박공을 많이 내밀어서 처마도리를 굽은 덧기둥으로 받치고 있다.

집 주위에는 꽤 많은 정원수들이 심어졌으나 인상적인 것은 없고다만 양재국씨 댁 앞 축대와 진입로로서의 자연석을 깐 경사로는 정돈된 조원기법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