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흥미를 잃어가는지에 대해
사실 아내는 더 자주 섹스를 하길 원한다. 37세의 로스 안젤리노(가명)는 자신의 성욕이 이렇게 많이 감퇴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어떻게 하면 낯선 여성의 침실로 돌진할 수 있을지 궁리했어요.” 그는 말한다. “정말 성욕이 강했어요. 여자를 만나 흥청망청 돈을 쓰며 바보 같은 일들을 벌였죠. 아무리 바보 같은 여자라도 그녀의 상의를 벗길 수만 있다면 몇 시간이고 대화를 나누었어요.” 하지만 그는 현재와 과거의 자신을 개의 일생과 비교한다. “독신이고 어릴 때는 항상 떼 지어서 몰려다니는 개와 같아요. 일단 관계가 형성되면 당신은 이제 누군가의 집에 있는 한 마리의 개가 됩니다. 원하는 거라곤 누워서 주인이 주는 먹이를 먹으며 누군가가 자신의 배를 어루만져 주는 거죠. 나는 점점 뒤로 물러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내를 몽둥이로 구타하는 남성들만큼이나 앤드루가 이상하고 유별난 사람 같다고 느낄지 몰라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행복하고 헌신적인 관계 속의 수많은 남성들이 섹스에 대한 욕구를 잃어간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은 더 이상 빈번한 섹스를 갈구하지 않는다. 이 점 때문에 많은 남성들에게 성격적인 위기가 초래된다.?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언제부터 노인처럼 지루하고 단순한 사람이 되었지? 여기 31세의 뉴요커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를 제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그는 “현재 얼마나 많이 섹스를 하느냐가 남성성을 상징한다는 것은 아주 원시적인 수준의 생각”이라고 지적한다. 비아그라의 최근 캠페인인 ‘그가 돌아오다(He’s Back)’를 살펴보면 완전히 분출되는 성욕이 없다는 것은 솔직하게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어떤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확실히 여자한테 휘둘리는(여자친구와 쇼핑도 하고) 스타일의 남자를 여자한테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요점은 이렇다. 예전의 당신(섹스가 부족했다고 생각했던)이 현재의 당신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다. (FDA는 11월에 비아그라 회사 광고를 중단하도록 했다. 해로운 부작용을 언급하지 않았을뿐더러 약이 발기불능 대신 성욕저하를 치료해준다고 제시했기 때문이다)
제이는 여자친구 수잔과 4년간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는데 요즘처럼 맥이 빠지고 지루한 적이 없었다. “데이트 초기에는 하룻밤에 2번도 섹스를 했어요. 새벽 4시까지 깨어 있었고요. 계속해서 그래 왔어요.” 만난 지 6개월 만에 동거를 시작했고 매일 섹스를 하던 것이 이틀에 한 번, 그리고 한 주에 몇 번으로 줄었다. 일주일간의 여행 동안에는 단 한 번 했을 뿐이다. 수잔은 자신이 오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로우퍼 부인처럼 느끼고 있다. “그 여행이 끝난 뒤 크게 싸웠어요. 그 정도로 심하게 싸운 건 처음이었어요.”라며 제이는 그 때를 회상한다. “그녀가 ‘이렇게’ 될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고 말했을 때 난 충격을 받았어요. 무엇보다도 내 생각엔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게 그다지 나쁜 건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수잔은 점점 더 횟수가 적어진다고 느꼈습니다. 수잔은 자신이 매력이 없어져서 내가 흥미를 잃었다고 느끼기 시작했어요. 절대 그렇지 않은데 말이에요.”
미시간 대학의 섹스 치료사 샐리 폴리는 이태리의 한 연구결과를 인용해서 말해준다. 강박 성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두뇌 화학작용이 사랑에 빠진 지 6개월이 채 안된 사람의 두뇌 화학작용과 유사하다는 점이 발견되었다. 그들에게 섹스는 강박관념과 같았다. 하지만 장기간 헌신적인 관계를 유지한 사람들의 연구대상 그룹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말할 것도 없이 연구대상 그룹의 사람들은 다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스>의 낱말 퍼즐 또는 조용히 빨래 개기 등과 같은 일에 말이다.
