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04_21.jpg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풍산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주택

남양 홍씨의 동성부락(同姓部落)인 도래마을의 종가(宗家)로서 마을 안 깊숙한 곳에 자리했다. 건물은 서향(西向)하여 직선축으로 배치되며 종선축의 깊숙한 곳에 一자형 안채가 가로로 놓이고 안마당을 사이해서 ㄱ자형 사랑채가 배치되었는데 축은 맞추되 향은 직각으로 틀어서 남향하였다. 사랑채 앞은 담장을 둘러 구획하고 一자형 솟을대문간을 두었다. 안마당 북쪽에는 헛간채를 두었으며 사당은 안채 남쪽에 안채와 나란히 배치하고 담장을 둘러 구획했다. 사랑채 역시 따로 담장을 쳐서 공간을 구획하며 행랑마당으로 조그만 일각대문(一角大門)을 구축해서 동선을 연결했다. 그러나 사랑채 뒤는 안마당에 바로 면한다. 담장은 대문채에서부터 안채 뒤까지 크게 막아서 경계를 삼되 행랑마당에서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간도 일각대문으로 만들20090604_22.jpg 어서 사랑 남쪽담장을 끼고 멀리 돌아 안채로 이르도록 하였다. 그러나 중대문은 세로축에 직각으로 배치되어 ㄷ자로 안채에 꺾여 진입한다.

안채 상량문(上樑文)에「임진(壬辰) 삼월 초칠일」이라는 기록이 보이므로 안채, 사랑채는 모두 이 때 건축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사당과 대문채는 이보다 약간 연대가 떨어진 1900년 전후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남도 양반주택의 공간구성을 볼 수 있는 대표적 예이다.

안채는 一자형 6간전후 머릿퇴집으로서 간살이는 남도방식인데 왼쪽 5간은 뒤로 반간을 이어내고 또다시 가운데 4간은 반간을 덧달아낸 뼈대를 하고 있다. 평면의 구성은 왼쪽으로부터 앞간에 부엌방, 뒷간에는 광, 다음은 상하 2간을 부엌으로, 다음20090604_23.jpg 부터는 전퇴를 제외하고서 큰방, 가운데 간은 앞에 대청, 뒷간은 안대청이 된다. 다음간은 앞뒤가 대청이므로 ㄱ자 모양으로 바깥대청이 마련되는 셈이다. 맨 끝간은 복판이 작은방이며 뒷퇴는 아궁이가 시설된 작은부엌이다. 큰방 앞에서부터 머릿퇴까지는 모두 툇마루가 놓였다. 덧달은 뒷퇴는 큰방과 안대청 뒤에 툇마루를 깔고 부엌 뒤는 봉당, 대청 뒤는 골방으로 이용했다. 안대청은 뒷벽이 없이 개방되었지만 바깥대청은 전면에 창호시설을 했다. 바깥대청과 안대청 사이는 벽으로 구획해서 그것의 이용을 달리하였다.

구조는 2고주5량으로서 전면과 머리면만은 두리기둥을 쓰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이다. 주초는 덤벙주초이고 댓돌은 막돌 허튼층 쌓기로서 두벌대 높이이다. 갓보는 활꼴로서 고주머리에 끼워지며 중도리는 측면에서 우미량으로 처마도리에 걸쳐지고 그 굽은 곱추등에 외기를 얹어서 뼈대를 구축했다. 서까래는 말굽방식이고 지붕은 합각이다.

사랑채는 6간 ㄱ자형 전후머릿퇴집이다. 평면의 구성은 남쪽에서 볼 때 서(문)쪽에 누마루를 시설하고 다음은 위 ·아래사랑방인데 뒷퇴에는 각각 골방이 마련되었고 구석간으로서 부엌, 꺾어져서 사랑대청, 맨 끝이 작은사랑이며 대청과 작은방 뒷퇴는 역시 골방이 되었다. 누마루에서 작은사랑 앞까지의 앞퇴에는 툇마루가 깔렸다. 누마루는 다락은 아니고 여름용 정자마루이며 접객용 공간이다. 머리쪽에 쪽마루가 놓이고 사랑 웃방과의 사이는 4짝분합문(分閤門), 전면과는 6짝분합문이 시설되었다. 사랑대청은 전면으로 개방되었고 누마루는 사면이 구획되었다. 작은사랑 아래에도 쪽마루가 만들어졌다.

구조는 2고주5량으로서 전면과 머리쪽만 두리기둥으로 쓰며 나머지는 네모기둥이다. 초석은 대강 다듬은 둥근주초이고 댓돌은 막돌 허튼층쌓기 한 연후에 장대석 갑석을 올려 마감했다. 높이는 대략 세벌대 정도이고 지붕은 합각(이다.

사당(祠堂)은 3간전퇴집으로서 익공집이다. 단청은 없고 간이(簡易)한 초각(草刻)을 했다. 지붕은 박공이다. 대문간은 6간집으로서 중간에 솟을대문을 설치하고 양쪽은 모임지붕으로 마감했다. 구조는 3평주5량의 겹집구조이고 네모기둥에 장혀를 받친 납도리를 올렸다. 댓돌은 낮게 처리하고 덤벙주초를 썼다.

정원시설은 좁긴 하지만 사랑(채)마당에 신경을 썼다. 남쪽 담장 곁으로 축대를 돌리고 그 위에 화단(花壇)을 조성했다. 여기에는 괴석(槐石)을 세워두기도 하고 매화, 석류, 자목련, 백일홍 등 우리 조경에서 많이 쓰이는 수종을 심어서 분위기를 돋운다. 사랑기단 곁에도 역시 축대를 돌리고 파초, 감, 비자, 모과나무 등을 심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무들이 너무 자라서 오히려 답답할 지경이다. 한편 사랑대문을 한 발 안으로 들여 만들므로서 행랑마당의 답답함을 해소할 뿐 아니라 사랑으로 객인을 유도하도록 계획했다. 여기 꺾어진 담장에는 숫기와를 사용해서 구멍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사랑마루에서 대문에 들어서는 사람을 알아 볼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