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일 보조국사의 감로탑은 송광사 설법전 우측 현 관음전 뒤뜰 언덕에 있다. 보조국사는 고려시대 송광사 16국사중 제1세이며 또한 정혜결사를 일으킨 주인공이다. 당시 고려후기의 불교계에 새로운 정신개혁 운동을 전개한 선봉자로서 한 시대의 부패한 현실을 정의롭게 이끌고자 했던 종교지도자였다. 국사는 세수 53세, 1210년(희종 6) 음력 3월 17일 열반하였다. 그 해(1210년) 희종이 ‘불일 보조국사(佛日 普照國師)’란 시호와 ‘감로탑(甘露塔)’이란 탑호를 내렸으나 바로 탑비와 탑이 세워지지 않고 3년 뒤인 1213년(강종 2) 음력 4월 10일에 현 설법전 뒷편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감로탑의 외형을 보면 통일신라시대의 정형화된 팔각원당의 변형임을 알 수 있다. 기단부는 맨 하단에 2단의 정사각형 대좌를 안치하고 그 위로 네 귀퉁이에 각을 이룬 호형의 대좌를 삽입하였는데, 이같은 형식은 매우 특이한 것이라 하겠다. 또 맨 밑의 2단 정사각형의 대좌는 상단으로 연결된 석질과 다른 점으로 보아 1926년 이 탑을 해체복원하면서 새로 끼워 넣은 것으로 보인다. 그 위로 다시 정사각형의 하대석이 연결되는데, 한 돌로 이어진 윗면에는 희미하게 장식된 2단의 복련석이 탑신을 받고 있다. 탑신은 8각의 옥개석이 이어지고 그 위로는 상륜부가 솟아 있다.
이 감로탑은 그동안 여섯 번이나 옮겨졌다고 하며 현 위치가 원래 세웠던 자리인데 1213년에 세운 보조국사비문, 조계산 산내탑비소재총람도, 1886년의 송광사건물배치지도, 1950년의 송광사전경도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감로탑은 덧붙여진 기단부 하단의 일부 지대석(3단)을 제외하면 모두 원형을 고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만 이 부도에서 특이한 것은 옥개석의 급격한 전각과 처마의 귀솟음, 그리고 원구형을 이루고 있는 탑신의 양식은 고려시대말의 양식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
고려시대 부도에서 탑신이 원구형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1세기초 홍법국사실상탑(1017년)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그 뒤 고려말의 경기 회암사지 나옹선사부도 및 지공선사부도, 충북 영진국사부도, 강진 백련사 원묘국사 중진탑이라 전해지는 원구형 부도 등 상당수가 있다.
송광사 보조국사 감로탑은 1213년에 설법전 뒤에 세워진 이래 송광사 경내에서 몇 차례 이동이 있었으나 현재는 원래 위치에 있다. 그리고 이동과정에서 기단부 일부만 덧붙여졌을 뿐 별다른 변화 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고려시대 불교결사운동의 선구자적 위치에 있는 보조국사 지눌의 역사적 위상이나 고려시대 사리탑으로서의 학술성 등으로 보아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