남성들은 항상 섹스를 원하지 않는 것이 완벽하게 공통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모를 수도 있다. 그들은 더 이상 다른 사람들과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횟수를 가지고 남성성을 이야기한다면 그건 작은 페니스를 으스대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제이는 이야기한다. 예전에 좋긴 했지만 의미 없는 섹스에 대해서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던 것에 비해 헌신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남성들은 현재 자신들의 섹스 생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어떤 시점이 지나고 난 후에는 무엇이 정상인지에 대한 지표가 사라집니다. 싱글일 때 섹스에 대해 정복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던 것과는 방식이 다르지요.”
따라서 일주일에 두 번 섹스를 하는 것이 여전히 과시할 만큼 훌륭한 수치라고 확신할 방법은 없다. 듀렉스(Durex)가 실시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평균적으로 일년에 111번 섹스를 한다. 이는 하룻밤에 두 번보다는 일주일에 두 번에 더 가까운 수치이다. 버몬트주 벌링턴에 사는 35세의 아사는 예전에 부자인 삼촌과 대화를 하는 도중 섹스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얻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이런 식으로 말했어요. ‘내 인생은 멋져. 돈? 충분해. 섹스? 충분히 했어. 더 이상은 필요가 없구나.’ 그런 말을 하는 그는 아주 평화로워 보였어요.”라고 그는 말한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말이었다. 다른 사람에게서 섹스가 충분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것은 말이다. 자신의 아이가 생기고 나서 일주일에 한 번만 섹스를 한다고 그가 존재의 위기를 느껴야 한다는 건 부당한 일이었다.
“다른 어떤 것도 섹스에 대한 내 관심을 영구적으로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취업 문제 빼고요.” 버팔로의 32세 변호사 크리스는 말한다. “일은 정신과 육체 모두를 소모시킵니다. 그 외의 것에 쏟을 힘이 없죠. 대학과 로스쿨에 다닐 때 섹스는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일이 주는 스트레스에는 효과가 없어요.” 앤드루가 섹스를 할 만큼 충분히 의욕이 생겨 섹스를 마치고 나면 2~3초 후 다시 모든 걱정거리들이 대두된다. 청구서, 일, 탈모 등.
아드레날린이 제이의 조심스런 관계에 연료역할을 한다면 ‘섹스를 하며 새벽 3시까지 깨어 있은 후에도 직장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욕저하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이 결국 그를 따라잡았다. “그런 상태는 유지될 수 없어요. 지금 나는 퇴근 후에 편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어요. 집에 와서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팬티를 벗을 수는 없거든요.” 그는 말한다. “섹스를 할 때는 좋아요. 하지만 엄청난 압력이 거기에 존재합니다. 어색하고 별 매력 없는 무언가를 시작하게 하거든요.” 그는 부모님의 관계를 결코 재현하고 싶지 않다. “아버지는 결혼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울 만큼 일을 하셨어요. 부모님은 이혼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 친밀하지 않다는 건 명백합니다.” 하지만 그는 어떤지.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아주 탈진한 상태다.
어떤 헌신적인 관계가 계속 진행되고 있을 때 다른 우선순위가 당신의 삶에 끼어 들어오면 섹스가 반드시 해야 할 목록을 적어 놓은 리스트에서 몇 계단 하락한다. 이는 논리적인 일이다. 제이는 그와 수잔이 함께 산 이후 “다른 것들이 다시 내 삶 속에 돌아와서 좋다.”고 말한다. 섹스는 그 비중이 점차 줄어들었다. 그에게 이런 변화는 새롭고 색다르며 중요한 친밀함을 표출해주었다. 매일매일 직면하는 작은 변화를 함께 공유하는 것.
아마도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라는 식의 생각이 유행하던 시대 그녀는 그의 생각을 미래에 대한 더 심도 깊은 발언으로 예민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폴리는 몇몇 남성들에게 있어 관계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무의식적으로 섹스에 대한 흥미 상실로 표현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랑에 빠지고, 모든 것이 훌륭하죠. 친구들은 모두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결혼하기를 원하지 않아요.” 그녀는 말한다. “그래서 서서히 혹은 갑자기 섹스를 줄여 관계가 더 이상 진전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확실히 표현하는 것이죠.”
