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59.jpg 낙안성 남문을 통해 들어간 남내리의 길가에 위치한 초가집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안마당이고, 마당 깊숙한 곳에 안채가 동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안채의 앞쪽으로는 헛간채가 있고 서남쪽의 담 모서리에 화장실이 있다.

 

평면구성이 아주 독특하다. 봉당집의 원초형을 보이는 그런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죽담은 지표에서 제법 높고 반듯반듯한 석재를 써서 정리된 맛을 풍긴다. 그 왼쪽 끝에 부엌이 있다. 서측·후면벽을 맞담으로 쌓았을 뿐 전면은 완전히 개방되어 있다. 둥구리의 살기둥이 중간에 서있을 뿐이다. 부엌은 이어 큰방과 작은방이 1간씩 계속되고 있다. 토담집 특유의 질박한 외모이고 문이 열려 출입하게 되어 있으며 앞퇴가 있다. 앞퇴는 토상(土床)이다. 거기에 뜰마루 형상의 마루가 설치되었는데 큰방의 것과 작은 방의 것 두 개로 만들어졌다. 큰방의 것은 가운데 기둥을 지나서까지 계속되는데 작은방의 것은 그 나머지의 빈자리에 놓여있게 되었다.

평주(平柱)와 고주(高柱)의 연계에서 퇴보는 우미량처럼 휘어오른 나무를 골라다 사용하였다. 낙안성내의 집들 대부분이 이런 퇴보를 사용하는 지역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 이집도 그런 특성을 잘 준수하고 있는데 천연으로 휘어진 알맞은 재목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 보인다. 아니면 척박한 토질에서 그런 다박솔들이 많아서 휘어진 나무의 취택이 비교적 용이하였을 것이다. 평주의 도리는 납도리형이다. 운두가 낮고 폭이 넓은 부재인데 보머리에서 좌우의 도리가 이음되고 있다. 이 이음법이 아주 원초적이다. 이른바 상투걸이 집에서 두 도리를 엇이음 하는 방식이나 진배 없다. 이런 우미량과 도리의 이음등은 학술적인 가치가 있다.

가구(架構)는 삼량가(三樑架)이어서 고주(高柱)에서는 서까래가 토담과 접합되어 있다. 원래 더그매 되었던 것이었으리라 짐작되나 지금은 막아서 가려져 있다. 서까래는 비교적 굵은 송목(松木)을 걸었다. 작은방 다음에는 넓은 허간(虛間)이 1간 계속되었다. 이 부분은 후대에 첨가된 것으로 원래엔 없었던 것이다. 부엌의 바깥담 밖으로 잘 정돈된 장독대가 있고, 장독대에 이어 닭장과 돼지우리가 시설되어 있다. 마을의 다른 집에서처럼 이집의 부엌에도 조왕신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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