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하나하나님의 이름 5 -10 . 엘 올람 / 하나님은 영원 / 영생하시다. 님의 이름

문성식 2021. 3. 17. 23:03


 

 

      하나님의 이름

 


5. 엘 올람 / 하나님은 영원 / 영생하시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창 21:33) 

엘 올람은 시작과 끝이 없는 하나님,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을 뜻하는 히브리 이름이다. 엘 올람 하나님의 계획은 중간에 바뀌는 법이 없으며 영원토록 굳건히 서고, 그 계획은 나의 장래에 풍성한 소망을 주기 위한 것이다. 영원하신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은 알파와 오메가이신 아들의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분은 영원토록 변함없는 사랑을 소유한 분이시다.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창 21:32-33)


6. 엘 칸나 /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출 34:14)

하나님은 그분의 거룩함에 반하는 것은 모조리 제거하시는 소멸하는 불이시다. 그분은 또한 질투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완전하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마음을 다해 반응하기를 요구하신다.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면 그분의 자비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며,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높여지기를 열망하는 열정을 갖게 된다. 이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나와 교회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이해하고, 또한 주님 그분의 이름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려는 주님의 열망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간구하라. 

“너희는 스스로 삼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을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금하신 어떤 형상의 우상도 조각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신 4:23-24) '


7.엘 벧엘 / 벧엘의 하나님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창 35:7)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창 35:1-7)


8. 엘 차이 /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이 호칭은 주변 국가의 거짓 신들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구분시켜 준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나무나 돌 우상들과 달리, 살아계신 하나님은 땅과 하늘을 지으신 창조자시다. 그분만이 생명의 근원이시다. 그분이 살아 계시므로 우리가 생존한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금장색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렘 10:14)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왕하 19:15-16)

 

9. 엘 엘로헤 이스라엘 /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창 33:18-20)

 

10. 아도나이(Adonai) / 주인이신 하나님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출 23:17) 

하나님의 주 되심은 하나님께서 나를 전적으로 소유하시는 것과 구주이시고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내가 전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인 아도나이(Adonai)가 성경에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주의하여 보십시오. 그러면 ‘주여 주여’라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 즉 아도나이(Adonai)는 창세기 15:2절에서 최초로 쓰였습니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창 15:2) 

아브라함은 많은 하인을 거느렸기 때문에 주종관계에 대하여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한 명이 엘리에셀입니다. 아브라함의 시대에는 종의 운명이 비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노예나 종은 고용된 하인보다 훨씬 살기에 편했는데 그 이유는 주인이 그를 전적으로 돌보아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종의 필요를 공급해 주고 보호해주며 심지어는 매일의 일과를 지시해 주는 것도 주인이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히브리의 종들은 가족의 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았고 따라서 할례를 받은 후에는 유월절 예식에 참여할 권리도 있었습니다.(출 12:43-44) 비록 이방인일지라도 할례를 받으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창 17:10-14) 

다음에 열거된 성경 구절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면 우리에게 어떤 유익과 책임이 있습니까? 그것을 각 구절 아래에 써 보십시오.(예를 들어서, 창세기 15:1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그의 주인으로 모셨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 하면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방패 같은 역할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또한 종에게 상을 줍니다. 다음의 시편 123:2절을 읽어 보십시오. 우리는 우리 주인에게 눈을 고정시켜야만 합니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시 123:2)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들을 붙드시며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는도다 모든 사람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나이다”(시 145:14-16) 

“나는 주의 종이오니 나를 깨닫게 하사 주의 증거들을 알게 하소서”(시 119:125) 

이제는 다음의 성경 구절을 읽고 하나님이 ‘주’(Adonai)로 표현되어 있는 곳에 표시해 보십시오. 그리고 주이신 하나님께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 것인지를 써 보십시오. 

“여호와께 간구하여 이르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위엄으로 속량하시고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을 멸하지 마옵소서”(신 9:26)

 

“땅이여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시 114:7)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께서는 위대하시며 우리 주는 모든 신들보다 위대하시도다”(시 135:5)

 

“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36:3)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주인 되셔서 지배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주’라고 부르면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명령한 일을 하지 않고도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 아도니이(Adonai)를 공부하는 동안 이 질문들을 계속해서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과 하나이시며(요 10:30-33), 하나님으로서 아돈(Adon), 주(Lord)이십니다. 신약 성경에서 두 가지의 단어가 주(Lord)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퀴리오스’(kurios)로서 최상의 권위, 지배자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장 흔히 쓰인 단어입니다. 다른 하나는 ‘테스포테스’(daspotes)로서 이것은 절대 군주를 의미합니다. 마치 전제군주 같은 것입니다. 그것도 또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쓰였습니다. 예수님은 주로서 최고의 권위를 지니셨고 절대적인 통치자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다름의 성경 구절을 주의 깊게 읽어 보십시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1-27)

 

1. 이 구절에 따르면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까?

2. 이것은 아도나이이신 예수님과 어떠한 관계가 있습니까?

3. 예수님이 자기의 삶을 지배하시는 주가 되심을 부인하는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4.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의 아도나이입니까?

5. 여러분은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하나님은 주님 / 주인이시다.

 

아도나이는 “주님”이란 뜻의 히브리어로, 하나님은 주시요, 우리는 그분의 종이라는 관계적인 의미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300번 이상 나온다. 아도나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그분 앞에 나의 삶의 모든 면을 내어 놓겠다고 말씀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긴급히 실행하는 종이 될 수 있게 은혜를 주시도록 기도하라. 주님이야말로 내 삶에 주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유일한 분임을 기억하라. 사실상 내 삶에 주어진 진정한 목적을 깨닫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해야 한다. 신약 성경은 예수님을 주인이자 종으로 묘사한다. 종으로 행하신 예수님이 나와 아도나이의 관계를 모범으로 보이셨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시 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