더 많은 남성들이 왜 섹스에 흥미를 잃어 가는지 설명해주는 또 다른 솔직담백한 이유가 여기 있다. 많은 남성들이 성욕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항우울제를 복용하기 때문이라고 폴리는 말한다. 그런 약들이 오르가슴을 지연시킬 수 있기 때문에 남성들은 섹스를 하면서 좌절감을 맛본다. 결과적으로 시도조차 귀찮게 느껴질 수 있다. 섹스에 대한 흥미를 상실한 많은 남성들이 자동적으로 자위행위를 덜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직관적으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이야기지만, 남성들이 자위행위를 섹스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섹스 또는 자위행위에 대한 욕구가 완전히 결핍되었다면 뇌하수체 이상이 의심되므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야 한다.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 만큼 매우 정당한 사유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휴가를 가서 매일 밤 섹스를 하지 않았나? 직장 스트레스 또는 비동시적인 스케줄 등의 이유 없이 몇 주를 그냥 보냈는가? 이런 상황에 놀라지 않아도 된다. 아사는 그의 아내와 데이트 초기를 돌이켜 생각한다. ‘그래, 아주 잘했어.’ 하지만 최근에 이르러서 그는 말한다. “섹스에 대한 갈망이 당신의 삶에서 그다지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며 지금 당신의 마음은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해요. 그러면 집착에서 벗어나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 집중할 수 있다면 다른 어떤 일이라도 좋다.
섹스에 싫증 났다는 SIGN11
1 매일 아침 일어나서 처음 하는 생각이 당신의 영혼을 괴롭히는 직장이다. 아니면 아침메뉴.
2 스포츠 신문에 난 수영복 사진이 단지 여성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를 비하하는 것으로 보일 때.
3 자가 유방암 진단 팸플릿에 더 이상 흥분되지 않는다.
4 월드컵 축구 중계 재방송이 오럴 섹스보다 더 만족스럽다.
5 당신의 몽상을 실제 운동선수들로 이루어진 상상 속의 팀이 지배하고 있다.
6 이효리는 가수다. 차림새가 좀 요란하긴 하지만 말이다.
7 여자친구 선물을 살 때 진심이 아니다.
8 침대로 들어가면서 땀에 찌든 셔츠를 여자친구의 벗은 몸 위에 던지고 그녀를 마치
안락의자인 양 착각한다.
9 고객회의에서 만난 26세의 미인이 하는 한마디 한마디를 주의 깊게 들었다.
10 오럴 섹스나 트리플 섹스대신 X 박스와 PS2가 밤을 지배한다.
11 아니, 문근영이 벌써 18세가 되었나?
글 | 로리 에반스(Rory Evans)
요즘 에디터의 섹스 라이프에 그늘이 졌다. 한마디로 말하면, 못하고 산다. 예전 같으면 어떤 시도든 했을 거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큰 흔들림 없이 살만한 나이가 됐다. 물론 욕구가 동할 때마다 바로 바로 해소할 수 있었던 시절이 생각나긴 하지만 곧 그런 때로 복귀하리라 믿고 있다. 그래서 큰 흔들림이 없는 건지도 모른다.
mind|사랑도 지나면 마음의 사치인 것을
그런데 어느 잠 안 오는 밤, 부동의 마음에 균열이 갔다. 왜 그랬는지, 지난 여자친구들과의 섹스를 돌이켜보려고 했다. 그런데, 눈앞이 깜깜했다. 요즘의 섹스말고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거의 없었다. 분명 돈을 쓴 건 아는데, 찾아보니 영수증이 없는 기분이랄까. 허탈함이 약간 아득하게 밀려왔다. ‘그럼, 내 지난 여자친구들과의 섹스는 도대체 뭐였단 말인가?’
섹스는 힘이 세다고 믿었다. 에디터의 친구 하나는 섹스 한번 하겠다고 폭우의 심야 경부고속도로를 여섯 시간이나 달려 부산에 내려간 적도 있었다. 그런데, 결국 이렇게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것에 왜 그리 절박하게 매달렸을까? 쾌락을 구했던 섹스는 규칙적이지 않았으니 기억이 흐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사랑하는 여자와 나눈 섹스는 진실했고, 횟수도 훨씬 더 많았으니 흐리더라도 군데 군데 기억나야 하는 거 아닐까?
