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만만하게 보는 것 같을 때
“직장에서 부하직원이 저한테 짜증을 냈습니다.
웬만하면 참는 편인데
어디까지 이해해야 할까요?”
이해의 범위는 정해진 게 없습니다.
본인의 선택이에요.
100퍼센트 이해 안 하면 100퍼센트 괴롭고
50퍼센트 이해하면 50퍼센트 괴롭고
100퍼센트 이해하면 하나도 괴롭지 않습니다.
그 부하직원은 선배나 상관이라고 해도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하는 사람이에요.
구세대의 시선으로는
저항하는 태도가 싫을 수 있습니다.
관습대로 따지면 기분이 나쁩니다.
그렇지만 신세대니 그럴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괴로움이 없어져요.
어디까지 이해하고 그런 건 없습니다.
이해하는 만큼 내 마음이 편해질 뿐 입니다
이제 어떤 선택을 하시겠어요?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
여러분들은 늘
‘무엇 때문에’괴롭다고 합니다.
여름에는 더워서,
겨울에는 추워서,
봄에는 꽃가루가 날려서,
가을에는 낙엽으로 길이 지저분해서,
날씨부터 온갖 것을 다 탓하며 삽니다.
관점을 탁 바꿔서
여름에는 수영을 할 수 있어서 좋고,
겨울에는 스키를 탈 수 있어서 좋고,
봄에는 꽃구경해서 좋고,
가을에는 단풍구경 해서 좋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날씨에 따라 내 마음이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에 긍정적으로 대응한다면
훨씬 더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즐거움은 곧 괴로움
즐거운 만큼 괴로움이 따라옵니다.
즐거움 속에 괴로움이 함께 있어요.
삶 자체가 괴로움입니다.
배고플 때는 종류에 관계없이
배만 불렀으면 합니다.
그런데 충분히 먹을 게 주어지면
맛있는 것을 찾게 됩니다.
맛있는 것만 찾을까요?
영양이 풍부한지, 예쁜 그릇에 담았는지
점점 욕구가 늘어납니다.
욕구를 따라가서는
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 없어요.
욕구를 따르는 것은 욕구를 수용하는 것이고,
욕구를 참는 것은 욕구를 반대하는 것 같지만,
둘 다 욕구의 노예입니다.
욕구의 노예가 되지 않는 방법은
욕구에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욕구를 알아차릴 뿐입니다.
이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저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똑바로 가는 겁니다.
이것이 붓다가 발견한‘중도’의 길입니다.
= 법륜 스님 글 중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