어떻게든 영수증을 찾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허탈하다. 생각해보니, 영수증은 나만 가진 게 아니다. 같은 시간을 나눈 지난 여자친구들이 있다. 에디터는 궁금해졌다. 나는 이렇게 섹스의 기억을 잃었다 치자. 그러면, 내 지난 여자친구들은 나와의 섹스를, 내 몸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너무 궁금했다.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네 명의 옛 여자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중 두 명이 대답을 해줬다. 역시, 그 두 사람을 사랑한 건 정말 잘 한 일이다. 다행히 한 친구는 영수증을 모두 버리진 않았다. 게다가 고맙게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가끔 나랑 했던 섹스나 내 몸이 기억날 때가 있어? 그렇다면 어떤 모습, 어떤 느낌이야?”
“애써 기억하자면 모를까, 이제 당신 몸이나 섹스는 잘 생각나지 않아. 그냥 그 분위기만 남아있다고 해야 할까? 당신과의 그것은 글쎄, ‘따스했다’고 기억이 나. 끝난 후에도 여자를 케어해주는 손길이 인상적이었으니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섹스는 없어?”
“언젠가 욕실에서. 그게 제일 좋았던 거라고 할 수는 없는데, 모르겠다. 나도 왜 그게 기억에 남는지.”
“섹스할 때 내가 했던 표정이나 동작, 말 같은 건 기억 안 나?”
“아니, 그것도 딱 부러지게는 생각 안 나. 그냥 따스함만 기억나.”
“우리의 섹스가 허탈하진 않아? 그게 다 뭐였나 싶어서?”
“아니, 그렇진 않아. 오히려 그 당시 하고 났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을진 몰라도 지금은 아니야. 끝나긴 했지만 우리의 관계 자체에 좋은 기억을 갖고 있고, 당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기억하는 나로서는 섹스의 기억도 좋은 추억으로의 가치는 충분히 하고 있다고 봐.”
“그래, 섹스를 추억으로 삼으면 허탈하진 않겠구나.”
“심지어 안 좋게 헤어진 경우에도, 상대방이 아주 미운 경우에도, 그 사람과 아주 달콤했던 순간만큼은 난 다시 기억해도 좋더라. 사랑하니까 안기고 싶고, 안고 싶고 그랬겠지.”
“그럼, 아직 나랑 하고 싶을 때가 있어?”
“아니, 이제 그때의 사랑은 이미 진행형이 아니니까.”
그래, 그렇구나. 진행형의 사랑에 기쁘게 충실했고, 지나간 섹스를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으니 나보다는 훨씬 덜 허탈하겠지. 또 다른 한 친구는 지나간 감정이나 상황 판단이 분명했다. 역시 에디터처럼 지난 섹스에서 허탈함을 느꼈지만 그 정체를 알고 있었다. “나랑 나눴던 섹스가 기억나?”
“아주 구체적인 건 아니고, 그냥 영화처럼 우리가 섹스했던 모습이 떠올라. 그런데 오빠의 몸이 기억나지는 않아. 애써 생각하려고 하면 생각은 나지. 아, 그의 팔은, 가슴은, 내 얼굴을 감쌀 때는 이랬지, 하는 식으로. 하지만 정말 남의 일처럼 느낌은 살아나지 않아. 지난 섹스들은 홀로그램 같아.”
“나랑 했던 섹스 중에서 아직도 기억나는 게 있어?”
“마지막 섹스. 이미 다른 여자친구가 있는 옛 남자와 섹스를 하게 돼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어. 이 사람, 나에게서 뭘 원하는 걸까, 하고. 그래서 그게 기억나.”
“섹스할 때의 내 표정이나 동작, 말 같은 게 기억나지는 않고?”
“오빠가 절정에 올랐을 때 짓던 표정. 그리고 나를 꼭 안고 눈을 감던 오빠의 얼굴.”
“우리의 섹스를 돌아보면 그게 다 뭐였나 싶진 않아?”
“허탈할 때도 있어. 그런데 그건 지나간 사랑이 주는 허탈함이지 지나간 섹스가 주는 허탈함은 아닌 것 같아. 오히려 몸은 더 단순하고 정직하지 않을까? 허탈이니 미련이니 이런 건 마음이 주는 것 같아.”
“우리의 섹스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글쎄, 술 마시고 노래하고 노는 것처럼 유희를 즐긴 것이겠지.”
여자답지 않게 몸과 마음을 나눠 생각할 줄 아는 그녀. 우리의 섹스가 유희를 즐긴 것이라는 말에는 왠지 반박하고 싶었지만, 오히려 그게 진실이다. 내 표정을 기억한다고 해서 기뻤지만 아쉽게도 그녀 역시 내 몸을 잘 기억하지는 못했다. 특히 ‘정말 남의 일처럼 느낌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표현은 나도 몸으로 공감했다. 이제 확인은 했다. 에디터보다는 낫지만 지난 여자친구들 역시 나와의 섹스, 그리고 내 몸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이제 후련한가? 아니다. 허전하다. 그걸 확인해서 뭘 하자는 거였지?
처음엔 지난 섹스들이 덧없게 느껴지면서 허탈해진 까닭이 구체적인 기억과 느낌들이 사라져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옛날의 섹스가 기억나지 않는 건 당연하다. 섹스의 한계라기보다 기억의 한계 때문에. 에디터가 받은 옛날 여자친구들의 답장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섹스는 그 이성과의 기억 일부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녀가 자기 처지를 고백하고 눈물을 보인 밤이라든지, 결단력과 매너를 보여주자 더 성실히 몸을 주던, 그런 특별한 섹스만을 기억한다.
어쩌면 섹스는 그 기억이 처음 만들어지던 그 순간부터 덧없고, 허탈한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신이 우리에게 섹스를 허락한 건 종족 번식을 위해서이니, 2세를 만들기 위한 섹스는 헛되기는커녕, 숭고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숭고한 목적이라고 해도 어디 행위까지 그렇던가? 섹스란 게 그저 그런 살덩이와 타고난 본능뿐이란 걸 처음 확인한 다음날 아침, 혼자 뼈다귀 해장국을 먹으면서부터 우리는 섹스의 허탈함을 알았는지 모른다.
이런 에디터에게 어떤 선배는 자신의 쾌락론을 들려줬다. “섹스의 본질은 쾌락이다. 죽을 만큼 즐기고 나면 허탈은 없다. 약간은 허무하겠지만 그 허무는 배설의 기쁨 뒤에 찾아오는 잠깐의 과잉감정일 뿐이다. 배설하고 20분만 지나면 또 하고 싶지 않은가?” 섹스의 본질은 쾌락이니, 그걸 구하면 허탈하지 않으리라. 왠지 솔깃하게 들린다. 하지만 에디터가 지난 여자친구들과 나눴던 섹스들은 꽤 자주 쾌락을 얻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쾌락을 구했든, 못 구했든 똑같이 허탈하다. 결국 섹스의 더 큰 허탈함은 쾌락이라는, 혹은 사랑이라는 목적을 달성했는지 여부가 아니다. 섹스라는 행위 자체가, 존재 자체가 허탈한 거다.
의미 과잉으로 흐르고 있다. 접자. 사랑을 찾아본들, 쾌락을 좇아본들 모든 인생사처럼 섹스는 허탈하다. 하지만 지금 양비론을 펼치고 있는 에디터는 오히려 기분이 좋다. 배낭을 내려놓은 듯 어깨가 가볍다. 당뇨병을 고치려고 애쓰는 것보다 끝까지 함께 가는 동료임을 인정하고 잘 다스리며 살리라 마음먹을 때 또 다른 희망이 솟는 것처럼 이제 허탈한 섹스를 인정하고, 즐기고 싶다. 쾌락이면 쾌락대로 좋고, 사랑이면 사랑대로 좋다. 섹스는 허탈과 해탈을 오가는 걸까? 지금은 허탈한 모드. 얼른 해탈로 오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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